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어 공부, 브런치 작가, 그리고 풀코스 마라톤 완주. 올해 내가 이루고자 세웠던 목표 세 가지다.
영어 공부는 10월이 되도록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않고 일찌감치 실패,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브런치에서는 글 하나로 작가 등록해 주셔서 이렇게 브런치북 연재도 하고 있다.
남은 건 첫 풀코스 마라톤. 24년 11월 3일로 예정되어 있는 JTBC 서울마라톤이 그것이다. 올림픽에서나 보던 그 42.195km를 내가 뛰겠다고 도전하게 될 줄이야.
10k 대회 두어 번 나갔을 때만 해도 조금만 더 기록을 경신하고 싶다 정도였었는데 그러다 보니 하프도 한 번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프를 두어 번 뛰고 나니 하프 기록도 향상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풀코스까지 가더라.
지금까지 하프마라톤은 7번 완주를 했고 올해 3월 1시간 54분 13초가 나의 최고 기록이다. 속도에 욕심은 나지만 조급하게 기록 경신에 급급하기보다는 천천히 꾸준하게 뛰면서 무리하지 않고 부상 없이 즐기는 러닝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자 목표이기 때문에 대회에서도 평소 연습하는 페이스 정도로만 뛰다 보니 사실 기록만 보자면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소소한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풀코스는 얘기가 다르다.
풀코스 완주자는 영광스럽게도 '마라토너'라 불릴 수 있다. 서브3 주자도, 5시간 30분 주자도 모두가 칭송받아 마땅하고 존경받을만하다. 풀코스 완주란 그런 것이다. 기록보다는 완주 그 자체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 풀코스 완주를 위해 많은 러너들이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년여를 열심히 준비하는데,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날이 추워 러닝 하기 힘들다는 핑계 하나, 어두워서 뛰기 어렵다는 핑계 하나, 오늘따라 배가 불러서 못 뛰겠다는 핑계 하나, 뛰기엔 너무 시간이 늦었다는 핑계 하나, 뭐 이런저런 핑계 모으자면 어느 오래된 가게 벽면에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 마냥 차고 넘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인터넷을 통해 이리저리 공부를 해보면 풀코스 마라톤을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집중 훈련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 3개월 동안 적어도 월 마일리지 150~200km은 쌓아야 한다고들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 치고 5일은 조깅이나 포인트 훈련으로 일평균 10km씩, 주말 하루는 20km 이상 LSD 훈련, 이렇게만 해도 주 70km씩 계산하면 4주 280km라는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는데 백번 양보해도 200km가 미니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는 최근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마일리지 100km를 채운 적이 없다. 이런 훈련량으로 첫 풀코스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왕 올해의 목표로 세운 것이니 완주를 목표로 일단 달려나 보자 해서 풀코스 전에 무조건 한두 번은 해야 한다는 30km LSD 훈련을 지난주에 무사히(?) 완수했다.
30km. 풀코스 마라톤의 진정한 시작은 30km부터라는 말이 있다. 30km 이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억지로라도 달릴 수 있지만 30~35km 구간에서 육체의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하고 DNF(Did Not Finish), 즉 포기하는 주자들이 속출한다고 한다. 호흡이 가빠져서 못 뛰는 것이 아니라 다리 근육 경련이나 아예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다리가 잠긴다고들 말한다.)라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뛸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30km를 완주하면 어떻게든 풀코스는 완주 가능하다고 러너들 사이에서는 보고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대회 한 달 전이나 2주 전쯤에 30km 이상 LSD 훈련을 마치는 것이다.
LSD 훈련은 Long Slow Distance라고 해서 옆사람과 원활하게 대화할 정도의 느리고 안정적인 페이스로 긴 시간, 긴 거리를 뛰는 훈련이다. 이전까지 내가 했던 가장 긴 LSD 훈련은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면서 17~18km 정도를, 9월에 풀코스 훈련 삼아 20km를 뛴 것이 전부. 당장 25km 조차도 나에겐 미지의 영역인 상태였다. 이대로 더 이상은 미룰 수는 없어서 많이 늦었지만 지난 10월 17일, 퇴근 후 곧바로 장비를 챙겨 나갔다. 내가 계획한 코스에는 중간에 급수 시설이 있거나 편의점 등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러닝 베스트에 에너지젤 2개, 소프트플라스크(휴대용 물통) 500ml 물 2개를 챙겨서 집에서 출발하여 김포아라대교 아래쪽 정서진로로 진입, 그 정서진로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미리 정해놓았었다.
목표는 7분 페이스로 30km, 체력이 허락한다면 35km까지 뛰어보는 것이었는데 2km 이후부터 630~640 페이스로 계속 뛰어지길래 그대로 그 페이스를 유지해서 뛰었다.
일주일 전에 11km 조깅 이후 중간에 추가적인 훈련 없이 급작스럽게 LSD 훈련을 진행하다 보니 천천히 달린다고 달렸지만 15km 지점을 넘어서자 서서히 피로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LSD 페이스를 잘못 설정한 탓이 크다고 보인다. 엄밀히 따져서 나의 대회 기록이나 평소 훈련 페이스를 고려해 보면 나에게 맞는 LSD 페이스는 700~730이 맞는 것 같다.
16km부터는 650 페이스로 밀리기 시작했고 22km 까지는 유지했으나 역시 22km부터가 문제였다. 하프마라톤 이상의 거리를 처음 달리는 것이다 보니 그 거리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몸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두 다리 모두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하고 양쪽 골반과 사타구니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저절로 페이스는 700으로 느려졌지만 호흡은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심박은 145~150 수준. 오로지 하체만이 내 의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24km 이후부터는 자꾸만 순간 페이스가 710~720으로 밀리는 것을 보고 비록 혼달이었지만 일부러 내뱉는 호흡에 소리를 섞으면서 파이팅을 불어넣으며(늦은 저녁 시간이라 주로에는 간간이 지나가는 자전거 라이더 몇 외에는 나밖에 없었다.) 크게 크게 호흡을 하면서 700 페이스는 유지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자꾸만 잠기는 다리는 정말 어쩔 수가 없더라. 결국 중간에 골반 통증 때문에 도저히 페이스 유지가 어렵고 무릎이 자꾸만 올라오지 않을 때 30초 정도 잠시 멈춰 서서 햄스트링과 골반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조금 풀어주고 회복한 다음 다시 뛰기를 수차례. 마치 대회 마지막 1~2km 구간에 체력을 쥐어짜서 달리는 것처럼 이 악물고 달려서 30km를 겨우 채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25km 이후에 굳이 700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보다 730으로 밀리더라도 남는 체력으로 5km 정도 더 달려서 35km 거리를 채워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글로는 몇 줄 되지도 않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음 느껴보는 체력적 한계를 마주하며 겨우겨우 30km LSD 훈련을 어렵사리 3시간 25분 만에 마쳤다. 러닝을 끝내자마자 벤치에 앉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내고 근육이 뭉쳐 집에 가지도 못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정적 스트레칭을 수행한 나 자신 정말 칭찬해.
스트레칭을 어느 정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있기를 10여분. 처음에는 정말 멍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앞을 지나쳐 산책하는 사람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멀게 느껴지고 뭔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반쯤 몽롱한 상태랄까. 5분쯤 지나자 서서히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내 몸 상태를 다시 체크해 보았다. 발바닥, 아킬레스건, 종아리, 햄스트링, 어깨 등등 다행히도 크게 통증이 느껴지거나 부상이다 싶을 정도의 부위는 없었지만 역시나 골반은 꽤나 통증이 있었다. 걷는 동작은 크게 무리 없었지만 달리는 동작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나마 이만하길 다행인 건지.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택시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주에 있을 마라톤 대회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먼저 풀코스에 대한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10km 정도만 더 뛰면 되는 거네?! 25km부터 이 악물고 뛰지 말고 35km까지 체력에 맞게 버티면서 뛰다가 그 이후부터 이 악물어보면 어떻게든 완주는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문득 들었다.
두번째로 풀코스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30km 까지가 이렇게나 힘든데 12km를 더 뛰어야 한다고?! 1~2km 도 아니고 12km를 아무리 걷뛰(걷다가 뛰다가)하더라도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근거 있는 두려움이 문득 들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30km 이후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완주하게 될 것인가. 경험해 본 30km까지에 대한 ’ 근거 있는 두려움’으로 포기하게 될 것인가.
결국 미지의 약 12km는 자신감과 두려움이 상쇄되어 0이 되고 오롯이 나의 육체와 의지만이 남은 상태에서 맞이하게 되겠지.
이런 의문과 의심, 초조함은 그간 나의 훈련이 부족했음의 반증이다. 조급한 마음에 남은 기간 무리한 훈련을 강행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컨디션 조절만 잘하고 조깅으로 컨디션 유지만 잘하자. 욕심에 비해 게으름이 너무 컸던 나 자신을 반성하자.
첫 30km LSD 훈련을 통해 나는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감과 두려움을 함께 얻고야 말았다. 이런 나 곧 있을 첫 풀코스 마라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