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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pr 16. 2020

나는 두렵다

1

작년 이맘때쯤. 나는 병원에 있었다.

딸의 돌잔치를 치르고 얼마 안 되고 그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나는 병원에 있었다.

작은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하며 복부 어딘가에 복수가 차있다는 소견을 들은 우리 엄마는 몸의 큰 이상이 없으니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나는 딸을 키우느라 정신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의 그 증상에 한마디만 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봐 엄마. 그 말 한마디에 결코 움직이지 않을 엄마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 한마디를 했다는 걸로 나는 그래도 엄마에게 가보라고 했어라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가 몇 달 뒤. 그 둔한 우리 엄마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나 보다. 어느 날 아침 '엄마 지금 밥 먹어' 정도의 일상의 언어처럼 그렇게 '큰 병원 왔는데 더 큰 병원으로 가보래'


그렇게 우리 엄마는 서울 사는 딸의 집으로 왔다. 큰 병원이라는 곳의 소견서를 받아 들고서..... 나는 간호학을 공부했다. 소견서에 적힌 영어단어들이 무얼 의심하는지 알기 싫어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우리 엄마가 암 의심이 된다니. 항상 빌빌거리고 병원을 자주 찾는 아빠와 나와는 달리 엄마는 일 년에 한 번 감기몸살과 안구건조증으로 다니는 안과를 제외하고는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너무 건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도 두렵고 무서웠다. 왜냐면 그렇게 건강했던 우리 외할머니가 처음으로 입원 치료를 받으셨고 그것도 정말 대수롭지 않은 질환이었는데 그렇게 그 길로 영원히 내 곁을 떠나셨다. 그래서 나는 그게 무서웠다. 매일같이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시며 병원에 다니시는 아빠보다도 항상 건강한 엄마가 무서웠다. 그런데 정말 그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정처 없이 흔들리는데 나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엄마의 눈은 절대 내가 흔들려서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떨리고 무서운데 그걸 나는 표현하면 안 되었고 그저 그냥 평범한 시간이 흐르는 듯 아무 일도 없는 듯 엄마에게 정말 별거 아닌 듯 말하며 웃으며 나를 감췄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병원에서 예약을 해도 기본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그곳에서 첫 진료에 수술 전 검사까지 받고 나오는 길. 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불행 중 다행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수술 날까지 다가왔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길 바랬다. 이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앞으로의 엄마의 삶은 나의 몫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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