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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Nov 18. 2015

[포토에세이] 풍경우는 소리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풍경우는 소리>     


무주에 '우름숫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포내리'라는 마을도 있습니다. 우름숫골은 전쟁 중에 몰살당한 사람들의 시체를 태우거나 장사 지낸 숲으로 하루 종일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아 울음+숲골로 이름지어졌다고 어르신이 전해주시는군요. 눈물 마를 날이 없던 그곳은 현재 장례식장이 성업 중입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은 탓일까요. 한여름 후끈한 한 낮에 숲 속을 거닐다 보면 스산함이 전신을 휘감고 나뭇가지 부딪는 소리마다 서러움이 묻어납니다.


우리 마을 앞으로는 하늘마저 겸손히 점한 적상산이 있습니다. 늘 자랑하는 것처럼 시월이면 여인네의 붉은 치맛자락같은 단풍이 훨훨 타올라 뭇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지요. 적상산의 풍수와 지세가 물속에 잠긴 배와 같다, 즉 갯(浦) 안(內)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개안이라고 불렸고, 훗날 한자로 표기하면서 포내리(浦內里)라고 불리었고, 그렇게 써왔답니다. 개안이나 포내나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요.


개안에 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산 위와 산 아래에 호수가 생기고, 그 덕인지 그 탓인지 우리 마을에는 안개가 자주 피어나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개안이라는 이름은 '안개'를 뒤집은 말로, 호수가 생기면 안개가 잦다는 선인들의 지명에 선견이 있었구나. 사람들은 입을 모읍니다. 호수(浦) 안(內) 동네는 그야말로 물가 안쪽에 있는 동네이니 포내리입니다. 역시 선조들의 명명지명 선견의 지명에 저도 박수를 보냅니다.


전설이란 그것을 알고 소유하고 있는 지방민 외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오늘날 자료를 채집하여 구전이나 구술 문학을 작성하려면 타분야에 비하여 자료가 극히 빈약하고 소박하고 심히 저저한 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래와 전설이 잊혀가고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갖고 있는 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마을이름 대신 도로이름을 주소에 사용하면서 이름을 얻지 못한 길 옆의 오래된 마을들은 전통의 이름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포내리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마을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아는 것, 지방 사람들의 기억과 지식의 결합으로 생성된 전설이나 민간 신앙은 향토사의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을진대, 포내리도 더 이상 그 이름이 불려지지 않을 위기에 처한 바,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風磬)은 덩그렁덩그렁 우는데, 우름숫골 낙엽이 우비우비 비비니 비가 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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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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