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 불혹이 무색하게.
아침부터 첫째에게 잔소리를 했다.
잘 좀 씻으라고.
출근길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 안 씻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 안 씻어서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은 또 얼마나 끔찍해..
- 내가 일을 하지 말고 집에 있었어야 됐나?
- 씻는 것도 못하는데 다른 건 할 수 있을까?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철퍼덕..!
정신을 빼놓고 걷다가
바닥의 움푹 파인 곳에 왼발을 디뎌버렸다.
넘어진 모습이 흡사 철판 위 빈대떡 같았다.
- 저번달에 신랑 발가락이 골절됐는데.
- 나도 그렇게 되는 거 아냐?
- 무릎도 욱신한데, 바지도 패였겠다..
- 가만, 사무실에 알코올솜이 있었던가?
이렇게 첫째에 대한 고민에서 잠깐 벗어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잘 씻을 수 있게 좀 더 내가 신경 쓰면 되지.
첫째가 잘하는 100만 가지에는 10번의 칭찬을 하고,
못하는 1가지에는 10번의 잔소리를 했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석다.
불혹을 한참 지났음에도 아직 흔들린다.
내 감정에서 잠시만 한발 물러나면
마음의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바보천치다.
그래서, 또 이렇게 아프게 깨닫는다.
양쪽 무릎에.. 피났오..
많이 아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