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 [벨 자]

활시위가 아닌 화살이 되어 날아가고 싶다

by 민달이

[short story]


1.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식탁에 있는 하늘색 봉투 뒷면에 어렵사리 큼직하게 적었다. '오랫동안 산책할 거예요.'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서 볼 만한 자리에 봉투를 놓았다. ...(중략)... 검은 벨벳에 꽂힌 열쇠를 꺼냈다. 금고를 열어 수면제 병을 꺼냈다. 수면제가 기대보다 많이 있었다. 적어도 쉰 알은 될 것 같았다. ...(중략)...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에 들어갔다. 길쭉한 잔에 수돗물을 가득 받았다. 물컵과 약병을 들고 지하질로 내려갔다. ...(중략).. 틈새에 있는 통나무를 하나씩 빼냈다. 물컵과 약병을 평평한 통나무 면에 나란히 놓고 내 몸을 틈새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빈틈에 몸을 넣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몇 번 시도한 끝에 안으로 들어가 어둠 속에 사는 괴물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맨발에 닿는 흙의 감촉이 친근했지만 차가웠다. 이 바닥의 흙은 햇빛을 못 본 지 얼마나 됐을까. 구멍의 입구를 막고 있는 통나무들을 힘껏 당겨 빼냈다. 먼지투성이인 나무는 무거웠다 어둠이 벨벳처럼 두껍게 느껴졌다. 물컵과 약병을 집어서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고개를 숙이고 구멍의 맨 안쪽까지 기어갔다.

부드러운 나방 같은 거미줄이 얼굴에 닿았다. 검은 우비로 그림자처럼 몸을 감싼 채 약병을 열었다. 재빨리 수면제를 한 알씩 입에 넣었고 중간중간 물을 삼켰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약을 다 먹었을 즈음에는 눈앞에 울긋불긋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약병이 손에서 미끄러졌고, 난 누웠다.

정적이 꼬리를 늘이니 조약돌과 조가비가 드러났다. 초라하게 부서진 내 삶 전부도. 그 순간 그것이 하나가 되더니, 밀려드는 파도 속에서 날 잠으로 밀어 넣었다.


2.

"그 글쓰기 강좌에 못 들어가겠더라." 몸속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6월 내내 글쓰기 강좌는 여름이라는 지루한 해협 위에 놓인 밝고 안전한 다리처럼 내 앞에 뻗어 있었다. 이제 다리가 흔들리다가 해체되어 흰 블라우스와 초록 스커트 차림의 여자를 해협에 빠뜨린 꼴이 되었다. 내 입매가 시큰둥한 모양이 되었다. 그럴 줄 알았어.

.......

칼로 여름 학기 강좌에서 온 편지를 뜯었다. 내가 글쓰기 강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다른 강좌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날 아침에 입학처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수강 인원이 거의 찬 상태라서 너무 늦으면 등록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입학처에 전화를 걸어 좀비 같은 목소리로 "에스더 그린우드는 여름 학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취소한다"라고 말했다.


3.

"식중독이에요. 아가씨들 모두 식중독에 걸렸어요. 이런 일은 처음 봤어요. 여기서 아프고 저기서 아프고. 대체 뭘 먹은 거예요?" "다른 친구들도 모두 아픈가요?" 나는 희망을 느끼며 물었다. "모두 다요. 개처럼 끙끙 대면서 엄마를 불러댄다니까요." 간호사가 대답했다. 방 주변에 가벼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가 갑자기 아파서 의자, 테이블, 벽 할 것 없이 동정심에서 무게를 꾹 누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4.

버디는 부츠와 몇 켤레나 신은 흰 양말을 벗겼다. 그는 통통한 손으로 내 왼쪽 발을 들어서 발목을 위로 당기더니 숨긴 무기라도 찾으려는 듯 쿡쿡 찔렀다. 냉정한 흰 햇살이 하늘 꼭대기에서 빛났다. 내 몸을 해에 대고 갈고 싶었다. 칼날처럼 성스럽고 날카로우며, 본질만 남기를 바랐다. "올라갈 테야. 다시 해볼래." "내가 말했다." "안 돼, 못 해." 버디의 얼굴에 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마지막으로 씩 웃으며 되풀이해 말했다. "안 돼, 못 해. 다리가 두 군데나 부러졌어. 몇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있어야 될 거야."


5.

"그 사람들이 죽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힐다는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더니 회의용 탁자에 팔을 올리고 얼굴을 묻었다. 다시 잘 태세였다. 담녹색 밀짚이 눈썹 위에 열대의 새처럼 걸쳐져 있었다. 담녹색. 가을에 유행할 색상이었고, 힐다가 늘 그렇듯 반년쯤 앞선 패션이었다. 검은색과 담녹색, 사촌뻘인 청록색과 담녹색.

...(중략)... "로젠버그 부부의 일, 끔찍하지 않아?" 그날 밤 로젠버그 부부는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할 터였다. "맞아!" 힐다가 대답했고, 나는 드디어 실뜨기 모양의 그녀의 심장에서 인간미라는 줄을 튕긴 느낌이 들었다. 힐다가 그 "맞아"에 사족을 붙인 것은, 무덤처럼 컴컴한 회의실에서 둘이 사람들을 기다릴 때였다. "그런 자들이 산다는 게 끔찍해."

그녀가 하품을 하자 주황색 입이 열리며 어둠이 드러났다. 나는 매혹을 느끼고 얼굴 뒤의 컴컴한 동굴을 응시했다. 마침내 그녀가 입술을 오므렸다가 움직이자 악령이 숨은 곳에서 말을 토해냈다. "그 사람들이 죽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벨 자]






[small talk]


1.

1953년 여름, 그녀는 <마드모아젤>지의 객원기자로 선발된다. 편집부 일은 맡은 그녀는 뉴욕에서 활동했고, 이곳에서의 삶은 새롭고 흥분된 체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6월 말, 그녀는 기진맥진한 채 우울증에 빠져 뉴욕을 떠나 보스턴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하버드 서머스쿨에 입학이 거부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플라스의 우울증과 열패감은 더욱 골이 깊어졌고, 결국 그녀는 8월의 어느 날, 산책을 간다는 쪽지를 남겨두고는 지하실로 기어들어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만다. 첫 번째 자살 시도였다. 1부의 내용은 바로 이 시점까지의 플라스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플라스는 장학금을 제공한 후원자인 올리브 히긴스 프라우티가 소개한 사립병원에서 요양을 한 뒤 스미스여자대학의 2학기에 복학한다. 향후 스미스에서의 3년은 또다시 승승장구하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2.

1953년 1월 10일
...(중략)... 나는 이곳 기숙사 댄스파티에서 그와 사흘을 함께 보냈다. 일주일 동안은 축농증을 앓았다. 딕을 만났고, 그와 함께 사라낙에 가서 스키를 타다가 다리를 부러뜨렸다. 나는 그와는 절대 함께 살 수 없다고 다시금 결심했다.

1953년 6월 19일
그래, 결국 신문 헤드라인들은 두 부부가 오늘 밤 11시에 사형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대문짝만 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나는 뱃속이 울렁거린다. 어느 사형수의 전기 처형 장면을 묘사했던 한 기자의 탐방기사가 기억난다. 역겹도록 사실적이었다. ...(중략)... 매일 손질해야만 하는 독특한 모자를 쓰고 있던 키가 크고 고양이 같은 미녀가 하품을 하고는 아름답고도 지루한 악의를 드러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죽게 돼서 정말 기뻐."

...(중략)... 그때 나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하버드 서머스쿨에 가야겠다고 결정했어. 프랭크 오코너의 작문 강좌를 듣고 싶었는데(플라스의 수강 신청은 거부당했는데 그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이유는 강좌를 들으며 단편을 몇 편 쓰면 그중에서 팔리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 ..(중략)... 그런데 이제 오코너 강좌의 문은 내게는 굳게 닫혀버렸어.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3.

7월 14일

좋아, 넌 한계에 다다랐어- 지난 이틀 동안 겨우 두 시간밖에 잠을 못 잔 끝에 오늘은 모든 책임감을 다 떨쳐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말았지.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들 결혼을 했거나 바쁘거나 행복하거나 생각하고 있거나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 돌연 무섭고, 어지럽고, 무기력한 느낌에 사로잡혀버렸지. 게다가 가장 나쁜 건, 도저히 대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널 덮친 거야. 미치광이의 구속복을 입고 있는 네 모습이 환각처럼 보였지.

뉴욕, 고통, 파티들, 일, 그리고 게리와 토메인과 자인한 페루인 호세와 캐롤이 문 밖에서 온 마루에다 구토를 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을 위한 인터뷰, 경쟁, 아름다운 모델들과 미스 에이블즈.(유능하고 또 어떤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고나자 찾아온... 충격. 지독한 허무주의적 충격.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하지만 난 휩쓸고 다니지 못했다. 내 자신조차 마음대로 못했다. 호텔에서 사무실로, 파티장으로, 파티장에서 호텔로, 다시 사무실로 멍청한 무궤도 전차처럼 다닐 뿐. 다른 여자애들처럼 들떠서 지내야 마땅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음이 가라앉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주위가 소란한 가운데 둔하게 움직이는 폭풍의 눈 같다고 할까.


패션 잡지사 콘테스트의 에세이나 소설, 패션, 광고 부문 입상자들이 뉴욕에서 한 달간 인턴으로 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한 곳에 모이지만 주인공 그린우드는 화려하게 보일 뿐인 삶에 공허함을 느낀다. 플라스는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에서 당시 뉴욕 생활 중 식중독에 걸린 뒤 허무주의적 충격에 휩싸였다고 적어 놓았다. 식중독으로 구토를 하는 동안, 그곳에 모인 어른들의 세계를 선망하는 모든 여자들이 한꺼번에 구토를 하는 것을 본 플라스는 어쩌면 자신들이 바닥에 쏟아 내는 것이 얼룩진 세계에 대한 구토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뉴욕의 실망스러운 생활들과 간절히 원했던 글쓰기 수업에서 떨어졌다는 절망, 그리고 엄마와의 어긋난 관계와 남자 친구와도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이 한꺼번에 폭풍처럼 몰아쳐서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다. 여성의 지위는 실망스럽기만 하고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길은 한 없이 거칠게 느껴졌겠지. 실비아 플라스처럼 우수한 학생이었다면 그 괴로움이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자신에게 몰아치는 답답하고도 억울한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재능 있는 한 여자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모순과 거짓을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듯 행동하지만 그들의 약한 내면은 점점 병들어간다. 어른들의 세계는 얼룩진 세계.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더 이상 순수했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건 아닐까.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길을 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색색의 로켓 화살처럼 하늘 위로 날'고 싶은 희망 사이에서 힘들었을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작가가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을 거의 그대로 소설 속으로 옮겨 놓은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한 줄 한 줄 글을 쓰면서 작가는 다시 한번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그 순간의 일을 기록했다는 것은 어떤 간절함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한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 현실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까맣게 속을 태워버린 한 인간의 심정을 소설로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은 선망의 세계가 아니라 얼룩진 세계라는 걸 경고해 주고 싶었던 걸까? 뉴욕에서 그녀를 담당했던 [레이디스 데이]의 제이시는 말한다. '사악한 도시에 붙들리지 말라고.' 결국 그린우드는 사악한 도시에 놀라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그녀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악한 도시'에 내상을 입은 그린우드는 채 안정을 취하지도 못한 채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글쓰기 강좌에서 탈락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는 간절했던 글쓰기 강좌의 탈락은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그린우드는 스스로 자신을 파괴해버림으로써 모든 의미의 '사악한 도시'를 거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여러 번 자살을 기도하던 그녀는 정신 요양원을 전전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니 다 잊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그린우드는 벨 자(유리 종) 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입원한 정신병원의 사람들도, 유능한 학생들이 생활하는 대학의 여학생들도 결국엔 각자의 벨 자 밑에 있을 뿐이라고.


"우리 떠나온 곳에서 시작하는 거야. 이 모든 게 나쁜 꿈이었던 것처럼 행동하자꾸나." 나쁜 꿈. 난 모든 걸 기억했다. ...(중략)... 브리지 게임을 하고 소문에 대해 떠들고 공부하는, 내가 돌아갈 대학의 여학생들과 벨사이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 여학생들 역시 어떤 종류의 벨 자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내가 어디 있든-배의 갑판이든 파리나 방콩의 거리 카페든- 나 자신의 시큼한 공기 속에서 속을 태우며 벨 자 밑에 앉아 있을 테니까.


게다가 소설의 끝에 그녀가 있는 요양원에 찾아 온 남자 친구 버디는 머리 위에 쓰인 벨 자의 고통에 발버둥 치고 있는 그린우드에게 또다시 벨 자를 깊이 눌러 씌우듯 말한다. 재미있는 건 자신 또한 결핵으로 요양원에 입원한 적이 있지만 마치 그것은 그린우드가 입원 중인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듯이 말한다. 육체의 상처와 정신의 상처가 절대로 같을 수 없다고 느끼는 버디의 생각과 그녀 앞에 펼쳐진 불합리한 현실들은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제 네가 누구한테 시집갈지 걱정이다, 에스더." "뭐라고?" 나는 파낸 눈을 던지다가, 눈가루가 날려서 눈을 깜빡이며 대꾸했다. "네가 누구한테 시집갈지 걱정이라고. 네가..." 버디는 언덕과 소나무들, 언덕 위로 솟은 눈 덮인 건물들을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데 있었으니."






그가 늘 "남자가 원하는 것은 반려자이고 여자가 원하는 것은 끝없는 안정감"이라거나 "남자의 인품은 미래로 날아가는 화살이고 여자의 인품은 그 화살을 쏘는 시위"라는 어머니의 말을 읊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으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은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무한한 안정감을 갖추고 화살을 튕겨내는 시위 따위는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변화와 짜릿함을 원했고, 나 자신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싶었다. 독립기념일에 로켓에서 쏘아 올리는 색색의 화살처럼.


아버지는 신혼여행을 다녀오기가 무섭게 엄마에게 말했다지 않던가. "휴, 이제 억지로 꾸며 행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니 마음이 놓이지?" 그날부터 엄마는 단 일 분도 평온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또 버디는 뻔히 알지 않느냐는 듯 못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아이를 가지면 느낌이 달라질 거라고, 그때는 시를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가지면 세뇌가 되고, 나중에는 전체주의 국가에 사는 노예처럼 둔해지는 게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가 뭔지 알아, 에스더?" "아니, 뭔데?" 내가 묻겠지. "먼지" 그가 미소 지으면서 으스대는 표정을 짓기 시작하면 나는 말하리라.

"네가 해부하는 시체도 마찬가지야. 네가 치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들도 다 먼지에 불과하다고. 훌륭한 시는 그런 사람들 백 명을 모아 놓은 것보다도 훨씬 오래 남지."

물론 버디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할 터였다. 내가 한 말이 사실이니까. 사람들은 먼지 덩어리에 불과했고, 그런 먼지 덩어리를 치료하는 게 시를 쓰는 일보다 뭐가 대단한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불행하거나 아프거나 잠을 못 이룰 때면 시를 기억하고 외우지 않던가.



위에 인용한 글들처럼 에스더 그린우드가 느끼는 현실의 불합리한 일들은 소설 속 곳곳에서 보인다. 실비아 플라스는 [벨 자]를 통해 당시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고스란히 보여주며 우리가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다. 그것은 뉴욕타임스의 평처럼 '어떻게 현실에 맞설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와 양 손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하려던 그린우드는 생각한다.

'하지만 시작하려는 순간, 팔목의 살갗이 너무 허옇고 무방비 상태여서 칼을 댈 수가 없었다. 죽이고 싶은 게 그 살갗이나 엄지 밑에서 뛰는 파란 핏줄이 아니라 다른 데 있는 것만 같았다. 더 깊고 은밀하고 다다르기가 훨씬 어려운 곳에.'


혹자들이 그녀의 글을 남자에 대한 불만이나 공격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위의 그녀의 문장으로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외치고 싶었던 것은 혐오와 분노 따위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넘어선 것. 그녀의 눈물은 그것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것에 있는 건 아니었을까.




[벨 자]의 맨 뒷장에 쓰여 있는 언론들의 평을 보니 '보스턴 글로브'는 소설 [벨 자]를 [호밀밭의 파수꾼]에 맞먹는 걸작이라고 평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봤다면 좀 과한 평이 아닌가 싶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올랐던 게 사실이다.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나서 가슴이 더 두근거리고 뭔지 모를 초조함과 불안함, 가슴 저린 슬픔이 느껴지던 기분도 같았다.


이것은 여자의 이야기와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반드시 나아가야 할 얼룩진 세상. 자신들 앞에 펼쳐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괴로워하던 19살의 에스더 그린우드와 17세의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이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기에 당시에도 지금에도 독자들은 열광하는 것이리라.


그린우드와 콜필드처럼 세심하고 여린 감정을 지니지 못한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 과정을 그들과 똑같이 보냈지만 그저 짜증과 화, 불평과 불만, 잠시의 우울한 감정 정도로만 표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느꼈을 그 모든 보편적인 감정들을 실비아 플라스와 J.D. 샐린저는 좀 더 세공하고 다듬어 훌륭한 소설로 우리 앞에 성찬을 차려 놓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소설을 읽은 후에야 우리가 얼룩진 세상 앞에 서서 왜 그다지도 힘들었던 가를 이해하고 되새겨 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가의 책무는, 작가의 책무는 우리가 살면서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 혹은 순간 놓쳐버린 어떤 것들을 뒤따르며 주워 담아 우리 앞에 가져다주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 얼핏 알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고 지나갔던 것들의 진짜 모습들.


끝으로 소설 속에 그녀가 남긴 아름답고 가슴 시린 글을 옮겨 적어본다. 자신의 인생을 열매가 가득 열린 무화과나무에 비유한 소설 속의 한 장면은 그녀의 열정을, 여린 마음을, 흔들리는 불안을, 미래의 열망을 그리고 불안에서 비롯된 절망의 감정을 잘 보여준다.


평생 처음으로 유엔 건물의 방음이 되는 심장부에서, 테니스를 치는 동시통역사 콘스탄틴과 관용어구를 많이 아는 러시아 여자 사이에 앉아 있으니 내가 끔찍하게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늘 부족했는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내 특기는 장학금 따기와 상 타기였는데 이제 그것도 끝나가고 있었다.
경마장이 아니라 거리에 던져진 경주마가 된 기분이었다. 대학 우승자인 풋볼 선수가 양복 차림으로 월스트리트와 마주 선 느낌과 비슷했다. 트로피에 새겨진 날짜는 묘비의 날짜와 다름없었다. 내 인생이 소설에 나오는 초록빛 무화과나무처럼 가지를 뻗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가지 끝마다 매달린 탐스러운 무화과 같은 멋진 미래가 손짓하며 윙크를 보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고, 어떤 것은 유명한 시인이었고, 또 어떤 것은 뛰어난 교수였다. 훌륭한 편집자라는 무화과도 있었고,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미인 무화과도 있었다. 어떤 것은 콘스탄틴, 소크라테스, 아틸라 등 이상한 이름과 엉뚱한 직업을 가진 연인이었다. 올림픽 여자 조정 챔피언인 무화과도 있었고, 이런 것들 위에는 내가 이해 못하는 무화과가 더 많이 있었다.
무화과나무의 갈라진 자리에 앉아, 어느 열매를 딸지 정하지 못해서 배를 곯는 내가 보였다. 열매를 몽땅 따고 싶었다. 하나만 고르는 것은 나머지 모두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 무화과는 쪼글쪼글 검게 변하더니 하나씩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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