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한때는 ‘친구가 많다’는 것이 인생의 자산이라 믿었다. 명함첩이 두껍고, 연락처에 이름이 빼곡하면 잘 살아온 인생처럼 보였다. 단톡방은 늘 분주했고, 저녁마다 모임이 있었다.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일 같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삶의 굴곡을 지나며 마침내 알게 된다. 진짜 관계는 숫자가 아니다. 이름을 안다고 마음까지 아는 건 아니며, 자주 연락한다고 깊은 사이는 아니다. 신중년이 된다는 건,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불필요한 인연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억지로 붙잡던 손도 조용히 놓이기 마련이다. 그 공백이 처음엔 외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는다. 마음이 편한 관계 하나가 삶을 단단히 지탱해 준다는 걸.
이제는 애써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억지로 맺었던 인연은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함께 있어도 말이 필요 없는 사이,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그런 관계가 지금은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예전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사회생활을 잘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당한 고독이 반갑다. 고요한 시간 덕분에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낀다. 진심으로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 오래 머물면, 그 관계는 어느새 의무가 된다.
신중년에게 필요한 건 수많은 인맥이 아니다. 나를 판단하지 않고, 실수에도 웃어주는 단 한 사람. 말없이 옆에 있어줄 사람. 같이 웃고,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 그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제는 ‘나이’도, ‘경력’도 관계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사회적 역할을 내려놓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시기다.
그렇다면 이제 관계의 장소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나누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정서적 유대를 쌓는 온라인 공간은 어떨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공간은 새로운 관계가 피어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신중년은 디지털 세상에서 ‘낀 세대’다. 20~30대가 주도하는 그 세계는 왠지 나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나이에 가능할까?” “어설퍼 보이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과 쑥스러움이 우리를 한 발 물러서게 한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에게 말하게 된다.
“나는 그냥 이런 거 안 해도 돼.”
하지만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많은 신중년을 만나며 보았다. 두 가지 태도만 있었다. 천천히라도 다가가려는 사람, 그리고 끝내 마음을 닫는 사람. 그 차이를 가르는 건 단 하나, ‘수용의 자세’였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는 순간은 명확했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글을 쓰고, 위로받고,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건 열등감이 아니라, “나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그 갈망은 자극이 되고, 용기가 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온라인에서 글을 쓰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면, 또 다른 신중년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