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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Nov 20. 2015

[포토에세이] 오늘의 운세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오늘의 운세>


연말이 다가오도록 아직 대장암 분변 검사를 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마을을 돌아다니며 건강검진 대상자에게 채변통을 나눠드렸네. 어르신들 말씀대로 그 쓰잘때기 없는 똥으로 무슨 검사를 한다고. 금매... 고거시 참말로 가능헌 이야기여? 암요! 가능허다마다요! 돌아서면 버릴 것잉게, 아깝다 생각 마시고, 그란디 쬐깨 담으면 담박에 빡꾸옹게, 나수 담으시시오잉! 하루 이틀 지나니 보건진료소에 하나 둘 묵직한 거시기통들이 당도하는디,     


평상시 잘 나오던 고거시, 받아야 된당게 스레트라. 며칠 째 똥이 안 나온담서 변비약을 달라는 분이 아니 계시는가, 스무 날 가까운 가을 장마에 곶감마다 곰팡이가 피었기로, 그냥 냅다 버리기는 솔찮히 아까버서 먹었더니 설사를 좔좔한다는 분이 아니 계시는가. 오매! 그라믄 설사를 멈추는 기똥찬 약이 있는디 드릴까요. 에이~ 그깟것 가지고 무슨 약이라요. 지가 다 나오믄 안 나오것지.      


점심을 먹을라고 상을 차리는디 전화가 왔어. 소장이신가? 네. 여어 먹적골로  와보시게. 된똥이 나와서 담았응게 언늠 와서 똥통 갖고 가시게나. 안 늦었능가? 아이고 아버님, 참말로 욕보셨네요. 밭거름을 학실하게 주셨고만요!(하하하) 안 늦고말고요. 당장 올라가것습니다. 숟갈 젓갈 놓고 달려가는디,


모래땀 지나고 먹적골 올라가는 길가에 가실 끄트리를 안씨랍게 잡고 있는 붉은 손들아, 나풀거리는 쟘쟘 나뭇잎 손가락들이 참말로 간지럽구나. 눈길 한 번 주고 밭을 둘러 보는디, 사람이 안 비, 엄니~ 아버님! 소장 왔어요! 어디 계싱가요? 소리 높여 부르니 하늘 우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기로. 아따 여기 보시오. 사다리 놓고 감나무에 올라 긴 장대 들고 선홍색 옴팡진 감을 따시는디,    


며칠 전에 새로 고쳐가꼬 멋 좀 내보것다고 신고 온 검정 엘칸토 삐딱 구두 옆으로 농익은 홍시가 투두둑 떨어지는 것이여. 아이고! 아까워라. 덜퍽 깨져버린 너를 들어올려, 어짜끄나 안씨라서 호호 분다. 똥통은 어디 있다요? 저기 지개 안에 넣어놨응게 보소. 내금까지 샐까봐 비니루로 꼭꼭 쫌매났응게 안 흘릴꺼라. 조심히 들고 가시게나. 아무렴요.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내려 갈랍니다. 허허! 여까지 왔는데 그냥가면 어쩌시나.


저짝 모판에 담은 홍시를 들고 가시오. 우리는 먹을 사람이 없네. 먹지도 못할 홍시를 뭐땜시 따신다요. 위험하구로! 보고도 못 먹는기 감이지. 그래도 마냥 까치밥이 되게 할 수는 없지라. 가을일도 얼추 끝났고 심심풀이로 따는겨. 소장 하는 일도 가만히 봉게 겁나 심들고마잉. 일일이 챙기느라 수고가 많네. 다 내싸버리는 똥을 가지고 먼 요술을 부리가디 나랏님이 그리 독촉이랑가.


내 뱃속에 암(癌)이 있는지 없는지 어찌 발견한당가, 참말로 요지경 세상여. 긍게요, 저는 내려갈랑게 암튼 조심허시고요, 수고허셔요! 홍시는 참말로 잘 먹것습니다. 모판 가득 홍시를 머리에 이고 밭두렁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디, 똥통이야 어찌됐등가, 야금야금 먹을 생각하니 덩실덩실이라. 순리에 역행하는 생각은 멀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불분명한 행동은 삼가하시고,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나 일이 있다면 당장 실행에 옮기도록 하시오. 행운은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찾아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오게 됩니다!라더니. 아싸! 오늘의 운세, 고거시 참말로 헛말은 아니었어야! 옴메!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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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북창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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