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간호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Nov 06. 2018

민이 생각

바람의 초상

민이 생각


민이 글 제목은 ‘수련회에서 생긴 일’이었다. 1박 2일 동안 겪은 일로 빼곡했다. 친구들과 선생님 사이에 생긴 일, 간식, 장기 자랑 등 맛있고 재밌는 활동까지 가득했다. 마지막 단락에서 눈이 번쩍거렸다. ‘아니! 이게 뭔 테스트인지! 눈물 줄줄 ㅠㅠ’로 이어지는 문장이었다.


선생님께서 가장 소중한 사람 여덟 명을 적으라고 하셨단다. 민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그리고 친구 세 명을 적었다. 화면에 이런 글이 나왔단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 여덟 명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배가 점점 침몰합니다. 한 사람을 지우세요.’ 민이는 가족이 소중하므로 ‘나’를 빼기로 했단다. 구조 배가 왔다. 그러나 배가 좁아 또 한 사람을 지워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고 다시 어떤 문제가 생겨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지워야 했고, 한 명만 남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민이는 마지막으로 엄마를 남겼는데 결국, 엉엉 울고 말았다고 했다. 친구들 울음소리로 강당은 눈물바다로 변했단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느낀 “진짜 감동” 수련회, 5학년 민이의 결론이었다.


  글쓰기 모임 회원들은 민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모 협의체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웰리빙-웰다잉 교육이었다. 그보다 훨씬 앞서 참여했던 웰다잉 수업도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가,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토론형 수업이었다. ‘상실과 마주하기’ 시간에 민이와 같은 주제를 만났었다.


  교수님은 종이와 필기도구를 나눠주셨다. 가장 소중한 사람 여덟 명을 적으십시오! 잠시 후 이런저런 문제 상황이 제시되었다. 그때마다 한 사람씩 지워야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한 사람만 남겨야 하는 상황. 몇몇 수강생들은 훌쩍거렸다. 맨 뒷자리에 앉은 나는 누구를 써야 할지 머뭇거렸다.


  가정(假定)을 전제한 조건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 사람 이름을 쓰면 저 사람이 생각났고, 저 사람 이름을 쓰면 이 사람 생각이 났다. 나는 민이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친정 형제, 시댁 형제, 남편과 우리 아이들, 동료와 이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두 시간이 넘도록 썼다 지웠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누구를 더 우선할 수 없는 소중함보다 ‘기어이 지워야 한다’는 조건이 너무 잔혹하고 무자비했다. 인간의 죽음을 어찌 이렇게 쉽고, 짧게 희롱할 수 있단 말인가. 속으로 불만하면서 반감(反感)의 불쾌를 묵시로 저항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할머니는 주무시다 잠자듯, 큰어머니는 설거지 후 방으로 들어오다 문턱에서 넘어져 쓰러졌는데 가족이 보는 앞에서, 우리 아버지는 술에 취해 쓰러졌는데 과다 위출혈 응급조치 중에 돌아가셨다. 보건진료소에서 만난 주민들 삶의 모양은 사람 수만큼 달랐고, 죽음의 모양 또한 고인(故人)의 수만큼 달랐다. 웰다잉 수업의 죽음 연습이 낯설고 불편했던 것은 죽음에 대한 나의 숙고(熟考)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교육이 끝나고 ‘이제 준비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지거나 ‘이 정도면 충분히 준비하듯 되었다.’고 하여도 안도할 만한 확신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고령화와 재난, 재해, 각종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회 환경이다. 잘 살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는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 년, 한 달, 아니,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가정에서 버킷리스트(사는 동안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도 모르지만)를 작성한다. 유서를 작성하고(내일이면 내용이 또 바뀌게 될 것이다), 몸이 묶인 채 관 속에 누워 망치 소리를 듣는다. 음부의 어둠이 이보다 더 캄캄할까.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경험들은 얼마나 유효하고 유용할까. 눈물바다에서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민이 글이 진짜 감동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 너무 소중해서 -어쩌면 죽음의 두려움은 덮어둔 채- ‘나’를 먼저 지운 소녀의 순수한 그 무엇 때문이리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물으니 나 밖에 뺄 사람이 없었다며 해맑게 웃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인가를 논한 철학과 종교의 답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논의. 안아프고, 잠 자드끼, 새끼들 앞세우지 말고, 편안히 가기를 원한다는 어르신들의 마지막 소망이라는 그것. 공허한 바람이 되지 않으려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웰리빙’하라는 역설 아닐까. 회원들 박수에 우쭐해 하던 민이는 인사 꾸뻑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풀지 못한, 어떤 숙제 하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

.

@괴목리


매거진의 이전글 발 없는 약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