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묘한 언어의 온도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말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다.
예를 들어,
“약간 매운맛”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것
‘할머니 뼈 감자탕’처럼 익숙하지만 낯선 메뉴 이름
그중에서*‘약간 매운맛’은 나도 헷갈린다.
‘약간’이라는 건 도대체 얼마나 약간일까?
우리말에는 묘한 상대성이 숨어 있다.
같은 ‘보통맛’도 지역마다 다르고,
같은 ‘매운맛’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디선가 “신라면과 비슷한 매운맛”이라고 설명하는 걸 본 적 있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려는, 나름의 배려일지 모른다.
맛의 상대성처럼, 말에도 상대성이 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관계마다 말의 온도는 달라진다.
너무 차가우면 마음을 얼리고,
너무 뜨거우면 상대를 데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말의 온도를 조절한다.
약간 따뜻한 말
살짝 식은 대화
조금 매운 충고
그 미묘한 언어의 온도가 사람 사이의 온기를 만든다.
어린아이에게는 뜨거운 격려가 필요하다.
“할 수 있어!” 같은 고온의 말은 희망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성인에게는 미지근한 위로가 힘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런 말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해준다.
그리고 나이 든 부모에게는
미지근한 말보다 시원한 한마디가 위로가 될 수 있다.
말의 온도를 맞춘다는 건,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깊이와 닿아 있다.
상대가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헤아리는 일.
그게 결국 배려의 다른 이름 아닐까.
우리의 관계도 늘 이 온도의 경계 위에서 흔들린다.
너무 뜨거우면 부담이 되고, 너무 차가우면 멀어진다.
진심은 느껴지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말.
자극은 있지만 상처는 남지 않는 말.
그 경계를 지키는 감각이야말로 사람 사이에서 배워야 할 진짜 온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