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네거트 [고양이 요람]

풍자와 해학의 디테일

by 민달이


[short story]

1.

예전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도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아침식사를 푸짐하게 차리셨어요. 그리고 식탁을 치우다가 아버지의 커피잔 옆에서 25센트짜리 동전 한 개와 10센트짜리 동전 한 개 그리고 1센트짜리 동전 세 개를 발견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팁을 주신 거죠.


2.

"거북이에 대해 궁금한 게 생겼어." "거북이에 대해 뭐가 궁금하신데요?" 안젤라 누나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거북이들이 머리를 안으로 집어넣을 때, 녀석들의 척추가 휘어질까 아니면 수축할까?" 아버지가 대답하셨죠..... 중략.... 거북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거북이에 푹 빠져서 원자폭탄 연구까지 제쳐놓으셨어요. 결국, 맨해튼 계획 책임자 몇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앤절라 누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죠. 누나는 거북이들을 치워버리라고 조언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 밤 그들은 아버지의 실험실로 들어가 거북이와 수족관을 훔쳤습니다. 아버지는 거북이의 실종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3.

"자, 이렇게 생각해보시오." 브리드 박사가 신이 나서 껄껄댔다. "물이 결정화되는, 어는 방법은 다양하오. 우리가 스케이트를 타거나 하이볼에 넣는 얼음을 여러 종류의 얼음 가운데 하나라고 치고, 그 얼음을 아이스-원이라고 부릅시다. 지구에서는 물이 항상 아이스-원의 형태로 어는데, 그 이유가 물을 아이스-투, 아이스-스리, 아이스-포 등의 형태로 얼게 만들어 줄 씨앗이 없기 때문이라면 어떻겠소.....?" 브리드 박사는 그 늙은 손으로 책상을 다시 쾅쾅 두드렸다. "그리고 아이스-나인이라는 결정 형태가 있다고 생각해보시오. 이 책상만큼 단단한 결정체 말이오. 이를테면, 녹는점이 섭씨 37도, 아니 더 확실하게 섭씨 54도라고 합시다."


커트 보네거트 [고양이 요람]


"담배는 자살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지" -커트 보네거트-





[small talk]

커트 보네거트:

건망증이 심한 펠릭스 호니커 박사는 GE연구소의 스타인 어빙 랭뮤어 박사를 희화화한 거예요. 저는 그와 안면이 조금 있었죠. 형이 그 분과 일했거든요. 랭뮤어 박사는 건망증이 아주 심했어요. 한 번은 거북이가 머리를 집어넣으면 척추가 휘어지는지 아니면 수축되는지 큰 소리로 묻더군요. 전 그 내용을 책에 집어넣었어요. 또 한 번은 그분의 아내가 집에서 아침을 차려줬는데 다 먹고 나서 집시 밑에 팁을 놓고 나왔답니다. 그 내용도 책에 넣었어요.

하지만 그분이 책에 가장 크게 기여한 건 제가 '아이스-나인'이라고 부르는 것의 아이디어였어요. 그건 상온에서 고체화하는 물분자의 결합 형태로, 모든 것을 얼려버리죠. 랭뮤어 박사가 제게 직접 말한 건 아니고, 실험실에 퍼진 전설이었죠. 허버트 조지 웰스가 스키넥터디에 왔을 무렵, 제가 오기 오래전 이이예요. 그 일이 생겼을 때 저는 라디오를 들으며 모형 비행기를 만드는 어린 소년일 뿐이었지요.

어쨌든 웰스가 스키넥터디에 왔고, 랭뮤어 박사가 접대를 맡게 되었어요. 박사는 과학소설에 쓸 만한 이야기로 웰스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웰스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아이디어를 활용하지도 않았어요. 얼마 뒤 웰스가 죽었고, 십여 년 뒤 랭뮤어도 죽었죠. 전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줍는 사람이 임자지. 그 아이디어는 내가 갖자.' 그건 그렇고, 랭뮤어 박사는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민간업계 과학자랍니다.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실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어빙 랭뮤어 박사는 [고양이 요람]에서 건망증이 심한 '원자폭탄의 아버지' 호니커 박사로 묘사되고 있다. 거북이 척추가 휘는지 수축하는지 궁금해하는 장면도 랭뮤어 박사와의 일화를 책 속에 녹여 넣은 것이다. 아침을 먹고 카페라고 착각한 박사가 접시 밑에 팁을 놓고 나왔다는 웃지 못할 장면도.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아이스-나인에 대한 소재를 얻게 된 일화이다. 30년대 초에 [타임머신]과 [우주전쟁]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가 GE연구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랭뮤어 박사가 SF소설가인 조지 웰스에게 소재를 주고 싶은 마음에 '실온에서 얼음 상태인 물'에 대한 이야기를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웰스는 내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GE에서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후에, 커트 보네거트는 웰스와 랭뮤어가 죽자 주인 없는 소재는 줍는 사람이 임자라며 냉큼 '아이스-나인'에 관한 소재를 낚아챘다는 웃기는 이야기다. 커트 보네거트 역시 글의 소재를 일상의 한 부분에서 찾아냈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소재를 날름 줍고는 즐거워서 킥킥 대었을 그를 생각하면 어찌 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별것 아닌 소재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스-나인'이라는 작은 물질은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이룬다. 바로 '과학', '멸망의 도구' 인류애를 상실한 과학의 혁신적 성과라는 데 있다. 어딘가에서 들었던 이야기 한 조각을 가지고 소설의 에피소드로 사용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는 작가의 날카로운 안목 때문이었을지도.


우리도 일상의 작은 조각을 가지고 커트 보네 거트처럼 거대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 시킬 수도 있을까? 늘 생각하는 자세. 그의 말처럼 중앙이 아니라 경계선에 서서 가운데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지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면 작은 일상의 조각이라도 중요한 하나의 의미로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차차 무거운 것을 가볍게도, 한없이 가벼운 것을 무겁게도 표현하는 그의 방법을 조금이라도 배워나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거짓말을 줄줄 늘어 놓으며 진실의 눈을 이야기하는 일이란 얼마나 멋진 글쓰기 기법인가.

나는 경계를 넘지 않되 가능한 한 경계선에 머물고 싶다. 가장자리에서는 중심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슬픈 걸 슬프게 쓰는 건 어렵지 않다. 증오의 말들을 증오로 풀어놓는 것도 간단하다. 기쁜 걸 기쁘게 쓰는 것은 또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슬픈 걸 기쁘게 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쭙잖게 흉내야 낼 수도 있지만 낄낄거리게 만드는 유머 속에 잔인한 슬픔을 녹여 놓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커트 보네거트야말로 슬픔의 진혼곡을 너무도 경쾌하게 작곡해낸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일 것이다.


이 위대하고 유쾌한 작가는 일상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아니 애쓴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을 즐거운 상상으로 만드는 재능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즐거울 것만 같은 그가 세계 2차 대전의 참상을 직접 겪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운 독서시간을 만들어 주지만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 어떤 반성과 어떤 불편한 심정들을 가슴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겨 놓곤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온통 거짓말 투성이다. 제목인 '고양이 요람'조차 그러하다. 실뜨기 놀이의 한 종류인 '고양이 요람'. 그곳엔 사실 고양이도 요람도 없다. 허상만 존재할뿐. "아이들이 서서히 미쳐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죠. 고양이 요람이라는 게 두 손 사이에 있는 X자 다발에 불과한데도, 꼬맹이들은 그 X자를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런데요?" "그런데, 빌어먹을 고양이도 없고, 빌어먹을 요람도 없죠."


우리도 허상을 쫒는 일들이 있다. 혹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허상을 쫒으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수학을 더 열심히 하면, 영어를 조금만 더 하면, 하루만 더 늦게 자면, 너의 파라다이스가 나타날 거야. 너만이 그 입구로 들어설 수 있지. 수많은 어른들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실체 없는 가능성의 부스러기만 손에 쥔 채 사실로 받아들이길 원한다. 그들에게 커트 보네거트는 뭐라고 할까? 아마도 낄낄거리며 말하겠지. "고양이가 보이세요? 요람이 보이세요?"




커트 보네거트는 생화학을 전공하다가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독일군에 포로로 잡히는 상황에 처한다. 당시에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하고 제대 후에 제너럴 일렉트렉사(GE)에 홍보담당으로 취직한 커트 보네거트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자각한다. 또한 인간의 과학에 대한 무분별한 맹신과 오만함들이 얼마나 큰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절실히 느낀다. 그런 그가 반전 작가로 거듭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블랙 코미디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외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핵무기로 무장한 채 전 세계를 휘어잡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으로 맹신을 하게 되지만 그 이면의 잔인한 진실들을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미국인들과 미국에 대한 풍자로 가득한 블랙 유머집이다. 아무런 윤리적 도덕적 책임 없이 장난으로 만든 아이스-나인은 결국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의 멸망을 부른다. 아이스-나인의 조각을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바꿔버린 무책임한 호니커 박사의 자식들 또한 과학자들의 윤리적 도덕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대놓고 무거운 이야기하지 않는 그의 작품에서 나는 커트 보네거트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은 두 문장을 찾아냈다. 어쩌면 이 미치도록 재미있고,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위대한 작품, [고양이 요람]을 통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아이스-나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윤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p297

죽음을 손에 넣는 게 이토록 쉬웠던 적은 없어요. p319


언젠가 미국 TV쇼에 등장한 인공지능 AI가 섬뜩한 농담으로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던 중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인류멸망에 대한 의미가 서린 말을 한 것. 한국에 온 소피아는 "농담을 했지만, 사람들이 웃지 않았다. 농담도 각각 상황에 맞게 하겠다"라고 했다. 뒤이어 "영화 '터미네이터'를 언급하며 "공상과학영화는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을 잘 설명한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소피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서늘하긴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영화나 책으로 보는 과학의 이야기에 괜히 혹하는 나 같은 무지한 사람들에겐 밤 잠을 설칠 만큼 커다란 공포로 다가온다. 과학이란 뭘까? 그것이 정말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은 맞는 것일까? [고양이 요람]에 대한 글을 쓰고 있자니 재미있으면서도 어쩐지 으스스해지는 밤이다.

이전 01화당신은 이미 생각보다 좋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