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행복이란 스며드는 것

by 민달이

[short story]


1.

"한 병 더 줘라" 또 한 병을 준비하면서 도로시가 말했다. "엄청난 식욕이네" 앨리스가 사교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벤은 두 번째 병도 비웠다. 그 애는 자기 두 주먹으로 그 병을 혼자서 지탱하고 있었다. 해리엇이 병에다 손을 댈 필요가 거의 없었다. "네안데르탈인 아기야" 해리엇이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마. 불쌍한 작은놈한테" 불편해하며 데이비드가 말했다. "오 맙소사, 데이비드" 해리엇이 말했다. "불쌍한 해리엇이 더 맞는 말 아냐?" "좋아, 좋아. 이번에는 아마도 유전자들이 특별한 것을 만들었나 보지" "그런데 그게 뭐냐구? 그 점이 문제야" 해리엇이 말했다. "이 애는 뭐냐구?" 나머지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들의 침묵을 통해 그들은 그것이 암시하는 대답에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2.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벤의 종족은 위쪽 땅 위에서는 빙하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땅속 동굴 속에 살면서 어두운 심연의 강물로부터 생선을 먹거나 냉혹한 눈 위로 몰래 나가 곰이나 새를 잡았을까? 아니 사람들, 자신의(해리엇의) 조상들마저도 잡았을까? 그의 종족이 인간 조상들의 여인들을 강간했을까? 그리하여 새로운 종족을 만들었고 그 종족은 번성하다가 사라졌는데 어쩌다 그들의 씨가 여기저기 인간의 모체에 남겨졌다가 벤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고 아마도 벤의 유전자가 태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어떤 태아에 이미 있는 것은 아닐까?)








[small talk]


1.

도리스 레싱:
1500 단어 정도의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좋은 훈련입니다. 아주 재미있어요. 몇 편을 썼는데 전부 런던에 대한 이야기라서 '런던 스케치'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완전히 리얼리즘적인 단편입니다. 저는 런던을 아주 많이 돌아다닙니다. 어떤 도시든지 일종의 극장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파리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도리스 레싱:
반쯤 몰락한 세계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풍경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있죠, 소설[마리와 댄]은 내내 가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전 바로 그걸 아프리카에서 목격했었죠. 아들 존도 거기 있었어요. 가뭄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2.

도리스 레싱:

두 가지 원천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하나는 로런 아이슬리라고 하는 훌륭한 작가로부터입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나네요. 그 작품에서는 한 사람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해안가 시골길을 걷다가 소녀를 한 명 만나는데, 그는 그녀가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말합니다.
... 중략...

그 작품은 제 마음 깊이 남았고 "네안데르탈인이 가능하다면 크로마뇽인이 안 될게 뭐람? 모든 문화가 이런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난쟁이나 고블린도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재료는 잡지에서 읽은 아주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여성이 잡지에 글을 보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안 그러면 미쳐버렸을 거예요.'라고요. 그녀에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막내딸이 그때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이었는데 악마로 태어난 겁니다. 그녀 스스로 악마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중략...

그 아이가 가족을 완전히 망쳐놓았습니다. 가족들은 그 아이를 견딜 수 없어했고요. 그 엄마는 '밤에 들어가서 아이가 자는 걸 봅니다. 아이가 자고 있는 동안 뽀뽀해주지요. 깨어 있는 동안에는 감히 할 수 없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이 모든 요소가 제가 쓴 이야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고블린에게서 중요한 점은, 그는 자신으로서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고블린으로서는 정상이라는 거지요. 그저 우리가 그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뿐입니다.

[파리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뉴스 속엔 작가들을 위한 수많은 소재들이 존재한다. 작가들은 자주 그 속에서 좋은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곤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서부터 우리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저 먼 우주의 이야기들까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뉴스나 다른 분야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도리스 레싱 역시 [다섯째 아이]를 쓰기 전 읽었던 책과 잡지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도리스 레싱은 '로런 아이슬리'라는 작가의 글에서 한 소녀를 묘사한 글 보고 네안데르탈인과 고블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소설은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더 정교한 글이 되기도 한다. 도리스 레싱은 로런 아이슬리의 글과 더불어 한 잡지에 사연을 보낸 여자의 편지를 보고 나서 마침내 자신이 쓰게 될 소설의 주제마저 캐치해 낸다. 자신의 아이가 악마가 틀림없다고 말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에 집중하고 있던 작가에게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인종과 환경, 판타지와 공상과학까지, 도리스 레싱이 다루지 않는 소재가 없었으므로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는 괴유전자로부터 비롯된 비극에 대한 글을 쓰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다섯째 아이]는 물론 다른 소설들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집어넣는다. [마리와 댄]이라는 이야기는 가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인데 이것은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며 목격했던 순간에서 얻은 일화를 집어넣었다고 말한다. 또한 [런던 스케치]는 런던을 자주 돌아다니는 작가가 런던에서 쓴 글들이기에 작품의 이름도 '런던 스케치'라고 정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런던 스케치]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런던 시내 곳곳을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워털루역에 서 있던 순간, 카페의 평온한 일상과 밝은 거리들, 지하철 여행을 하는 장면들과 공원의 동물들, 그리고 끔찍한 응급실의 모습과 런던 깊숙한 곳의 더러운 창고까지. 작가의 말대로 런던 거리를 자주 거닐며 눈으로 보고 담았던 장면들을 활자로 읽고 있자면 친절한 작가와 함께 런던 곳곳을 산책하며 그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강렬히 원하는 행복이란 종종 허상인 경우가 많다. 행복은 열렬히 구애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많은 일들이 휘몰아치고서야 알게 되는 일들. 오랜만에 구름 사이에서 비추는 햇살을 보며 느끼는 편안한 기분이나, 아이의 행동에 터져버린 웃음, 혹은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 동안의 고요한 안정감 따위가 실은 행복의 모든 이름이라는 걸 말이다.


'해리엇은 그의 강렬한 소유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좋아했고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이나 아기가 아니라 행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의 행복.'


하지만 해리엇은 강렬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 그 자체를 원한다. 티끌 한 점 없는 완벽한 가정. 잘 나가는 남편과 커다란 저택에서 많은 아이들이 뛰노는 상상을 하고, 아이가 처음 태어난 해에 몇 날 며칠 동안 마치 행복을 위한 제를 지내듯 지인들이 들끓도록 파티를 벌인다. 둘째, 셋째 그리고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해리엇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은 채 집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둔다. 사람들의 소음이 행복의 종소리라도 되는 듯 거대한 저택에서는 매일매일이 소란스럽다.


그리던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완벽한 행복에 제동을 건 아이는 바로 '다섯째 아이'. 벤. 해리엇은 일반적이지 않은 벤의 모습과 행동들을 보며 빙하시대를 이겨낸 어떤 끔찍한 종족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파괴시키고 더 이상 행복의 안온함으로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악마였다. 사람들은 벤의 기괴함을 알고 있지만 딱히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그 거대한 저택에서 하나 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 결국 마지막에 해리엇이 그리도 원하던 완벽한 행복의 상징인 거대한 저택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벤과 그 일당의 소굴이 되고 만다.


행복은 소리쳐 부른다고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 없는 한줄기 숨. 조용히 뱉어내고 들이마시는 가벼운 숨처럼 보이지 않게 나를 감싸안는 것. 그것이 행복의 본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해리엇은 은은한 달무리 같은 행복을 바라보지 못한 듯하다. 타인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행복을 원했다. 으리으리한 대저택과 까르르 웃으며 계단을 뛰어오르는 자신의 많은 아이들을 원했다. 타인들이 자신이 지닌 그 행복을 보며 부러워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해리엇을 비난할 수 있을까? 당신도 나도 실은 타인에게 보이길 원하는 행복을 꿈꾸고 있지는 않았는가? 정말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저 깊은 밑바닥에서 끓고 있는 그것을 정말 모른다고 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련다. 내가 힘들 때는 아무도 모르게 숨어버리거나 사라져 버리고 싶은 생각에 빠지다가도 내가 무언가를 이룬 순간엔 나 또한 타인들에게, 나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 나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비난과 혐오. 벤은 이런 감정들을 야기했고 사람들 안에 있던 이런 감정들을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내었다.'


행복하고 완전한 삶. 사람들 사이에 지켜져야 할 선과, 그로서 얻게 되는 예의와, 자신의 사회적 위치.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못생긴 감정과 삐뚤빼뚤한 마음들은 조용히 깊은 서랍 안에 넣고 문을 닫아 둔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서랍 안에서 덜그럭 거리고 벌컥 문이 열리고 마는 것이다. 고블린 한 마리가 머리를 빼쭉 내밀고 있는 걸 확인한 우리는 깜짝 놀라 서둘러 서랍을 닫고 이제 자물쇠를 찾아 잠근다. 하지만 벤은 이런 비난과 혐오와 같은 지저분한 감정들을 각자의 서랍 안에서 스스로 꺼내도록 만든다.


벤은 악인가 선인가. 아니면 그저 서툰 인간일 뿐일까. [다섯째 아이]는 굉장히 불편한 책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의미하는 바는 인간 내면의 불쾌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벤은 그저 나쁜 아이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지만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악'의 의미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벤은 그러니까 사람들이 각자의 깊숙한 서랍 안에 숨겨 놓은 채 살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내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인 것이다. 그가 우리를 불편한 게 한다고 그를 악마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도리스 레싱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중요한 점은, 그는 자신으로서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고블린으로서는 정상이라는 거지요. 그저 우리가 그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뿐입니다.), 그는 고블린으로서 그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불편한 것은 그저 우리일 뿐.


"벤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이 지상에서 한때 살았던 모든 다른 사람들, 그들이 어딘가 우리 내부에도 틀림없이 있다고요." "폭, 하고 솟아오르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지! 하지만 그럴 때 우린 그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도로시가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해리엇이 말했다. "확실히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도로시가 말했다. "벤을 보고 난 이후 특히..."



해리엇은 주치의에게 또 다른 전문가에게 학교의 담임과 교장선생님에게 그리고 주위의 식구들에게 끊임없이 벤의 악마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괴로운 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고통이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내 눈 앞에 존재하는 악은 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악일 뿐이라고. 전통적으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키며 만들어 놓은 행복은 망가질 수 없으며 행복을 망가트린 것은 내가 아니라 이상한 유전자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지켜온 것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허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책의 주제처럼.


그리고 그 이상한 유전자를 지닌 불편한 존재는 그들의 집을 떠나 어딘가 일지도, 누군가 일지도 모를 곳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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