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진미 Aug 05. 2021

[엄지 독서클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소고

눈의여왕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인어)  반갑습니다. 눈의여왕님!

눈) 아 네. 근데 여기 시 쓰는 모임이죠?

성냥) 쓰는 건 아직 모르겠구요. 읽는 모임인 거 같은데 방 만든 분이 잠깐 나가셔서요.

눈) 그래요? 전 시 쓰러 온 건데... 그럼 전 이만 나갈

인어) 잠시만요! 아직 결정 난 건 없어요. 모두 지금 들어왔거든요. 그냥 함께 해요!

눈) ....

성냥) 안녕하세요. 저는 성냥팔이소녀입니다. 어째 방장님이 금방 오실 거 같지 않은데

        우리 각자 소개나 하면서 있을까요?

인어) 좋아요. 성냥님은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근데 요즘도 성냥 찾는 사람 많아요?

성냥) 아 성냥 아니라고요. 지금 요식업에 종사하는데 왜 사람들이 단편적인 것 만 보고 그러는지.

        자꾸 빵집에 매달려서 침 흘렸다 그러는데, 배고파서 빵집 훔쳐본 거 아니고 시장조사했던 건데 참 내.

인어) 그래도 성냥은 파셨잖아요. 안 파셨어요?

성냥) 그건 옛날 얘기잖아요! 그것도 레어템 아주 잠깐 판 건데 왜 자꾸 나한테 성냥 안 파냐고. 사람들 진짜.

인어) 그러셨구나...

성냥)  아니 그게!

인어) 그럼 눈의 여왕님은 뭐하시는 분이신가요?

눈) 전 키즈카페 해요.

인어) 어머 아이를 좋아하시는구나!

눈) 싫어해서 문제죠. 쪼끄만 것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미끄럼틀이고 어디고 마구 올라 다녀서 골치가 아파요. 하도 조심하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저를 마녀라고 부르더라고요. 참나, 한때는 나도 한 왕국의 여왕이었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눈도 별로 안 오고 따분하길래 이사 와서 카페 하나 차렸더니 어린것들이 참내... 아무튼, 그래서 알바한테 맡기고 머리 좀 어른답게 식혀볼까 하고 둘러보다 와봤어요. 근데, 여기 시 쓰는 모임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인어) 그거야 뭐 쓰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바다에서 조그맣게 해저 여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잖아요. 얼마 전부터 뭍으로 이사 와서 해녀일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자, 이제 계속 조용히 계시는 분! 거기 오리씨 차례예요.

오리) 네.... 안녕하세요. 저는... 기자인데요...

인어) 아...

눈) 아!

오리) 네... 사실 여기저기서 미움을 많이 받고 있고... 그래서 음... 어느 날인가 제가 쓴 기사들을 모아서 봤는데... 솔직히 자괴감이 드는 게 사실이더라구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기도 해서... 지금은 좀 안식년을 보내고 있어요...      


엄지공주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엄지) 죄송합니다. 여러부운! 갑자기 애 유치원에서 급한 연락을 받아서 잠시 자리를 비웠어요.

        아 몇 분 더 모이셨네요?

인어) 어머, 아이는 괜찮아요?

엄지) 네 네. 다행히 별일 아니었네요. 자, 그럼 우리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하는데

        모두 인사들은 하셨나요?

성냥) 네, 저희는 인사 나눴구요. 엄지공주님만 소개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즈음, 엄지공주는 인류애를 잃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세상은 즐거운 곳이라 생각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그는 사회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조금씩 인류애를 상실해가고 있었죠.      


아무데서나 배를 득득 긁어대는 습관을 가진 독 두꺼비상의 과장과, 입만 열면 남 탓을 하는 서대리는 자신의 일을 엄지공주에게 떠넘기기 일수였습니다. 그 덕에 매일 야근은 물론이고 5년 동안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 할 정도였죠. 다행히 이직을 도와준 물류팀 김 나비와 최 은어 덕분에 더 나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회사의 부장은 풍뎅이상의 좋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엄지공주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젠틀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을 질투한 직원들이 퍼트린 헛소문과 이간질 때문에 상사의 눈은 금세 흐려졌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회의가 든 엄지공주는 버티고 버티다가 6년 만에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일을 하려 했지만 이제 나이가 문제였죠. 서른다섯이 넘은 나이로는 일자리를 구하긴 너무 힘이 들었으니까요. 시간이 흐르고 계약직으로 간신히 들어간 회사에서는 새로운 어려움이 닥칩니다. 음침하고 괴괴한 쥐들의 소굴. 그곳의 직원들은 친절한 얼굴과 반박할  없는 말로 이상하게 그녀를 몰아붙였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있자면 마치 미궁에 빠진듯 꼼짝달싹   없었죠.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란 것을 알게 됐을  그녀는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이즈음 사람에 대한 환멸과 인류애가 바닥을 찍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다른 부서의 외국인 스왈로우씨가 엄지공주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스왈로우씨가 처음 회사에 입사한  타향살이로 힘들어 했을  엄지공주가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까요? 당신은 누구에게라도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며 스왈로우씨는  좋은 조건의 회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인류애가 완전히 박살 나지 않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다행히 그녀는 일도 다시 시작하고 좋은 사람을 소개받아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이 끝은 아니었죠. 결혼이라는 또 다른 사회 속에서도 조심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인류애는 박살 나게 되어 있거든요. 엄지공주는 결혼이라는 거친 줄을 맨손으로 천천히 타며 힘든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문득, 자신이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건 결혼 속에 파묻히지 않는 엄지공주 자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끝낸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매번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책을 매개로 인간관계의 시작 앞에 선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파괴하고 싶은 인류애 속에서도 김 나비, 최 은어, 스왈로우씨의 작은 지지와 유대가 엄지공주를 일으켰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엄지공주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네, 맞아요. 어떻게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그래서 저는 독서클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책 속에서 잃어버렸던 과거의 제 자신을 찾는 거죠. 우선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을 모아서 어떻게 꾸려나갈지 의논을 하기로 하고 방을 열던 거예요. 다행히도 인어님, 눈의여왕님, 오리님, 성냥님이 들어오셨고 지금도 가입 문의 메시지가 많이 오고 있답니다. 아, 책모임 이름요? 회원들과 많은 얘기 끝에 [엄지 독서클럽]으로 결정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이 우왕좌왕 모임이 [엄지 독서클럽]이 된 이유는,,,  성냥팔이 독서클럽 이상하잖아요. 눈의여왕 독서클럽은 어떻구요. 독서를 많이 해서 눈의 여왕인가 싶을 거 아녜요. 미운 오리 새끼 독서클럽은 어이쿠..., 인어공주 독서클럽 역시 임팩트가 없어요. 그리하여 회원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결국엔 [엄지 독서클럽]이 되었습니다. 작지만 굳세고 중요하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죠.      


음... [엄지 독서클럽]의 탄생비화는 여기까지고요. 참, 지금 가입을 희망한다는 ‘장난감병정’님이랑 ‘벌거벗은 임금’이라는 두 분에게 카톡이 왔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벌거벗었다’는 아이디가 왠지 모임의 물을 흐리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어서 얼른 가서 다른 회원들과 이야기 좀 해봐야겠어요.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 아아, 그리고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 회원님들도 저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환멸이 가득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음엔 독서클럽 회원들의 인생사와 독서클럽에서 읽게 되는 책들, 그리고 클럽 내의 소소한 이야기로 찾아뵐까 해요. 그럼 그때까지 모두 안녕~


작가의 이전글 내가 원한 건, 꿈을 꿀 수 있는 영혼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