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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이직하려니 수호천사가 다 나타나고.

by 심쓴삘

내 나이에 이직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 자리에 최선을 다하자 싶지만, 한 번씩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채용공고를 살펴보다 매력적인 곳을 발견했다.

이력서를 보냈고, 대표님의 연락이 왔다.

꼭 한번 면접을 보고 싶다고.


기업 평판을 읽어보니, 대표님의 기분에 좌지우지되는 곳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나이에 이직했다가 해고당하면 이직이 더 힘들어지니 가서 거절의 뜻을 전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갔는데,

나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다.

도대체 왜 저렇게나 나를 믿고 마음에 들어 하는지 나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1시간 반동안 그 대표님은 자신의 걸어온 길과 많았던 인생의 굴곡과 지금 직원들과의 케미를 알려주셨다.


- 믿어주시는 만큼 제가 모두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난 보여요, 할 수 있을 거란 걸. 다음 달부터 출근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그리고 하룻밤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하고 지금 회사의 대표에게 편지를 썼다.

그동안의 고마웠던 일들이 떠오르니 마음이 찡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자 싶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이메일로 보내려는 순간, 사무실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됐다.

관리소에 물어보니 정기적으로 하는 전기검사라 수십 분 소요된다고 했다.


카톡으로 보내려니 너무 가벼워 보이고.

그래, 사내에서 쓰는 업무용 채팅앱으로 보냈다.

바쁘신지 한참 확인은 안하시는군.


면접을 본 곳의 대표님께는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고, 곧 전화가 왔다.


- 어머, 어쩌지.. 내가 밤새 생각해 봤는데, 지금 직장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여기 불러서 일 시켰다가 서로 안 맞으면 그냥 다른 직원들과 같은 그런 사람이면 서로 안되니까. 그냥 계시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시라고 전화했어요. 다음에 일자리 필요할 때 전화해요, 어머 어쩌지..


아, 진짜 어쩜 좋으니.


아차! 편지!

사내 업무용 채팅앱은 상대가 읽기 전까지는 삭제 가능하다.

바로 삭제.


정전이 날 살렸어.. 수호천사가 브레이크 걸어줬을 때 그냥 멈췄어야 되지만, 그래도 살았다.

와. 정말,

죽다 살았다.


열심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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