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글쓰기로 먹고사는 법 1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품어본 사람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이 지점에 닿는다. 나는 분명히 쓰고 있는데, 마음속에서는 질문이 자란다. ‘나는 왜 이만큼밖에 못 쓸까?’
요즘 출판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고, 영상과 요약 콘텐츠가 모든 걸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느낀다. 지금도 서점에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 청년들이 많다. 그들은 그냥 시간을 보내려는 얼굴이 아니다. 어떤 이는 진로에 대해, 어떤 이는 삶의 언어를 찾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여전히 질문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읽는 사람이다.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를 건축에 비유하며 ‘어휘가 자재’라고 했다. 아무리 설계가 훌륭해도, 자재가 부실하면 건물은 오래가지 못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아무리 깊어도, 어휘가 부족하면 문장은 흐릿해지고 연결은 어색해진다. 담백한 문장은 수없이 읽고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대부분은 책을 읽다 멈추지 못해 결국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시작은 대개 소박하다. 좋은 문장을 만나 감동했고, 그 감정을 남기고 싶어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글은 혼자만 보는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이 된다. 그때부터 글은 달라진다.
댓글이 달리고, 조회수가 보이면 질문이 따라온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곧이어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온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쓸까?”
그 질문은 결국 여기로 향한다.
‘나는 정말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일까?’
이 질문에는 이미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 순간부터 글은 느려진다. 쓰기도 전에 지우고, 단락을 만들기도 전에 멈칫한다. 자기 검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현상이 글을 못 쓰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진지하게 쓰려는 사람일수록 더 빨리, 더 깊게 겪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축하합니다. 이제 작가의 입구에 서 계십니다.”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수강생들은 이렇게 묻기도 한다
“한강 작가처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영하 작가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나는 되묻는다.
“노벨문학상이 목표이신가요?”
그리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이 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꿈을 꺾기 위한 게 아니다.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말이다. 모두가 한강이나 김영하가 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누구처럼 쓰는 게 아니라, 나로서 쓰는 것이다.
문체, 시선, 경험. 이 세 가지는 누구와도 완전히 같을 수 없다. 그 차이가 글의 색이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이렇게 바뀐다.
‘어떻게 자기만의 색을 갖게 되는가?’
내 대답은 항상 같다.
계속 쓰는 것.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다. 자기 검열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비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결국 답은 같다. 쓰는 수밖에 없다.
계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남의 문장이 예전만큼 크지 않게 느껴진다. 대신 내가 자주 쓰는 말, 내가 반복하는 시선, 내가 붙잡는 주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글은 ‘연습’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온다.
“언제까지 써야 하나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