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31

감사일기 - 불혹이 무색하게.

by 심쓴삘

아침부터 첫째에게 잔소리를 했다.

잘 좀 씻으라고.


출근길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 안 씻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 안 씻어서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은 또 얼마나 끔찍해..

- 내가 일을 하지 말고 집에 있었어야 됐나?

- 씻는 것도 못하는데 다른 건 할 수 있을까?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철퍼덕..!


정신을 빼놓고 걷다가

바닥의 움푹 파인 곳에 왼발을 디뎌버렸다.

넘어진 모습이 흡사 철판 위 빈대떡 같았다.


- 저번달에 신랑 발가락이 골절됐는데.

- 나도 그렇게 되는 거 아냐?

- 무릎도 욱신한데, 바지도 패였겠다..

- 가만, 사무실에 알코올솜이 있었던가?


이렇게 첫째에 대한 고민에서 잠깐 벗어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잘 씻을 수 있게 좀 더 내가 신경 쓰면 되지.


첫째가 잘하는 100만 가지에는 10번의 칭찬을 하고,

못하는 1가지에는 10번의 잔소리를 했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석다.

불혹을 한참 지났음에도 아직 흔들린다.

내 감정에서 잠시만 한발 물러나면

마음의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바보천치다.


그래서, 또 이렇게 아프게 깨닫는다.


양쪽 무릎에.. 피났오..

많이 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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