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Oct 28. 2015

[포토에세이] 엄마는 정말 애쓴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엄마는 정말 애쓴다>



-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갈 곳이 많아요?

-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아요?     


열한 시쯤 된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현관으로 달려 나온 쌍둥이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내일도 이렇게 늦은 밤에 들어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선언한다. 잔뜩 뿔이 난 두 녀석을 힘껏 안아주고는 늦은 이유를 설명하였다.     


친구의 남편이 암(癌)으로 투병 중이다. 대전 모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환자분은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여서 필요한 약과 영양을 혈관으로 공급받고 있다. 피부는 맑은데 앙상함이 드러나는 얼굴을 마주하니 몹시 미안하고 어색하다. 그런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친구와 환자분의 여유가 오히려 일행의 마음을 더 긁는다.


친구 부부는 처음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의 놀라움과 거부감을 딛고,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여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걸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친구는 남편과 함께 환하게 웃기도 하고, 힘든 일 안 하고 병원에서 밥 먹고 깨끗한 침대에서 잠도 자니 정말 좋다며 너스레를 부렸다. 병실을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안부를 나누었다. 환자 수발과 간병에 피곤하다 하소연을 할 법도 한데 친구는 내색하지 않고 밝은 표정이었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친구를 바라보며 무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니 쌍둥이가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엄마는 왜 그리 ‘갈 곳’과 ‘할 일’이 많으냐며 차가운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읍내까지는 삼십 리가 넘는 길이었다. 하루에 두세 번 들어오는 완행버스가 미류나루 가로수 길을 달려오면 묘한 설렘이 일어났다.


밀가루 바람 같은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앞을 지나가던 버스. 토요일이 되면 버스를 타고 읍내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어린 날의 큰 소원이었다. 읍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가게를 기웃거리고, 시내를 구경하는 일은 무료한 산골 생활의 이탈이자 더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차비가 문제였다. 어머니께 차비를 달라고 조를 때마다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 네가 읍내에 무슨 볼일이 있다는 것이냐?     

- 친구들이랑 가기로 했단 말이야!     

- 친구가 죽으면 너도 따라 죽을래? 니, 내 말 잘 듣거라. 어른이 되면 가기 싫도록 갈 날이 올 것이여. - 엄마는 맨날 그 소리!!     


나는 지금 고향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보건진료소에 근무한다. 비포장 흙길은 매끈한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을 정도로 교통이 좋아졌지만, 읍내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졌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던 것일까. 어머니의 말씀대로 백 번 천 번을 더 나다닌 무주 읍내. 차비를 주지 않던 어머니에게 불만을 품은 친구 서넛과 손을 잡고 삼십 리길을 걸어가다가 동네 아저씨를 만나 호되게 꾸중만 듣고는 그대로 되돌아와야 했던 어린 날의 슬픈(!) 기억.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에게 동시를 읽어주려고 책을 펼쳤다.      


엄마는 진짜 애쓴다     


엄마는 아침밥 해 먹고 설거지하고

방 청소하고 빨래해서 걸어두고

마당에 가 고추 널고 또 고추 따러 간다

얼굴이 빨갛게 땀을 흘리며

하루 종일 고추를 딴다

해 지면 집에 와서 고추 담고

저녁밥 해 먹고 설거지하고

고추를 방에다 부어놓고

고추를 가린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가리며

꾸벅꾸벅 존다

우리 엄마는 날마다 진짜 애쓴다     


- 쌍둥아! 엄마 말 잘 들어봐. 엄마는 일을 마치면 저녁에 집에 들어오잖아?

- 응.

- 그런데 말이야. 너희는 나중에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말이지. 해가 넘어가고 캄캄한 저녁이 되었는데도, 그래서 다시 날이 밝아 아침이 왔는데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안 돌아올 때가 있을 거야.

- 응?

- 열 밤을 자고, 스무 밤을 더 자도 너희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그런 날이 곧 온단 말이지.

- 응!?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갈 곳’과 ’할 일‘이 있음에 새삼 감사가 느껴진다. 갈 곳에 가고, 할 일을 하는 것은 밥을 하고 고추를 따고, 설거지를 하고 땀을 흘리는 일. 다시 설거지를 하며 살아가야는 삶이 아닐까. 꾸벅꾸벅 졸면서까지 날마다 애를 써야 하는 어른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쌍둥이가 이해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엄마는 진짜 애쓴다


어른들은 진짜 애쓴다.

.

.

.

@부남면 굴암리, 2008


매거진의 이전글 [포토에세이] 어떤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