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꿰뚫는 공포의 미학
1.
이 집이 그가 선택한 집이었다. 크고 오래된 뉴잉글랜드 식민지풍 주택으로 아래층에는 큰 방이 세 개 있고 위층에 방 네 개가 있으며 나중에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할 수 있는 긴 차고가 있었고 이 모두는 8월의 더위에도 싱싱한 녹색이 시들지 않는 넓고 무성한 잔디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집 뒤에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넓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 뒤에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한 숲이 있었다. 주택은 국유지와 인접해 있고 부동산 중개인은 가까운 장래에 개발은 없을 거라고 설명했다. 미크맥 인디언 부족의 후손이 러들로 및 러들로 동쪽의 마을에 800 에이커 정도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 왔고 주 정부 뿐 아니라 연방정부까지 개입된 복잡한 소송이 다음 세기까지 이어질 전망이었다.
... 중략
"어때?"
"정말 근사해!"
2.
그는 게이지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도로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게이지에게 돌아오라고 소리 질렀지만 게이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최근 게이지가 시작한 놀이는 그가 엄마와 아빠에게 도망가면 엄마와 아빠가 그를 쫒아가는 것이었는데, 루이스는 빠르게 레이첼을 앞질렀지만 게이지는 너무 앞서 있었다. 게이지는 웃고 있었고 아빠에게서 도망가고 있었다. 바로 그런 게임이었다. 루이스는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지만 너무 느렸고, 게이지는 잔디밭의 야트막한 비탈을 넘어서 이제 15번 도로 가장자리로 뛰어가고 있었고, 루이스는 게이지가 넘어지기를 신께 빌었다. ....(중략).... 그래, 넘어져. 넘어져서 코가 깨지고 피를 흘리고 몇 바늘 꿰매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가 넘어지라고 빈 이유는 이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트럭의 기계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뱅거와 벅스포트의 오링코 공장을 끊임없이 왕복하는 큰 바퀴가 열 개나 달린 트럭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 트럭은 천둥이었고 그 트럭은 높은 크롬 도금에 부서지는 햇살이었으며 그 트럭은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경적이었다.
스티븐 킹 [애완동물 공동묘지]
스티븐 킹:
상당히 사적인 일이었지요. 꼬마가 길에서 죽는 부분 이전까지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저희는 길가의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러들로가 아니고 오링턴이긴 했지만 엄청나게 큰 트럭들이 쌩쌩 달리는 것은 똑같았어요. 길 건너편에 사는 노인분이 "트럭을 조심해야 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저희는 책에서처럼 들판으로 놀러 가서 연을 날렸어요. 언덕을 오르자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보이더라고요. 며칠 뒤 제 딸 나오미가 키우는 고양이인 스머키가 차에 치어 죽었어요. 그래서 그 녀석을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었지요. 고양이를 묻은 날 밤이었지요.
나오미의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차고 쪽에서 펑펑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나오미가 짐 싸는 데 쓰는 포장재 위에서 뛰면서 나는 소리였어요. 그 아이는 울면서 "내 고양이를 돌려줘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고양이면 충분하잖아요!"라고 고함을 질러대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소설에 몽땅 써넣었지요. 그러고는 아들 오언이 정말 큰길로 뛰어들었어요. 그 녀석은 아주 어렸는데, 아마 두 살 때였을 겁니다. 저는 소리를 질렀지요. "얘야, 멈춰!" 그렇지만 그 녀석은 점점 더 빨리 뛰면서 웃어댔어요. 그만한 아이들은 늘 그렇잖아요. 쫒아가서 그 녀석을 낚아채 길 가장자리로 끌어냈는데, 트럭이 휙 하고 지나갔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책에 다 쓴 거예요.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
완벽한 집과 행복한 가족들에 대한 묘사는 후에 공포와 충격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중간중간 도로의 위험성을 알리는 장면들이 복선으로 깔린다. 극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자 운명을 갈라놓는 지점으로 사용되고 있는 집 앞의 도로는 마치 작가가 몇 날 며칠을 고심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만든 설정이 아닐까? 그리고 집 근처의 언덕 속에 자리한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어떠한가. 역시 대가란 하나의 설정조차 허투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티븐 킹의 놀라운 상상력에 경탄한다. 하지만 실은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자신의 일상 중 하나를 적은 것뿐이었다면? 그럴 리가... 정말? 그의 말이 진짜라면 독자 입장에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가의 손에서는 당장 전시해도 될 만큼 완벽한 형태와 빛깔의 도자기만 빚어질 것이라고 짐작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재미있는 일화다. 스티븐 킹의 말처럼 글을 오래 쓴 대가들도 일상의 작은 사건들을 잘 손질하여 소설의 일부분으로 사용한다. 혹은 위의 글처럼 소설의 중요 부분을 거의 통째로 사용하기도 한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동안 우리가 흘려버렸거나 잊어버렸던 우리의 수많은 일상들을 생각해보라. '나의 어떤 일상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는데!' 그 걸 그냥 버렸다고? 이 얼마나 아까운 일들인가. 어쩌면 그 보잘것없는 사건들로 당신은 소설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
스티븐 킹이 겪은 일상을 우리가 겪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날 밤 우리는 컴퓨터를 켜고 그 순간을 소설로 만들어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도로 위를 뛰고 있었다. 위험해! 멈춰! 소리쳤지만 아이는 달렸다. 그 순간 거대한 트럭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 안돼!'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썼을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도 처음에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썼을 것이다.(그는 처음부터 이 보다 훨씬 더 잘 썼겠지만 편의상 그렇다고 하자.) 대신, 그는 문장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 내고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고 또 다듬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문장들은 읽는 사람의 심장을 쥐어짜게 만든다. 그냥 '멈춰! 안돼!'가 아니라 '루이스는 게이지가 넘어지기를 신께 빌었다. ....(중략).... 그래, 넘어져. 넘어져서 코가 깨지고 피를 흘리고 몇 바늘 꿰매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소리치게 한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 말인지 알 것이다. 설사 부모가 아니더라도 스티븐 킹의 문장에서 심장이 뛰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트럭의 묘사가 등장하기도 전인 바로 저 부분을 읽으면 왈칵 눈물이 솟아 잠시 책을 내려놓아야 했다. 차라리 넘어져서 코가 깨지고 피를 흘리는 것이 낫다고 소리치는 부모의 마음이라니. 사람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쓴 글이 얼마나 독자들을 옭아매는지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위축될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에 사람의 심리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 수 있는 글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스티븐 킹도 단번에 저런 문장을 썼을 리 없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며 읽는 사람의 애간장을 완전히 녹아내리게 만들고자 끊임없이 문장을 세공했을 것이다. 언감생심 우리가 단번에 그의 능력 근처까지 갈 수는 없겠지만 그가 하고 있는 글쓰기 세공술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는 있다. 일상의 유의미한 사건들을 생각해보고 가득한 먼지를 털 것. 반짝반짝 해지도록 계속 고칠 것. 자신의 글을 낯설게 보고 다시 볼 것.
아무리 그래도 역시 그는 '신이 내려준 대가니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한번 기억하길 바란다. 그는 일상의 사건들을 끊임없이 세공하며 노력했고 당신과 나는 일상의 수많은 일들을 그저 지나간 추억쯤으로 흘려보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