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들에게 지혜를 배웁니다.

삶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by 더블와이파파

6살 아들을 떠올리면, 귓가에 맴도는 말이 하나 있다.

“아빠, 나는?”


엄마, 아빠, 누나가 각자의 할 일을 이야기할 때, 어느새 아들이 뛰어들어 말한다.

“아빠, 나는?”


마트에서 먹거리를 고를 때도 외친다.

“아빠, 내 거는?”


식구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때면 제일 먼저 달려와 묻는다.

“아빠, 나는 뭐 먹어?”


아들의 세계에서는 ‘내가 제일’이 우선이다.


어른은 어떨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절제’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억누르며 산다.


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세월을 지나 사회와 마주한다.

그 안에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겪는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결국, 피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씩 사라진다.

그 빈자리에 ‘남’이 들어온다. 어느새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선임의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고 행동을 조심한다.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고민한다.

가정에서는 가족을 먼저 챙기느라 정작 내 모습은 자꾸 뒤로 밀린다.


하지만 이쯤에서, 아이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인간이 가장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순간은 아이의 마음을 간직할 때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솔직하며, 가장 ‘나’ 다운 순간.


세상의 중심은 ‘나’여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없는데 우주 만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이들을 위해준 뒤 괜스레 허탈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화가 치밀었던 적 있지 않은가?


그건,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기에 생긴 내면의 정당한 외침이다.

나를 먼저 채워야 남을 향한 여유가 생긴다.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남을 챙기면 그 마음은 진심이 되기 어렵다.


그러니, 나부터 돌봐도 괜찮다.


나는,

내가,

나부터,

나로부터.

이제 중심을 ‘나’로 형성해 보자.


“내 잔에 흘러넘치는 물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처럼, 내 마음을 먼저 채운 뒤 남에게 베푸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이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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