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동은 이것에 의해 결정됩니다.
40대가 되면, 나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를 잘 알아보는 것, 그걸 ‘메타인지’라고 부른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하자면, '주제 파악'이라고 해도 좋겠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정의한 ‘나’ 말고, 내가 느끼는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내 곁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이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 그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중에서도 ‘말’에 대해 깊게 들여다본다.
말은 곧 태도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결국 내 행동을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앞두고
“어차피 안돼”라고 말하면, 그건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셈이다.
사실 “어차피 안돼”라는 말은 “그건 하기 싫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될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말이다.
어쩌면 마법 주문처럼 작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만히 보면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지도 모른다.
친구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그런 말들이 일상이 된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비슷한 말투와 생각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전제를 깔고 움직이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게 된다.
처음엔 속으로만 부정하던 말이 어느새 내 안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뭘 하겠어.”
“이 나이에 무슨...”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돼.”
점점 더 안 되는 이유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조금씩 무뎌진다.
그런데, 방향을 아주 조금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냥 해.”
이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과보다 해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되고,
어느새 ‘일단 해보는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안돼’라는 말은 멈추게 하지만, ‘그냥 해’는 나를 앞으로 살짝 밀어준다.
차이는 아주 작다.
하지만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변화는 큰 결심이나 다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요즘 내가 믿고 있는 말이 하나 있다.
“나는 내가 만나는 다섯 명의 평균이다.”
가장 자주 함께 있는 다섯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과 행동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 곁의 다섯 사람을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채우면 나도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안돼”라는 말이 익숙한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그렇게 말하게 되고,
“그냥 해”라고 말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는 사람’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