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Oct 28. 2015

[포토에세이] 어떤 결심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어떤 결심>



아…. 믿기 어려운데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사람들의 반응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탁구교실 송년 모임을 위하여 일정과 음식 등에 대하여 의논하던 중 나 또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십 대 중반을 넘긴 코치님이 군에 복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스물두 살. 마흔 명이 넘는 부대원과 함께 도보 훈련 중이었다. 그는 맨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훈련 관계로 분명히 통제되고 있던 차선으로 화물차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옆 차선으로 비켜가겠지 생각했다. 느낌이 이상하여 잠시 후 다시 뒤돌아보았다. 그는 교관과 부대원을 향하여 빨리 피하라고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화물차를 저지할 요량으로 두 팔을 벌렸다. 12월 8일이었다.


태극기가 관을 덮었다. 청년 앞으로 안개 자욱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강물에 발을 내딛는 순간 훅 떠내려가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중간쯤 건너가다 떠내려가기도 했다. 건너편에서는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는데 옆에 있던 어머니께서 절대 건너서는 안 된다며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한 발을 물에 디뎠는데 움직여지지 않았다.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이 훅 밀려왔다. 이것이 꿈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화장(火葬)을 앞에 두고, 우리 아들 한 번만 더 보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애원으로 관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몸이 아직 따뜻하다고 소리쳤다. 헬기로 후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고 깨어났다. 그날은 12월 10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두 번 태어나 이날은 그의 생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육신에서 나온 생일보다 이날을 더 기념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송년 모임 날짜가 결정되었다.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은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신세만 지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고 ‘생애 단 하루만이라도 한 가지 좋은 일을 하자’고 결심하였다. 그 결심은 오늘도 유효하다. 아! 그래서 책상에는 늘 타이레놀이 있었구나. 지난 몇 달 동안 탁구를 배우면서 내가 지켜본 그는 이러한 엄청난 사고와 수술을 경험한 사람이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작은 체구로 가벼운 탁구공에 묵직한 힘을 실은 날렵한 타구(打球) 스윙 자세는 가히 환상적이다. 상대의 움직임으로 구질(球質)을 파악하고, 결정적 한 방을 날릴 때면 공기를 가르는 날 선 검처럼 날카롭고 예리하다. 타고난 감각과 소질도 있겠지만, 탁구를 향한 열정과 오랜 시간 흘려온 땀의 결과일 것이다. 훈련과 연습 과정에서 어깨 관절이 서너 번 빠질 정도였다니, 어찌 정금(正金)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치기 위하여 꿈나무반 탁구교실을 운영하고, 학교와 종합복지관에 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재능을 기부하고 있는 그에게 하루 스물네 시간은 짧기만 하다.  흰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불안감으로 수없이 산을 오르거나 거리를 방황했다는 사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공포감과 계속되는 재경험으로 몸을 떨었다는 사람. 그는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어쩌면 그 두려움보다 더 큰 몸부림을 쳐야 했을 것이다.


교통사고나 생활 속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피할 수 없다. 불쾌한 일을 경험하고, 사건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 어떤 사람과의 갈등이 자꾸 떠올라 괴로워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악몽을 꾸거나 사건을 회상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사건을 장악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애 단 하루만이라도 좋은 일을 하자’는 젊은 날의 주문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수천 번의 다짐이고, 연습이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뼛속까지 각인되었을 경험을 들으며,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런 일로  힘들어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 않기로 한다. 이것이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좋은 일의 시작일테니까.

.

.

.

@설천면 덕유리, 2013


매거진의 이전글 [포토에세이] 오월의 소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