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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 또 시작이군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김미영이라고 합니다. 올해 서른여덟, 결혼한 지 벌써 십사 년이 됐네요. 남편과 저,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오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이유는... 음, 사실 좀 복잡해요. 저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인데, 들으시면서 '아, 우리 집도 비슷하네' 하실 분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특히 시댁 문제로 고생하시는 분들이라면 말이죠.
저는 차남의 아내입니다. 시어머니가 계시고, 시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장남네는 큰형님과 대학생 딸 하나가 있고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평범한 집안이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만 되면 저희 집은 전쟁터가 됐거든요. 아니, 전쟁터라기보다는... 저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 그런 거였어요.
"미영아, 올해 추석 준비는 어떻게 할 거니?"
아직 팔월 말인데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매년 똑같은 패턴이에요. 추석 한 달 전부터 이런 전화가 오기 시작하거든요.
"어머니, 작년처럼 준비하면 될까요?"
"그래, 그런데 말이야... 올해는 큰애네서 좀 힘들다고 하네. 큰며느리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또 시작이구나, 싶었어요. 매년 똑같은 말씀이거든요. 큰형님이 몸이 안 좋다, 장남네 집안이 바쁘다, 그래서 차남네가 더 많이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네, 어쩔수 없죠 뭐. 그럼 제가 조금 더 준비해둘게요."
"우리 미영이가 역시 착하네. 큰며느리는 좀 예민해서 말이야..."
전화를 끊고 나니 한숨이 나왔어요. 남편한테 말하자니 또 시어머니 욕한다고 할까 봐 걱정되고, 그렇다고 혼자 속으로만 삭이자니 답답하고.
"여보,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어?"
남편 성호가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물어봤어요. 남편은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만 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려요. 꼼짝 못 하는 아들이 되는 거죠.
"별거 아니야. 추석 준비 이야기."
"아, 그래? 올해도 우리가 많이 해야 하나?"
남편도 알고 있어요. 매년 추석 준비는 거의 저희 몫이라는 걸. 하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게, 큰아주버님이 맏아들이니까요. 그리고 시어머니는 맏아들을 정말 많이 아끼세요.
"미영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나도 도와줄게."
남편이 제 어깨를 토닥여줬어요. 이럴 때 보면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하지만 시댁에 가면... 글쎄요, 그때의 남편은 또 다른 사람이거든요.
그날 밤, 아이들 재우고 나서 잠깐 시간이 생겼어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죠. '시댁 스트레스', '명절 갈등' 이런 것들을요.
와, 정말 많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댓글들을 읽다 보니 눈물이 날 뻔했어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그 중에 하나가 눈에 띄었어요.
"시어머니가 매달 큰아들네만 용돈 줘요. 우리는 명절에 십만 원짜리 봉투 하나인데, 큰아들네는 오십만 원씩 받아가요. 그것도 매달 생활비까지 받으면서..."
이 댓글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시어머니도... 혹시?
아니에요, 아니야. 우리 시어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실 거야. 그냥 큰아들을 조금 더 아끼시는 것뿐이지, 돈을 따로 주실 리는 없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들이 몇 개 있었어요.
첫째, 큰형님은 일을 안 하는데도 항상 비싼 옷을 입고 다녀요. 명품 가방도 자주 바뀌고요.
둘째, 큰형님 딸아이 교육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사교육을 정말 많이 받더라고요. 피아노에 영어에 수학에... 한 달에 얼마나 나올까 싶을 정도로.
셋째, 큰형님 집은 몇 년 전에 이사를 갔는데, 꽤 큰 아파트로 옮겼어요. 그때 전세금이 어디서 났을까 궁금했거든요.
'설마... 설마 그럴 리는...'
그날 밤은 잠이 안 왔어요. 자꾸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거든요. 혹시 정말로 시어머니가 큰아들네만 따로 도와주고 계신 건 아닐까요?
챕터 2. 의심의 시작
다음 날 아침,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났어요.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커피를 마시면서 어제 밤 생각들을 정리해봤어요.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아니면 정말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집안일을 하는데, 자꾸 마음이 불안했어요. 그런데 마침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미영아, 나 잠깐 시간 있을 때 가도 되니?"
"네, 어머니. 언제요?"
"지금 가도 될까? 큰애네 갖다 줄 게 있어서 들렀다가 너희 집에도 들를게."
"네, 어머니. 기다리고 있을게요."
큰집을 먼저 들르신다고 하시니까 또 뭔가 찜찜했어요. 항상 큰집이 먼저예요. 뭔가를 갖다 주실 때도, 연락하실 때도.
한 시간 정도 후에 시어머니가 오셨어요. 손에 쇼핑백을 하나 들고 계시더라고요.
"어머니,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아니야, 괜찮아. 이거 너희 줄려고 가져왔어."
쇼핑백을 열어보니 과일이 들어있었어요. 사과하고 배 한 봉지씩.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어요. 큰집에는 뭘 갖다 주셨을까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거예요."
"그래, 잘 먹어라. 아, 그리고 추석 때 말인데..."
역시 추석 이야기가 나오네요.
"큰집에서 좀 준비하기 어렵다고 하니까, 너희가 조금 더 해줘야겠어. 괜찮지?"
"네, 어머니. 준비해둘게요."
"우리 미영이는 정말 착해. 큰며느리는 요즘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
또 큰형님 이야기예요. 사실 큰형님이 몸이 안 좋다는 말을 들은 지 벌써 몇 년이 됐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걱정했는데, 이제는... 좀 의심스러워요.
시어머니가 가신 후에, 저는 큰형님에게 전화를 해봤어요. 그냥 안부 인사 차 말이에요.
"형님, 안녕하세요. 미영이에요."
"아, 동서구나. 안녕."
"몸은 좀 어떠세요? 어머니께서 컨디션이 안 좋으시다고..."
"아, 그냥 조금 피곤해서. 별거 아니야."
목소리는 멀쩡하더라고요. 피곤하다고 하시는데, 목소리에 힘도 있고 별로 아파 보이지도 않고.
"그럼 추석 준비는 어떻게 하실까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아, 미영아가 다 준비하면 되지 뭐. 나는 좀 힘들어서."
역시 그렇게 나오시네요. 매년 똑같은 패턴이에요.
전화를 끊고 나니 더 의심스러워졌어요. 정말 몸이 안 좋으신 건지, 아니면 그냥 핑계인 건지...
그날 오후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갔어요. 추석 준비를 미리미리 해둬야 하거든요. 장을 보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어요. 큰집에는 뭘 갖다 주셨을까?
마트에서 나오는데, 우연히 큰형님을 만났어요. 아까 전화에서는 피곤하다고 하시더니, 멀쩡하게 쇼핑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어? 형님!"
"아, 미영아. 여기서 만나네."
큰형님 카트를 보니까 좀 놀랐어요. 비싼 한우가 들어있고, 유기농 과일들, 수입 치즈... 평소 저희 집에서는 사기 어려운 것들이 가득했어요.
"와, 좋은 것들 많이 사셨네요."
"응, 좀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런데 계산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의외였어요. 계산 금액이 삼십만 원이 넘는데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카드로 쉽게 결제하시고.
'어? 아주버님 월급이 그렇게 많았나?'
아주버님은 일반 회사원이에요. 저희 남편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희는 삼십만 원을 그렇게 쉽게 쓸 수는 없거든요.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해봤어요.
"여보, 오늘 형님을 마트에서 만났는데..."
"그게... 장을 되게 비싸게 보시더라고. 한 번에 삼십만 원 넘게."
"아, 그래? 뭐 특별한 일이 있나보지."
남편은 별로 관심 없어 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자꾸 신경이 쓰였어요.
그날 밤, 또 잠이 안 왔어요. 계속 궁금한 게 생기더라고요. 큰집 사정이 우리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이유가 뭘까? 아주버님 월급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혹시 정말로 시어머니가 따로 도와주고 계시는 건 아닐까요?
챕터 3. 추석 당일의 충격
추석 당일이 됐어요.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서 음식 준비를 시작했어요. 전도 부쳐야 하고, 나물도 무쳐야 하고, 갈비찜도 만들어야 하고...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어요.
남편은 아침에 아주버님과 함께 성묘를 갔고, 저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음식 준비를 마저 했어요.
"엄마, 왜 우리만 이렇게 바빠요? 큰아빠네는 뭐 해요?"
열살 된 첫째 진우가 물어봤어요.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나 봐요.
"큰어머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우리가 도와드리는 거야."
오후 두 시쯤 되니까 친척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어요. 시어머니는 현관에서 맞이하시면서 큰형님 가족을 소개해주세요.
"이게 우리 큰아들이고, 큰며느리야. 손녀도 벌써 대학생이 됐어."
그리고는 저희를 소개하실 때는 그냥 간단하게요.
"여긴 둘째 며느리고..."
매년 똑같은 패턴이에요. 큰아들네는 자랑스럽게 소개하시고, 저희는 그냥 덤으로 소개하시는 느낌.
제사상을 차리는데, 큰형님은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셨어요. 거실에서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시고, 저만 부엌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바쁘게 움직였어요.
"미영아, 수고 많다."
친척 중 한 분이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말이 더 서글프게 느껴졌어요. 수고한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정작 시어머니와 큰형님은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이 됐어요. 이때가 제일 기대되면서도 무서운 시간이에요. 시어머니가 용돈을 나눠주시거든요.
"자, 얘들아. 어머니가 용돈 준비했다."
시어머니가 봉투들을 꺼내셨어요. 몇 개의 봉투가 있는데, 크기가 다르더라고요.
"큰아들, 수고했어. 이거 받아라."
아주버님에게 주신 봉투는 두툼했어요. 겉으로 봐도 돈이 꽤 많이 들어있는 게 보였어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아주버님이 봉투를 받으면서 웃으셨어요.
그 다음은 큰형님 차례였어요.
"큰며느리도 고생했어. 몸 안 좋은데 와줘서 고마워."
큰형님에게도 두툼한 봉투를 주셨어요. 아주버님님 것과 비슷한 두께였어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 차례가 왔어요.
"둘째도 고생 많았어."
제가 받은 봉투는... 확실히 얇았어요. 촉감만 봐도 큰형님네 봉투와는 차이가 났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남편도 비슷한 두께의 봉투를 받았어요.
그 순간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요. 물론 돈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차이를 두시니까...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큰형님이 봉투를 확인하는 걸 봤어요. 봉투 안에서 오만원권 지폐가 여러 장 나오더라고요. 대충 계산해봐도 백만 원은 넘어 보였어요.
'백만 원이라고?'
저희 봉투는 얼마나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확인해봤어요.
십만 원이었어요.
남편 봉투도 아마 똑같을 거예요. 합쳐봐야 이십만 원. 큰형님네는 각자 백만 원씩 받으셨으니까 이백만 원인 거고요.
'열 배 차이라고?'
그때 정말 충격이었어요. 물론 맏아들이니까 조금 더 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두 배, 세 배 정도는... 그런데 열 배라니.
가슴이 답답했어요. 이게 정상적인 건가? 아무리 맏아들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여보, 형님네 봉투 얼마나 들어있는 것 같아?"
"글쎄, 우리보다는 좀 더 들어있겠지. 큰아들이니까."
"얼마나 더?"
"뭐, 두세 배 정도?"
남편도 열 배 차이가 날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있었어요.
"나는 십만 원이었어."
"응, 나도 십만 원이었어. 그럼 형님네는... 삼십만 원 정도?"
"아니야. 내가 봤는데 백만 원은 넘어 보이더라."
"뭐? 백만 원?"
남편도 놀라는 것 같았어요.
"각자 백만 원씩 받으신 것 같아. 그럼 총 이백만 원인 거고, 우리는 이십만 원..."
차 안이 조용해졌어요. 남편도 뭔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어요.
"음... 좀 차이가 크긴 하네."
"좀이 아니라 열 배야, 열 배."
"그래도 어머니 돈인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남편은 여전히 소극적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상했어요. 아무리 맏아들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날 밤, 잠이 안 왔어요. 계속 생각이 났거든요. 십만 원과 백만 원의 차이. 이십만 원과 이백만 원의 차이.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매년 추석이나 설날 때마다 이런 차이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냥 큰형님네가 조금 더 받으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리고 또 다른 의심이 들었어요. 혹시 명절 때만 이런 게 아니라, 평소에도 따로 도움을 받고 계시는 건 아닐까?
인터넷에서 본 그 댓글이 계속 생각났어요.
"시어머니가 매달 큰아들네만 용돈 줘요..."
혹시 우리 시어머니도?
챕터 4. 의외의 발견
추석이 지나고 일주일 정도 후였어요. 평상시처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는데,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미영아, 나 병원에 좀 갔다 와야겠어."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
"아니야, 정기검진 받으러 가는 건데, 혼자 가기가 좀 그래서. 너 시간 있으면 같이 가줄 수 있을까?"
큰형님한테는 안 부탁하시나 싶었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네, 어머니. 언제 가실까요?"
"내일 오전 열시에 예약했어. 큰 병원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알겠습니다. 모셔다 드릴게요."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어요. 검진 받으시는 동안 저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핸드백을 의자에 두고 가신 거예요.
처음에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근데 핸드백이 열려있어서 지갑이 조금 보이더라고요. 그냥 덮어드리려고 했는데...
그때 지갑 안에서 뭔가 하얀 종이가 보였어요. 은행 영수증 같아 보였는데, 숫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송금 500,000원'
오십만 원을 송금하셨다는 거였어요. 어디로 송금하신 걸까? 궁금해서 자세히 보니까... 받는 사람 이름이 큰형님이었어요.
'어? 이게 뭐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남의 물건을 함부로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정말 궁금했어요. 언제 송금하신 걸까? 왜 오십만 원을?
그때 시어머니가 검진을 마치고 나오셨어요.
"미영아, 고생했다. 오래 기다렸지?"
"아니에요, 어머니. 검진 결과는 어떠세요?"
"다행히 별 이상 없다고 하네. 나이 먹으니까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병원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자꾸만 그 영수증 생각이 났어요. 오십만 원 송금. 큰형님에게.
"어머니, 큰형님 요즘 어떠세요?"
"큰애들? 잘 지내고 있어. 요즘 회사 일이 좀 바쁘다고 하더라고."
"형님은 몸이 좀 나아지셨나요?"
"글쎄, 여전히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가끔 도와주고 있어."
도와준다는 게 뭘까요? 혹시 돈으로 도와주신다는 뜻일까요?
"어떻게 도와주세요?"
"뭐,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으면 사다 주기도 하고..."
명확한 대답을 안 해주시네요. 뭔가 숨기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시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저희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계속 궁금했어요. 그 오십만 원이 뭐였을까?
며칠 후에 또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큰형님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온 거예요.
"동서, 시간 있을 때 쇼핑 같이 갈래?"
평소에는 이런 연락을 잘 안 하시는데, 갑자기 웬 쇼핑 제안이지?
"네, 좋아요. 언제요?"
"이번 주말에? 백화점에서 사고 싶은 게 있어서."
주말에 큰형님과 함께 백화점에 갔어요. 그런데 정말 놀랐어요. 큰형님이 쇼핑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먼저 명품 매장에 들어가시더라고요. 가방을 하나 고르시는데, 가격표를 보니까 백오십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바로 결제하시는 거예요.
"와, 형님. 예쁘네요."
"응, 마음에 들어서. 오래 갖고 싶었거든."
그 다음에는 옷 매장으로 가셨어요. 코트를 하나 고르시는데, 이것도 팔십만 원이었어요. 이것도 바로 결제.
"형님, 정말 좋은 거 많이 사시네요."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야. 가끔은 나한테도 투자해야지."
특별한 날이라니, 무슨 특별한 날일까요?
점심 먹으면서 넌지시 물어봤어요.
"형님, 요즘 용돈이 늘어나셨나 봐요. 좋은 거 많이 사시네요."
"아, 그냥... 어머니가 가끔 용돈을 주셔서."
역시 그렇구나! 시어머니가 따로 용돈을 주고 계신 거였어요.
"어머니가 용돈을 주세요?"
"응, 가끔씩. 내가 몸이 안 좋다고 하니까 걱정해주셔서."
"얼마나 주세요?"
너무 직접적인 질문인가 싶어서 살짝 걱정했는데, 큰형님은 별로 개의치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한 달에 오십만 원 정도? 생활비 보태라고."
오십만 원이라고요? 한 달에? 그럼 일 년이면 육백만 원이네요.
"매달 오십만 원씩요?"
"응, 벌써 몇 년 됐어. 어머니가 큰아들네는 챙겨줘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몇 년 됐다고요? 그럼 지금까지 얼마를 받으신 거예요?
"아주버님도 받으세요?"
"당연하지. 우리 둘 다 받아. 어머니가 아들내외 둘 다 챙겨주셔야 한다고 하시거든."
그럼 한 달에 백만 원씩 받고 계신다는 거네요. 일 년이면 천이백만 원이고...
"그럼 우리는..." 하다가 말을 멈췄어요.
"너희는? 뭐?"
"아, 아니에요. 그냥..."
사실 우리는 그런 용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명절 때 받는 십만 원이 전부거든요.
"미영아, 너희는 안 받아?"
"저희는... 별로..."
"어? 그래? 어머니가 안 주셔? 이상하네."
이상하다고요?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왜 큰아들네만 받는 걸까요?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했어요.
"여보, 큰집에서 매달 용돈 받는 거 알고 있었어?"
"용돈? 무슨 용돈?"
"어머니가 매달 주시는 용돈. 형님하고 형수님 각자 오십만 원씩, 총 백만 원."
"뭐? 백만 원씩?"
남편도 놀라는 것 같았어요.
"몇 년째 그렇게 받고 있다고 하던데..."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형이 그런 말 한 적 없어."
"당연히 안 했겠지. 우리가 알면 기분 나빠할 거 아니야."
남편이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그런데 어머니 돈이 그렇게 많으시나? 매달 백만 원씩 주실 정도로?"
그러게요. 시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시어머니는 연금과 적금 이자로 생활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매달 백만 원씩 줄 여유가 있으실까요?
챕터 5. 충격적인 진실
며칠 후에 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시어머니가 갑자기 은행에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저한테 같이 가달라고 하신 거예요.
"미영아, 나 은행에 볼일이 있는데, 혼자 가기가 좀 그래서. 같이 가줄 수 있을까?"
"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적금 하나 해지하려고. 만기가 됐거든."
은행에 도착해서 시어머니는 창구로 가시고, 저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창구 직원과 이야기하시는 게 조금 들렸어요.
"매달 자동이체 되던 거 중단하고 싶어요."
"어디로 보내시던 자동이체요?"
"네, 아들 계좌로 가던 거요."
아들 계좌라니? 아주버님님 계좌 말씀이신가요?
"월 얼마씩 보내시던 거죠?"
"오십만 원씩이요."
역시 그거였어요! 매달 아주버님에게 오십만 원씩 자동이체로 보내고 계셨던 거예요.
"중단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들이 이제 괜찮다고 해서요."
이제 괜찮다고? 뭐가 괜찮다는 걸까요?
시어머니가 업무를 마치고 나오셨어요.
"어머니, 일 다 보셨어요?"
"응, 끝났어. 이제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는 길에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어머니, 자동이체 중단하신다고 하시던데..."
"아, 그거? 큰아들한테 매달 보내던 건데, 이제 안 보내기로 했어."
"왜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큰아들이 이제 안 받겠다고 하더라고. 자기들끼리 해보겠다고."
어? 이상하네요. 큰형님은 분명히 계속 받고 계신다고 했는데, 아주버님은 안 받겠다고 하셨다고요?
"언제부터 보내셨었어요?"
"한 삼년 정도 됐나? 큰아들이 좀 힘들다고 해서."
삼년이요? 그럼 지금까지 천팔백만 원 정도를 보내주신 거네요.
"그럼 형님은 어떻게 하세요?"
"큰며느리? 걔한테도 따로 주고 있어."
따로 준다고요? 그럼 아주버님 오십만 원, 큰형님 오십만 원, 총 백만 원을 매달 주고 계셨던 거예요.
결국 제가 알고 있던 게
맞았어요. 매달 백만 원씩, 몇 년째 계속.
그런데 또 궁금한 게 생겼어요. 시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생기는 걸까요?
"어머니, 그런데 매달 그렇게 많은 돈을... 괜찮으세요?"
"괜찮다니?"
"경제적으로 무리는 안 되시나 해서요."
시어머니가 잠시 조용해지시더니 말씀하셨어요.
"사실은... 좀 힘들긴 하지. 하지만 큰아들이 힘들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무리해서 주고 계셨던 건가요?
"어떻게 힘드세요?"
"내 적금을 좀 깨먹었어. 그리고 생활비도 줄이고..."
적금을 깨서 큰아들네 용돈을 주셨다고요? 생활비까지 줄이면서?
"어머니, 그럼 어머니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나야 혼자 사니까 뭐. 조금 아껴 살면 되지."
그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시어머니가 당신 생활비를 줄이면서까지 큰아들네를 도와주고 계셨던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고...
"어머니, 왜 말씀 안 해주셨어요?" 저는 묘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아이키우고 생활비 나가는 거야 저희도 똑같은 상황인데 몇 년간 큰아들만 챙겨주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지요.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모든 걸 말했어요. 시어머니가 매달 백만 원씩 큰집에 주고 계신다는 것, 그것 때문에 당신 적금까지 깨서 생활비를 줄이고 계신다는 것...
남편이 얼굴이 하얘졌어요.
"뭐라고? 어머니가 적금을 깨서?"
"응. 삼년째 그렇게 하고 계셨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큰형이 왜 그런 얘기를 안 했지? 어머니가 힘드시다는 걸 알면서..."
"모르니까 그렇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하거나."
남편이 화가 나는 것 같았어요. 평소에는 큰형님을 존경하고 따르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내가 형한테 한 번 물어볼게."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이건 너무한 거 같아. 어머니가 힘드시는데..."
그날 저녁에 남편이 형에게 전화했어요. 저는 옆에서 들었어요.
"형, 나 성호야."
"어, 성호. 왜?"
"형, 어머니가 매달 용돈 주시는 거 알고 있었어?"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어요.
"...뭔 소리야?"
"어머니가 형하고 형수님한테 매달 백만 원씩 주고 계시다는데, 진짜야?"
"어떻게 그걸 알았어?"
역시 사실이었어요. 아주버님이 확인해준 거나 다름없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적금까지 깨서 주고 계셨다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적금을 깨서?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
"몰랐어? 정말 몰랐다고?"
"...사실 좀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어. 하지만 어머니가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뭐라고 하겠어?"
"그럼 거절했어야지! 어머니가 힘드시는 걸 알면서..."
"야, 너도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알잖아. 나도 힘들어."
"우리도 힘들어! 근데 우리는 어머니한테 손 벌리고 있지 않아!"
전화 속에서 큰형님 목소리가 조금 커졌어요.
"뭐야, 그럼 나를 비난하는 거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이제라도 그만 받았으면 좋겠어. 어머니 힘드시잖아."
"...알겠어. 생각해볼게."
전화가 끊어졌어요.
챕터 6. 가족 회의
전화 통화 다음 날, 아주버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가족끼리 모여서 얘기를 해보자는 거였어요.
"성호야, 우리 가족끼리 만나서 얘기해보자. 어머니도 모시고."
"언제?"
"이번 주말에. 우리 집으로 올래?"
주말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큰형님 집에 갔어요. 가는 길에 시어머니가 걱정스러워하시더라고요.
"뭔 일로 갑자기 모이자고 하는 걸까?"
"그냥 가족끼리 얘기할 일이 있나 봐요, 어머니."
큰형님 집에 도착하니까 큰형님도 나와 있었어요. 분위기가 좀 어색했어요.
"어서 오세요."
큰형님이 인사해주셨는데, 평소보다 표정이 좀 딱딱했어요.
거실에 앉았는데, 누가 먼저 말을 꺼낼까 하는 분위기였어요. 시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계속 두리번거리시고...
결국 아주버님이 먼저 말을 꺼냈어요.
"어머니, 사실 우리가 오늘 모인 이유는..."
아주버님이 말을 하려는데, 큰형님이 끼어들었어요.
"어머니가 우리한테 용돈 주시는 거 때문에 문제가 된 것 같아서요."
시어머니가 놀라시더라고요.
"문제? 무슨 문제?"
남편이 설명했어요.
"어머니, 어머니가 적금까지 깨서 형님네 용돈 주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왜 그런 말씀 안 해주셨어요? 힘드시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당황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니야, 난 괜찮아. 큰아들이 힘들다고 하니까..."
그때 큰형님이 말했어요.
"어머니, 저희가 힘들다고 한 적 없어요."
"어? 뭐라고?"
"저희는 어머니가 힘드시면서까지 도와주시는 줄 몰랐어요. 어머니가 여유가 있으셔서 주시는 줄 알았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예요? 분명히 큰형님이 받고 계시다고 했잖아요.
"형수님, 그럼 지금까지 받으신 돈은 뭐예요?"
"그건... 어머니가 주시니까 받은 거지, 저희가 달라고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받긴 받으셨잖아요. 몇 년째."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어요. 아주버님이 끼어들었어요.
"야, 성호. 우리를 뭘로 보는 거야? 우리가 어머니 돈을 뺏어먹은 것처럼 말하네."
"그런 뜻이 아니라, 어머니가 힘드시는 걸 알았으면..."
"우리도 몰랐다고! 어머니가 여유 있으셔서 주시는 줄 알았어!"
그때 시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얘들아, 싸우지 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야."
"어머니, 하지만 적금까지 깨시면서 하실 일은 아니었어요."
"그게... 사실은..."
시어머니가 말을 망설이시더라고요.
"사실은 뭐예요, 어머니?"
"큰아들이... 빚이 있다고 하더라고."
빚이라고요? 이게 무슨 소리예요?
큰형님 얼굴이 빨개졌어요.
"어머니!"
"뭐야, 형. 빚이 있다고?"
"그게... 좀 복잡한 상황이야."
큰형님도 처음 듣는 것 같았어요.
"여보, 뭔 빚?"
아주버님이 한참 고민하더니 말했어요.
"사실은... 투자를 좀 잘못해서. 몇 년 전에."
"투자를 잘못해서? 얼마나?"
"한... 오천만 원 정도."
오천만 원이라고요? 그 큰 돈을 잃으셨다고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매달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가려고."
"그럼 지금까지 받으신 돈은 빚 갚는데 쓰신 거예요?"
"그런 셈이지."
큰형님이 놀라는 것 같았어요.
"여보, 나는 그 돈이 생활비 보태라고 주시는 줄 알았는데?"
"그... 그렇게 말했지. 당신이 걱정할까 봐."
이럴 수가! 큰형님도 진짜 상황을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시어머니가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큰아들이 빚쟁이들한테 쫓긴다고 하니까, 내가 어떻게 외면하겠어. 그래서 내 적금을 깨서라도 도와준 거야."
빚쟁이들에게 쫓긴다고요? 그 정도로 심각했던 거예요?
남편이 화가 났는지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형! 그럼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어야지! 어머니 혼자 고생하게 두고!"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집안에 걱정 끼치기 싫어서..."
"걱정 끼치기 싫어서? 그런데 어머니한테는 걱정 끼쳐도 되는 거예요?"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큰형님이 갑자기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럼 나는 뭐가 돼요? 나는 생활비 보태라고 주시는 줄 알고 고맙게 받았는데, 알고 보니 빚 때문이었다고요?"
"당신도 사치를 좀 줄였으면..."
"사치요? 내가 언제 사치를 부렸어요?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가끔 옷 사고 그런 게 사치예요?"
가족 회의는 완전히 엉망이 됐어요. 서로 소리를 지르고, 시어머니는 울기 시작하시고...
"그만해! 다들 그만해!"
시어머니가 소리치셨어요.
"내가 바보였어. 큰아들 도와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가족끼리 싸우게 만들고..."
시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니까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어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우리가 잘못했어요."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큰아들만 생각하고, 둘째는 생각 안 하고..."
그 순간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시어머니가 정말 후회하고 계시는 것 같았거든요.
챕터 7. 무너진 믿음과 폭발
거실은 침묵만이 감돌고, 시어머니는 울면서 큰아들에게 고개를 못 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큰형님의 목소리에 저도 울컥했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쌓여 있던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 아주버님 빚 때문에 힘드셨던 건 알겠어요. 그런데 왜 저희는 늘 뒷전이었나요? 봉투 차별, 명절 노역... 아버님 살아계실 때도 똑같았잖아요. 저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순간 방안이 얼어붙었어요. 시어머니는 당황한 듯 손수건만 만지작거렸고, 아주버님은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미영아, 네 마음 알고 있다. 하지만 큰애이 빚 때문에... 그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그래서 어머니 통장에서 오십만 원씩 빼다가 큰형님네 생활비로 주신 거예요? 그뿐인가요? 제가 본 내역에는 수백만 원씩 빠져 있던데요."
아주버님이 움찔했어요.
"제수씨, 그건... 내가 설명할게. 주식에 실패하고, 친구랑 카페 차리다가 사기 당했어..."
"그럼 왜 저희한테 한마디 상의도 안 하셨어요? 가족이라면서요! 게다가 명품 사시고, 조카 과외비로 몇백씩 쓰셨던 건 뭐예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작은 비명이 터졌어요. 큰형님이었어요.
"동서, 그건... 사실 시어머니가 '애들 공부엔 아끼지 말라'고 하셔서... 나도 몰랐어!"
하지만 저는 믿을 수 없었어요. 대출까지 내서 명품을 사고 과외를 시켰다니, 이게 빚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되자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돈 없어서 명절상 차릴 돈은 없다고 하시던 분들이, 명품과 과외비엔 돈을 썼다고요? 어머니, 형님, 이제는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빚의 진짜 이유가 뭐예요?"
침묵 끝에 아주버님이 낮게 말했어요.
"...나 사실 빚을 더 냈어. 장인어른 병원비까지 책임지느라. 그 과정에서 아버지 명의 땅을 담보로 잡혔어."
챕터 8. 감춰진 빚과 배신
며칠 후, 남편과 저는 아버님 땅 서류를 들고 은행을 찾았어요. 담당자는 서류를 훑어보더니 믿을 수 없는 말을 했어요.
"이 땅 담보대출에는 김성호 씨와 김미영 씨 공동명의가 들어가 있네요."
"뭐라고요? 저희는 서류에 서명한 적이 없어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어요. 몇 년 전 시어머니가 "등기 관련 서류에 잠깐 도장만 찍어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빚 보증 서류였던 거예요.
집으로 돌아와 따졌어요.
"어머니! 아버지 땅 담보로 돈을 빌리실 때 왜 저희 이름까지 올리신 거예요? 저희 허락도 없이?"
시어머니는 얼굴이 새파래졌어요.
"미안하다... 그때는 너무 급했어. 너희 도장이 필요했다. 큰아들 빚을 해결해야..."
아주버님은 무릎을 꿇었어요.
"성호야... 미안하다. 어머니가 무리하신 거, 나도 말리려 했어. 하지만... 나도 두려웠어. 빚쟁이들이 가족들한테 갈까 봐."
큰형님은 울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사실... 사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명품, 학원... 주변 시댁들처럼 살고 싶어서 남편을 다그쳤어. 그래서 이런 결과가... 미안해."
하지만 미안하다고 끝낼 일이 아니었어요. 저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형님, 빚의 절반은 사돈어른 병원비라지만, 절반은 사치와 무책임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제부터는 저희가 무조건 도와주는 일은 없어요. 법적으로 정리합시다. 담보를 저희 이름으로 잡힌 부분은 당장 빼세요. 그리고 아버지 땅은 원래 아버지가 저희에게 주신다고 쓴 메모까지 있어요. 돌려주세요."
챕터 9. 거래와 조건
며칠 뒤, 가족 회의가 열렸어요. 이번에는 변호사도 함께였어요. 변호사는 저희의 요구를 문서로 작성했어요.
1. 담보대출 정리: 아버지 땅 담보에서 둘째 부부 명의를 즉시 제외하고, 장남과 시어머니가 책임진다.
2. 부채 상환 계약: 장남 가족이 월별 상환액을 정하고, 둘째가 돕는 부분은 차용증을 써서 이자까지 적는다.
3. 재산 분할: 아버지의 메모에 따라 땅과 집 중 일부를 둘째에게 이전한다.
4. 명절·집안일: 앞으로 명절 음식 준비와 비용, 용돈은 형제들이 공평하게 나누고, 일 분담표를 만든다.
장남은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도장을 찍었어요.
"내가 먼저 집을 줄일게. 차도 팔고, 딸아이 과외도 줄일 거야. 생활비도 확 줄이겠어."
큰형님도 명품 가방을 내다 팔겠다고 했어요. 시어머니 역시 금목걸이와 적금을 깨기로 했어요.
"이제는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다. 나도 잘못했고, 갚을 건 갚아야 한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조건을 덧붙였어요.
"형, 이 계약서에 '변제 완료 시까지 매년 제사와 명절상 차리는 일은 돌아가며 한다'고 넣어요. 또, 어머니는 두 집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각서도 쓰세요."
어머니는 한참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명했어요.
챕터 10. 마지막 반전과 새 시작
계약이 체결된 지 몇 달 후, 진짜 변화가 시작됐어요. 아주버님은 외제차를 팔고 작은 중고차로 바꿨어요. 큰형님은 오후에는 마트에서, 저녁에는 동네 카페에서 일했어요. 조카는 과외를 줄이고 도서관을 다녔어요. 이 과정에서 부부싸움도 많았지만, 스스로 벌어 쓰는 기쁨을 느끼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시어머니는 더는 장남을 특별 대우하지 않았어요. 용돈도 똑같이 주고, 명절 음식 준비도 분담표대로 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속으로 웃었어요. "이제야 공평해지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작은 금고를 발견했어요. 열쇠를 찾아 열어보니, 오래된 예금 통장과 함께 손편지가 있었어요.
"내가 죽고 나면 이 돈을 두 아들 가족이 똑같이 나눠 쓰거라. 서로 미워하지 말고, 어려울 때 서로 돕되, 서로의 몫을 인정해라."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아버지는 생전에 이미 저희가 싸울 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저희는 그 예금을 빚 상환에 일부 보태고, 나머지는 아이들 교육비로 공평하게 나누었어요. 또한 매년 명절이 끝날 때마다 가족 회의를 열어 가계와 제사비를 투명하게 공개했어요.
저도 여전히 속상할 때가 있어요. 차남이라는 이유로, 작은 며느리라는 이유로 받았던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3년이 지난 지금, 저희 가족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큰형님네는 빚을 거의 다 갚았고, 저희도 아버님이 남겨주신 땅 일부를 상속받았어요.
무엇보다 명절이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에요. 분담표에 따라 음식을 준비하고, 비용도 공평하게 나누고, 용돈도 똑같이 받아요.
때로는 여전히 갈등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대화해요. 가족이란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 존중하고 공평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혹시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이 있다면,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세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되는 불공평함은 없어요. 여러분도 분명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