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했던 간부들은 왜 전부 사라지는가.
모두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겠다. 아마 쉽게 믿지는 못할 거다. 뭐냐면,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존경할만한 간부를 만난 적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존경하는 간부 밑에서 일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짜릿하고 자부심 생기고 매일매일 성장하는 기분인데... 도무지 말로 설명할 재간이 없다. 이건 직접 겪어봐야 안다.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건, 그들의 모든 면모를 빠짐없이 존경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업무상 비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도 있으니, 그런 흠결까지 덮어두고 존경한다고 말할 순 없다. 간부로서 그들은 아주 존경스러운 특징이 적어도 몇 가지 있었다-정도로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연차가 쌓일수록 그들을 여전히, 그리고 더 자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행동으로부터 나의 행동이 결정되었고, 그들이 업무를 대했던 태도로부터 나의 태도가 결정되었다. 내가 맘껏 뛰어다니는 지평은 K, P, 그리고 Y, 그들이 세 꼭지점처럼 나를 둘러서서 만들어준 토양에 불과하다. 그러니 존경한다는 말을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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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내가 처음 만났던 부장이었다. 모두를 한 번에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딱히 없었고, 애초에 호통이나 큰소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가 발령받아 처음 인사를 나누던 날, 회사의 간부보다는 조용한 학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 부서에는 나와 또래인 계약직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입사 시기는 그 직원이 한 달 정도 더 빨랐지만, 나이, 성별, 심지어 취미까지 같아서 금방 친해졌다. 하지만 정규직인 나와 서무 계약직인 그를 두고는 미묘한 차별 같은 것들이 있어왔다. 나와 그는 그런 차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으면서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비극적이게도 그런 차별 같은 것들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K가 우리 팀장으로 발령 난 것이다. 그는 잦은 인사이동으로 뒤엉킨채 지내온 우리 팀원들의 자리부터 재배치했다. 우선권은 당연히 연차 순으로 주어졌다. 선배들이 자기 자리를 골라 떠나기 시작한지 한참 뒤에야, 입사한지 얼마 안 된 나와 계약직 사원, 두 자리만 남았다. 그는 나에게 먼저 고르라는 몸짓을 보이고 나는 그것을 사양하려던 찰나 K가 입을 열었다.
“먼저 골라요.”
K는 계약직인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보다도 K가 더 당황했다. 이 회사에서 서무 계약직은 관습적으로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왔기 때문이다. 먼저 짐을 옮기던 선배들이 일순간 조용해지며 K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서 소리 없는 추궁을 느꼈는지 K는 해명하듯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니까, 장도수 씨가 한 달 정도 더 늦게 입사했던데요?”(사실임)
그는 문간 자리와 안쪽 자리 중에 안쪽 자리를 골랐고, 나는 선택권 없이 문간 자리에 당첨됐다. 초반 며칠간은 다른 팀 사람들이 자리배치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한답시고 자꾸만 구경을 왔다. 그래서 문이 평소보다 더 자주 열고 닫혔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선 그 자리가 점점 좋아졌다. 복도가 코앞인지라 문만 열고 나가면 정수기랑 화장실이 바로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문간이라 잠시 외출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짜릿함을 누려보진 못했지만...그런데 누가 K에게 이런 자리배치에 대해 한 소리를 했는지 K가 내 마음을 헤아린답시고 날 불러냈다. 불만이 있느냐는 K의 물음에 사실 난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자리가 좀 더 좋다고 대답하자 K는 소리 내어 웃다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도수씨가 그 친구 서무 일도 나눠서 해주면 좋겠어요.”
본인은 팀장으로서 내 커리어를 신경쓰는 만큼 저 친구의 커리어도 신경써야 한다. 도수씨는 여기 공채로 입사해서 쭉 다닐 수 있는데, 오히려 저 친구는 여기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앞으로 커리어에서 굉장히 중요할거다. 그러니 단순 서무 업무 말고도 다른 걸 가르치고 싶다는게 골자였다. 대충 납득했지만 내 커리어는 안 챙겨준다는 것인가 싶어 조금 시새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은 확연히 사라졌다. 내가 관대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K가 팀장으로서 내 커리어에도 다방면으로 신경을 써주는 게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리배치와 마찬가지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K의 스타일은 업무를 분장할 때도 고수되었는데, 내 연차에 아직 맡을 수 없는 업무에서 총괄을 맡기기도 했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는데 더러 이런 업무분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선배들이 또 있었다. 그럴때마다 K는 이렇게 일축했다.
“내가 직접 같이 할 거니까, 걱정 말아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원래 팀장이라는 건 천군만마와 동의어구나’ 라고 착각했을 지경이다. 그는 신입사원이 으레 제안할법한 패기만 있고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도 어떻게든 현실화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려고 했다. 한 번도 ‘그건 안 돼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때때로 내게 다른 선배로부터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거나, 팀장 모르게 업무가 추가로 더 부과되거나 할 땐 꼭 나를 따로 불러내서 본인이 내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었다. 나에겐 미안하지만 팀장으로서도 개입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팀장이 나의 억울함을 눈치 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곤 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 법. 회사는 공공기관이 휘말릴 수 있는 최악의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렸고, 누군가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만 했다. K 위에도 수많은 간부들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K가 그 책임을 지고 간부직을 내려놓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꼭 가족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분이 차올랐다. 대부분의 문제는 K가 팀장으로 오기 전부터 산재했던 문제들이었고, 더 윗선에서 결정해 우리부서로 하달했으면서, 왜 K만이 오롯이 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불만을 토로하자 그는 그저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럴 때 책임지라고 그간 돈 더 주면서 간부 시킨 거 아니겠어요?”
K와 헤어지던 날 송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메모장에 일기를 썼다. “함께 근무했던 1년이 마무리됐다. K는 내게 리더의 덕목이란 모든 과에 대한 책임이자 모든 공에 대한 겸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어도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준 진짜 어른이었다.”
난 아직도 스승의 날만 되면 K에게 안부전화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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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는 간부 중에서도 간부, 회사의 대표자였고 우리 부모님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은 분이었다. 조부모 나이에 가까웠던 그가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는 HBO사의 <왕좌의 게임>이었다. (심지어 그 때는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도 없던 시절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지금 온갖 OTT에 가입되어있는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왕좌의 게임이 뭔지 모른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게임도 즐겨하셨는데 내가 게임에 영 관심이 없어 그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무슨 만화책도 보셨다. P는 종종 마흔 살 어린 내가 본인보다 트랜드를 모른다며 잔소리하곤 했는데, 너무도 사실이라 반박할 마음 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P가 오락만 즐기는 한량이었냐 하면 그것도 결코 아니다. 내가 그를 존경한다 말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오히려 그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를 꼽으라면 바로 ‘한량’일 거다. 나는 그와 가까이에서 일할 때가 많았는데, 둘이 함께 자정가까이 퇴근한 날이 많았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실신한 듯 잠들었다가 간신히 일어나 다음날 아침에 꾀죄죄하게 출근한다. 하지만 이미 사무실에 와있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게 세팅되어 있다. 멀끔한 얼굴과 꼿꼿한 표정으로 나에게 종이 뭉텅이를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어제 밤사이에 이것 저것 살펴봤는데, 우리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것들 정리해서 올려봐요.”
물론 그 자료들을 던져준다는게 진짜로 ‘던져’ 주는 것이라, 직원들이 보기엔 썩 정중한 리더가 못됐으므로 대부분은 그를 괴팍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그의 밤사이 행적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고, 그의 수면시간과 집중력과 체력과 열정에 존경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면들이 내겐 P의 괴팍함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분명 나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데 언제 시간이 나서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알아오는지, 엄청나게 빠른 그의 자료분석과 이해력을 좇아가느라 버거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수험생처럼 공부했다. 부끄럽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그 때 나는 스물다섯이었고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바로 옆에서 지켜본 바, 그 시기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 P였을 거라 확신한다. 밤만 지나고 나면 내 책상에 화수분처럼 불어나있는 방대한 레퍼런스 목록을 보면, 퇴근 후에 일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도 P였을 거다. 애사심을 핑계로 술자리를 만들어 저들끼리 과거의 영광을 늘어놓으며 자위하는, 입만 살고 고민은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특유의 괴팍함 때문에 P는 직원들의 신임을 얻진 못했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그 시절 P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홀로 소수의견을 고수하는데 여전히 씨알도 안 먹힌다. 겉으로 드러나는 괴팍함 이면에 엄청난 성실함과 열정이 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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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누가봐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아온 사람이었다. 그의 업무처리속도는 매우 빨랐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그를 힐끗 보는 몇몇은 그가 업무를 대충한다고 오해할 지경이었다. 사실만 두고 봤을 때 Y는 정말 명석했고, 그가 맡은 프로젝트는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Y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직원들 모두가 자신처럼 빠르고, 명석하고, 유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간부가 된 그는 성에 차지 않는 거침없고 가감없고 재빠른 피드백으로 직원들을 닦달했고 추궁했다. 직원들 말을 빌자면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그 부서의 성과가 나빴냐고? 천만에. 성과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성과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성난 직원들은 그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다음 인사이동 때 간부직을 잃고 말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거침없는 피드백이 좋았다. 민망할 정도로 휘몰아치는 비판에 딱히 틀린 말도 없었다. 팀원들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든 별 관심도 없는 간부 투성이인 회사에서 이렇게 촘촘하게 피드백을 해준다는 건 그가 적어도 일을 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Y가 못살게 군다는 생각보단 Y가 자기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그는 나의 팀장이었다. 회사 특성상 프로젝트에 직원이 큰 권한을 갖긴 하지만, 그보다 더 위에 팀장의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임도 더 클테니 말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이 말은 보통 개차반이던 인간도 어떤 책임을 맡으면 사람구실을 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반대의 상황에서 이 문장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보통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인간도 책임 있는 직책을 맡으면 악역을 자처해야할 때가 있다. 그러니 그 악역이 리더로서 우리 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반되는 모습이라면(물론 그 목표가 정치적 올바름에 반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쉽게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악역이 너무 미워서 꼭 미워해야겠거든, 그 자리를 미워할 일인지 하는지 그 사람을 미워할 일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자리가 미운 것뿐인데 사람까지 미워하는 건 썩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고. 그러니 그 서로가 맡은 역할극의 배역에 대해 어느 정도는 용인하고 넘어가는 것이 성숙한 자세가 아니겠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악역이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 배역을 미워하지 배우 본체를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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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지금 이 세 명은 모두 간부직을 잃었다. 이게 경마거나 로또였으면, 내가 판돈을 걸었던 리더들은 모두 낙오된 셈이다. 직원들의 반발로 자리를 잃기도 했고, 징계를 받아 자리를 잃기도 했고, 반성의 의미로 자기 자리를 내놓기도 했다. 일개 회사에서도 이렇게 뛰어난 면면이 있는 리더들이 간부직을 유지하기가 힘든데, 대체 장기간동안 간부로 군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는 걸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 주제로 한참을 떠들곤 했다. 내 판돈을 모두 날린 것처럼 친구들이 기대를 걸었던 리더들도 중간에 전부 날아갔기 때문이다.
우린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 옛날에 황희 정승처럼 영의정 오래오래 해먹은 사람들은 아마 탁월하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아서 오래 버틴 사람들일 것이라고, 탁월하게 뛰어났다면 재상 자리에 오르기 전에 사약 먼저 받고 죽었거나 귀향에 보내져 무대에서 사라졌거나 스스로 낙향했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마음 맞는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길 하며 낄낄대곤 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나도 어릴 적부터 위인전을 읽으며 “그래 너도 옳고, 그래 너도 옳다”라는 명대사에 감명 받아 그처럼 청렴결백하고 현명한 어른이 되기로 다짐했던 자라나는 새싹 출신이다.
그러다 어느 무료한 날 책을 뒤적거리다가 황희 정승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게 되었다. 그 내용은 안데르센 동화의 잔혹한 실체를 마주한 것보다 더 충격이었다. 황희 정승을 묘사하는 날선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기시감이 몰려오며 심장 한 켠이 서서히 조여 오는 기분을 느꼈다. 일은 제대로 안하고 사적인 비위와 결함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사람은 좋다’는 평가를 들었던 수많은 간부들의 모습이 속절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영의정부사 황희 졸기에 실린 내용을 조금 옮기겠다. 그는 “성품이 지나치게 관대해 제가에 단점이 있었으며, 친한 사람을 주로 추천하는 등 인사에 공정하지 못했고,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아 뇌물을 챙겼다. 또한 심술이 많아 자기를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터무니없이 헐뜯고 명예를 해했으며, 자신의 사위가 고을 아전을 때려죽인 일이 벌어지자 사건을 덮어달라고 수령에게 청탁했다가 투옥됐다. 관리소홀로 말 천마리를 죽게 만든 이의 죄를 완화시켜주려고 사적으로 부탁했다가 또 탄핵을 당하고, 영의정으로 임명되기 몇 달 전에는 현감에게 땅을 달라고 요청해 얻어냈”단다.
물론 재상으로 오래 근무한 만큼 어떤 능력은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에 대해 표백된 환상을 지니고 있던 내게 이 일화는 충격적이었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회사에서도 멀쩡한 간부는 살아남기가 힘든데, 귀양가거나 사약받지 않고 살아남은 관리들은 다 알만하지 뭐” 했던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극단적인 비교지만, 나는 ‘일 못하고 책임 안지는 대신 허허실실 맛있는 거 많이 사주는 사람 좋은 간부’랑 일할래, 아니면 ‘일 잘하고 책임 잘 지고 명확하게 지시하는데 빡빡하게 굴고 가끔 좀 거친 모습도 보이는 간부’랑 일할래 질문 받는다면 나는 아마 경험적으로 후자를 택할 것이다. 적어도 후자의 간부를 만나면 업무에 시달려 죽을지언정 업무능력은 정말 빠르게 키워진다. 하지만 전자랑 일하다보면 진짜 내가 답답해서 화병으로 죽든 아니면 부당하게 책임전가를 당해서 죽든 어떻게든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경험상 개인비위 같은 사적인 결함도 전자가 많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확인해보건대 오래 살아남은 쪽은 전자인가보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늘 판돈을 잃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판돈을 잃는 또 다른 이유는 여성 간부들를 존경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도 있다. 정말이지 이런 얘길 덧붙이고 싶진 않지만, 내 짧은 경험으로만 비추어봐도 간부들을 성별로 구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성 간부의 무능력함은 ‘어쩔 수 없어’로 변명될 때가 많았다. 이런 식의 용례가 있다.
“어쩔 수 없지 뭐 무능하긴 한데, 그래도 사람은 좋아.”
“요즘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저러는 거래.”
“그이는 뭘 개선해보려고 저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자리 유지가 목적이니 어쩔 수 없어”
반대로 여성 간부의 무능력함은 ‘그럴 줄 알았어’로 귀결될 때가 많았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 다음에 붙는 말은 뭐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 쉬이 떠올릴 수 있는 바로 그 말이다.
“그럴 줄 알았어, 왜 여자들한테 맡겨두면 꼭 다툼이 생길까?”
“그럴 줄 알았어. 애기 키우다보면 일은 뒷전이지.”
“처음에 능력에 비해 너무 촉망 받던 때부터 바람 든거지. 난 이럴 줄 알았어.”
무능한 거야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유능함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게 더 가혹하다. 남성 간부가 경주마처럼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쉽게 용납 가능한 캐릭터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차갑고 냉혈한 같아서 사회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탁월한 능력으로 직원들을 압살하는 본부장’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탁월한 업무능력 하에 사적인 결함들이 용인되는 건 전통적으로 아주 흔한 서사다. 하지만 반대로 여성 간부가 경주마처럼 목표만을 위해 달려간다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비혼인 경우에는 결혼을 못해서 일로 푼다고 수군대는 소릴 들어야 했고, 기혼인 경우엔 자기 가정은 신경도 안 쓰고 매정하다 혹은 회사 일 하면서 집안일까지 신경쓰더라고 수군대는 소릴 들어야 했다. 그들의 공적인 능력보다 사적인 결함이 언제나 더 빨리 그리고 더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 뒷말을 듣지 않았던 여성간부는, 적어도 내 경험엔, 없었다.
요즘 내 또래 친구들과 이야길 나누다보면, 배울 점이 있는 간부의 존재에 엄청난 갈급함이 느껴진다. 친구에게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죄다 남성인지라 딱히 이름을 댈 수 없다는 대답이 많았다. 우리는 롤모델을 통해 일종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 롤모델은 단순히 내가 가야할 길을 표상하는 걸 넘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바운더리를 선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최대가능성의 증거라고나 할까? 그러니 남성 간부를 롤모델로 삼으면 이미 시작부터 뭔가를 포기해버리는 기분이다. 그나마 존경할만한 점을 지닌 남성 간부들까지도 금방 좌천되어버리는 판국인지라 앞날은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나와 친구들이 앞으로 남은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안 존경심이 들게 하면서도 그 간부직을 끝끝내 유지하는 모델, 특히 그런 여성모델을 더 만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의 최대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후배들에게 내가 업무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최대가능성까진 아니어도 일말의 가능성을 표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몇몇이 이렇게 조각난 가능성이라도 제공한다면, 영리한 후배들은 콜라주 기법을 동원해 여기저기서 조각을 모으고 이어 붙여 형체 있는 롤모델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