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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ug 16. 2016

[포토에세이] 잔소리가 있는 풍경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잔소리가 있는 풍경>


“여보! 제발 양말 좀 뒤집어서 벗어놓아욧! 또 한 짝이 뒤집혔구먼! 그리고 말이야, 바지를 세탁바구니 안에 담아 주면 안 될까요? 또 한 쪽 다리만 걸쳐두었잖아. 아우 속상해!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아. 유치원을 안 다닌 탓인가?” -(구시렁구시렁)- 신혼 초에는(뭐든 좋았으니) 그랬다 치고. 으흠! 오십이 넘은 중년의 남편에게 다니지도 않은 그의 유치원 경력까지 들먹거리며 잔소리를 쏟아놓았다.


며칠 후에 식사하면서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말이지, 양말이나 바지가 뒤집혀 있어도 불편하지 않아. 벗어놓은 채로 세탁하고 그대로 넣어도 잔소리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양말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때 입는 사람이 바로잡으면 그만이라, 남편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바르게 벗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성격이 문제라는 지적을 덧붙였다.


그의 습관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머! 그래요? 다음부터는 벗어 놓은 그대로 세탁하고, 뒤집혀 있는 그대로 정리할 테니 그리 아세요!” 볼멘소리로 대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적지 않은 잔소리를 하였구나’라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 후 남편이 말한 대로 뒤집힌 양말을 그대로 세탁하였다. 건조대에 널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십 분도 채 안 되어 바로잡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안 돼! 참자, 참아보자. 더 참아보자.’ 눈을 감았다. 얼마 후 마른 양말과 마주했다. 뒤집어서 바로잡아 갤까, 벗어 놓은 그대로 갤까, 마음이 번거로워졌지만 짝만 맞추어 서랍에 넣었다. 양말을 정리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싹 가시진 않았지만, 이것도 훈련이라면 훈련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갔다. 출근 준비하는 남편이 양말을 신을 때마다 모른 척하자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 투덜대면 어쩌나 눈치를 살피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왠지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이것 봐! 또 남겼군. 당신은 커피를 마시면 꼭 한두 모금 남겨놓더라. 깔끔하게 마셔 버리지, 뭐하러 남겨? 우유 섞은 커피잔을 보라지. 식탁, 책상, 싱크대 등 한두 번이 아니야. 보기에 안 좋잖아.” “마시다가 손님이나 전화가 오면 일이 생겨서 못 마셨겠지요.” 내 처지를 설명하는 모양은 남편의 잔소리를 받아들이기 싫다는 뜻이었다. 돌아서서는 ‘나에게 그런 습관이 있었던가? 몰랐네.’ 나는 혼자 머쓱해 하며 웃고 말았다.


커피를 마신 후 무심결에 잔을 들여다보았다. 남편의 말대로 컵에는 한두 모금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가 양말이 뒤집혀 있든, 세탁 바구니에 한쪽 바지가 걸쳐 있든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듯이 나도 마시던 음료를 남김이 불편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그건 나만의 습관이었다. 습관이 달라 견해차가 생겼을 뿐인데, 우리는 서로에게 고쳐주길 바라는 마음을 비난의 어조로 제시함이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불편감을 견디지 못 하는 나의 성격을 탓하기로 하였다. 나는 그의 양말과 바지에 대한 잔소리 쏟아내던 입을 다물기로 다짐하였다. 그것이 뒤집혀 있든, 걸쳐 있든, 내가 정리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남편에게 뜻밖의 변화가 생겼다. 내 잔소리가 안 들리니 양말이나 바지를 벗을 때 오히려 나의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잔소리를 멈추니 점점 세탁바구니가 깔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양말과 바지를 세탁기에 넣으며 고백하였다. “여보! 내가 커피 남기던 습관 말인데, 당신에게 잔소리 듣기 전에는 신경도 안 쓰던 일이었어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며칠 후 남편이 다시 설거지한다.

“요즘, 당신 커피잔 깨끗한데?”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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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도서출판 생명의 양식, 2016. 09/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적상면 포내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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