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은 나에게서 끝 낼 수 있기를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예의 없는 행동을 하거나,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도 같은 행동을 반복할 때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별일 아닌데 속에서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땐 대개, 다른 일로 마음이 어지러웠던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런 감정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혼나고, 왜 혼났는지도 모른 채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순간도 있다. 바로 내 결핍을 아이를 통해 해결하려 할 때다.
겉으론 아이를 혼내지만, 사실은 내 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 문제였구나.’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했던 기억. 어른들 앞에서 인사를 머뭇거리던 모습.
자기 마음을 돌려 말하며 핵심을 숨기던 나.
그 모습이 아이에게서 보일 때 화가 나는 건, 아이가 밉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내 모습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시절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를 바란다.
어른들에게 몇 번이고 우렁차게 인사하길 바라고, 자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길 바란다.
나는 아이를 통해 나의 결핍을 채우려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화가 난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늘 같은 곳에 도달한다.
아이를 통해 보게 된, 내가 싫어했던 내 모습.
그게 바로 화의 근원이었다.
나는 아이를 가르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직 다 여물지 못한 내 어린 시절을, 아이를 통해 다시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감정은 언젠가 아이의 아이에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지금의 나를 다독이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성숙해지면,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나는 아이 덕분에 자라고 있었다.
결국, 아이에게 화가 났던 순간은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어른,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회복하려는 부모다.
그런 부모와 함께 자라는 아이는,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갈 힘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