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개그우먼 장도연이 자신의 목표를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았다.
장도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노력’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모습에서 웃음을 만들려는 태도다.
역시 그녀에게는 남다른 목표가 있었다.
“제 목표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개그를 하는 거예요.”
웃음을 주는 일이 그녀의 직업이지만,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장도연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말 한마디에도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고 한다.
그 조심은 말뿐이 아니었다.
말을 조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녀는 10년 넘게 매일 종이 신문을 읽었다고 한다.
신문을 읽는 일은 단지 뉴스를 보기 위한 게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사회 흐름을 파악하며, 말과 표현의 쓰임을 익히는 훈련이었다.
요즘처럼 모든 정보가 손안에 있는 시대에, 왜 굳이 종이 신문일까?
그건 아마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다짐,
그리고 소리 내어 읽으며 다양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장도연은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개그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의 언어 감각을 단련해 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겉보기에는 ‘잘된’ 사람들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대부분의 성공 뒤에는 조용한 시간과 묵묵한 자기 훈련이 있다.
그 노력은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실수를 줄이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위한 훈련이다.
장도연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녀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말’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 누군가의 단단해지는 과정을 볼 때
그 우아함 뒤에 숨겨진 치열함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