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은 단 한 가지의 소원만 빈다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아침마당’을 보게 됐다.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정확한 방송 내용은 몰라도, 그 이름만큼은 대부분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날 아침마당의 주제는〈주부 스타 탄생〉이었다.
다섯 명쯤 되는 일반인이 각자의 사연을 전하고, 노래를 부르는 구성이었다.
그저 흘려듣고 있던 중, 한 출연자의 사연에 문득 귀가 쏠렸다.
이름이 호명되자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회자의 도움을 받아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생후 6개월, 고열로 시력을 잃었다고 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세상을 온전히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표정은 놀라울 만큼 밝았다.
맞은편 관객석에는 남편이 앉아 있었다.
노래를 부르기 전, 그녀는 짧은 사연을 전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남편도 지금은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른 눈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실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밤 남편의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그게 쉽진 않겠죠.”
쑥스러운 미소가 잊히지 않았다.
이어서 남편의 인터뷰.
첫마디는 이랬다.
“아내의 미세한 떨림까지 잘 보입니다.”
그리고 말했다.
“아들과 딸, 하나씩 낳고 잘 살고 싶어요.”
남편 역시 아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물을 흘리며 세상을 제대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그토록 환한 얼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더 큰 불행이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 사실이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어떤가.
걷고 보고 느끼는 데 아무 문제도 없는데 내일이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았던가.
‘보통 사람은 만 가지 행복을 바라지만, 아픈 사람은 단 하나만을 바란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이 잘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잘 살고 있었다.
삶을 충분히 잘 살고 있었다.
행복한 삶이었다.
그래서 내 기도의 방향도 바꿨다.
그들의 아주 당연한 꿈이 정말 당연하게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그렇게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