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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10. 2022

성질머리_ 고약한 성질머리도 아이 앞에선 길을 잃네

어릴 적 부모와의 감정 교류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간지러운 소리를 잘 못한다. 무뚝뚝한 성격으로 애교에 ‘애’ 자만 들어도 저절로 인상이 써진다. 또... 나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아이들을 보면 피한다. 시끄러워, 귀찮아. 쪼그만 인간들 진짜 내 옆엔 안 왔으면. 아이들이 내쪽으로 오면 못 본 척한다. 아이 부모들의 과장된 말투를 들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 자기 아기 좀 봐달라는 눈빛, 이쁘다고 말해달라는 듯 한 부모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꿋꿋이 견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을 거두지 않는 이들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해준다. “하하. 아기네~ 아기구나~” 그럼 마음이 상한 부모는 아기를 안고 쌩 가버린다. 왜 뭐. 당신 애기 당신만 이쁘지. 안 이쁘니까 이쁘다고 안 했을 뿐인데 뭐. 왜.     


역시 내 고약한 성질머리 때문일까? 이것은 모르는 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놈의 성질머리 덕분에 어색하게 친구랑 연락을 끊은 적도 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은 h는 틈만 나면 아기 사진을 올려댔다. 매일매일. '하하 그래. 귀엽구나. 하하. 좋겠네. 하하. 아이고 기특해라. 이야 행복하겠네. 하하. 그랬어? 어머머. 우와, 대단해!' 이제. 그만해. 더 이상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 하지만 자신의 아기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h는 결국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고 만다. 오랜 우정 때문에 간신히 인내하고 있던 나는 결국 아이의 배설물 사진까지 올린 h에게 터져버렸다. 우와 예술적 영감이 풍부한 똥이네! 우와 오이 찍어먹으면 맛있겠네! 해주랴? 나는 h에게 깊은 상처를 줬고 h는 나에게 완전히 삐져 연락을 끊었다.      


쪼그만 인간보다 조금 더 자란 어린이들은 왜 또 그리 궁금한 게 많고 말이 많은지 환장할 노릇이다. 아기는 그냥 시선만 거두면 되지만 어린이는 다른 얘기다. 글쎄 내가 그리 푸근한 인상이 아닌데 왜 자꾸만 나한테들 와서 말을 시키는 것인가. 사실 내 인상이 사나운 편이라 어른들은 잘 다가오지 않는데 참 어린이들은 편견도 없지. 그렇게들 나한테 질문을 해댄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다짜고짜 철퍼덕 내 앞에 앉아서는 태연하게 묻는다. “일기 써요?” 나는 고장 난 미소를 보이며 짧게 답한다. “그래.” 내가(니 엄마한테 가. 훠이~) 가라는 눈빛을 보내도 가지 않고 또 묻는다. “나도 일기 잘 쓰는데” 이젠 울고 싶다. 나보고 어쩌라고. 교환일기 하자고? 당황한 나는 “하하 좋겠다.” 로봇처럼 반응하며 눈으로 애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듯 당당하게 다가오는 모습. 무서워. 나한테 칭찬 들을 기대 하지 말아 줘요. 사실 죄송하다며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칭찬을 기다리는 듯 한 표정의 엄마를 보면 나는 겁을 먹는다.(그렇다고 칭찬해주지 않아.)

    

집에 돌아가 이런 말을 하면 식구들은 여지없이 한마디 한다. “하여튼 성질머리가 고약해. 거 좀 예쁘다고 해주면 어때서!” “예쁘지 않은데 왜 예쁘다고 해. 그거 거짓말인데 예쁘지 않은 애가 예쁘다는 소리 듣고 자라서 나중에 지가 예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그게 얼마나 더 큰 상처냐!” 내 말에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듣고 있던 엄마도 한 마디 거든다. 어디 나중에 니 자식 낳으면 보자 그때도 똑같나. 그럼 나는 입을 삐죽 댄다. 난 안 그럴 거거든? 못났으면 못났다고 말해줄 거 거든?     


그리고 나는 거짓말쟁이.

반성한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애들을 너무도 싫어하던 고약한 성질의 마녀가 아기를 낳았더니 세상에. 엄마야, 이거 내가 지금 뭘 낳은 거야? 차은우랑 송강을 섞은 얼굴인데 이거! 한눈에 나는 아이에게 반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내 과거를 잊지 않았으므로 타인들에게는 그런 말들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이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나 보다. 자고 있어도 예쁘고 울고 있어도 예쁘고 화를 내고 있어도 예쁜 내가 낳은 내 새끼. 내 심장을 당장 꺼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세상 하나뿐인 존재가 맞지만,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지만 타인에게 하지 않는다. 그냥 만든 사람끼리 칭찬하자.    

  

그렇게 내 고약한 성질머리는 아기를 키우면서 조금씩 줄어들다가 이젠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이젠 못생긴 아기도 예쁜아기도 그저 다 내 아이같고 귀엽기만하다. 그 성질머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내 눈엔 늘 꿀이 뚝뚝 흐른다. 물론 힘든 날들도 있었고 때로는 심신을 수련하듯 아이를 키우기도 했다. 아니, 아이가 나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형편없는 못된 성격의 어른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는 함께 서로를 키우고 지켰던 듯하다. 닭살 돋는 행동이나 말에 질겁하며 절대 간지러운 말을 내뱉지 않던 나는 아이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온갖 간지럽고 다정한 말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온다. 어쩔 수 없다. 부모에게 아이란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예전의 그 수많은 아기 엄마들이 왜 그리도 내게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냈는지 이해가 됐다. 그래, 세상에 하나뿐인 완벽한 존재를 낳았으니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겠구나 싶다. 뭐, 이해는 하지만 나는 남들한테까지 그럴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걸로. 그래서 나는 늘 집에서만 주접을 떤다. 화장실을 오가거나 주방을 오가며 아이를 마주치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는 척하며 묻는다. “차은우 씨? 여기 어디서 촬영 있으셨나 봐요?” 그럼 아이는 질겁을 하며 도망간다. 혹시라도 밖에서 그러면 엄마랑 정말로 말 한마디도 안 할 거라고 짜증을 낸다. 음... 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이 마음.           



그러나 도박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시간이라는 모래시계를, 돈이 주는 중압감을, 사회가 가하는 ‘문어발식’ 속박을 잊게 한다. 도박을 할 때 돈은 결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 어떤 것, 장난감, 플라스틱 칩, 다시 말해 교환 가능한 본성을 지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또한 진정한 도박사는 심술궂고 인색하고 공격적인 경우가 매우 드물며, 마음속에 너그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소유를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패배를 우연으로 간주하며 모든 승리를 하늘의 선물로 간주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책을 읽다가 사강의 표현에 깜짝 놀란다. 어머나, 사강이 도박을 정말 사랑했나 봐. 하필 도박에 관한 글에서 느낀 거라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사강의 문장에서 각자 사랑하는 것을 대입해보면 더 재미있게 읽힌다. 나는 아이 얘기를 하던 참이었으니 ‘도박’을 아이로, ‘돈’을 사랑으로 바꾸어 보면...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완벽히 표현한 문장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도박사는 엄마가 된다. 육아는 도박과 같다. 내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과, 나는 잃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아이를 키우기 위한 포커페이스와 단단한 마음을 지녀야 하며, 이 모두를 하늘의 선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옛일이 생각나 혼자 킬킬 대다가 괜히 눈물짓는다. 내 옆을 지나가는 아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다. 내가 쥔 패로 나는 오직 단 한 번의 게임만을 할 수 있다. 돌아보니 벌써 게임의 초반이 흘러갔다. 어떤 때는 떨리고 어떤 때는 두렵지만 나는 이 게임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고 마지막엔 후회를 남기지않는 성공적인 마무리를 할 것이라 다짐한다.


인간의 삶은 단 한번뿐이라는 것으로서, 바로 이 때문에 우리들 결단에서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가를 우리는 결코 확정지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단 한 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린 서로 다른 결단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제2, 제3, 제4의 삶이 우리에게 선사된 경우는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성질머리_ 육아를 하며 실종됨

결혼 전까지 극도로 아이들을 싫어함.
예쁘지 않은 아이에게 예쁘다, 귀엽다는 말을 못 함.
처음 보는 한 인간의 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실을 깨달은 뒤 성질머리가 사라짐.



목록_     

01. 프롤로그_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방식

02. 서점_ 주인 모르게 홀로 팔아버린 책들

03. 리본_ 범인을 잡기 위해 놓은 덫에 걸린 나

04. 브래지어_ 입었을까 안 입었을까?

05. 미미_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06. S_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07. M_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어

08. 아빠_ 간신히 되찾았으나 기어코 잃어버렸다.

09. 분노_ 감정의 잔해더미에서 살아남기

10. 개그감_ 나이가 들면 웃을 일도 사라지고

11. 머리숱_ 자연스럽다기엔 좀 억울하다

12. 성질머리_ 고약한 성질머리도 아이 앞에선 길을 잃네

13. 에필로그_ 잃어버려서 잊어버린 걸까,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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