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검은 꽃

by 민달이

전류와 전압을 맞추고 강한 불꽃을 튀기며 용접을 해나간다. 철이 용접봉을 떼고 잠시 용접면을 벗자 혁이 말했다.

-용접은 깔끔한 파도모양으로 나와야 좋은 거다.

철은 자신이 엉망으로 용접해 놓은 비드모양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이해 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생크림처럼 짜란 말이지? 케이크 둘레에 짜놓은 일정한 생크림 모양처럼?

혁은 장난하듯 말하는 철이 못마땅해서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무시하듯 다시 말했다.

-매끄러운 비드를 얻으려면 흔들리지 않게 자세를 잡고 팔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지! 일정한 위빙속도로 쇳물이 쌓이는 걸 보면서 운봉하란 말이다.

-네네.


철은 용접면을 다시 쓰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혁은 철이 용접해 놓은 모재를 들이댔다.

-여기! 오버랩 좀 봐라. 녹지 않고 겹쳐지기만 하면 집중부식의 원인이 된다고 했잖냐. 운봉법과 전류 속도를 알맞게 해야 돼.

-아아. 네.

-용접은 그냥 붙이는 게 아니야. 하나가 되게 다시 만드는 거야. 니가 창조자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철이 용접면을 벗지 않은 채 웅얼거리듯 말했다.

-창조자라니. 그거 하난 마음에 드네.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꾸 딴소리 할래!


잘하려고 해도 자세가 틀어지고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굳이 용접면을 벗고 보지 않아도 엉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혁은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솜씨였다. 화를 내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기공은 이게 다 뭐냐! 위빙도 엉망이고... 배워야 할 게 한둘이 아닌데 언제 학교로 갈 런지...

혁과 철은 늘 용접 때문에 싸우고 용접 때문에 화해했다. 엄마를 잃은 것도 그것 때문이라는 걸 철도 알고 있었다. 엄마도 자신처럼 이 일을 싫어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빠랑 결혼을 했을까? 눈앞에서 불꽃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지만 용접면을 쓰고 있는 철의 눈에 화려한 불꽃은 검은 색으로만 보였다. 검은 꽃. 그것은 화려하지만 새카만 꽃처럼 보였다.


혁이 모재를 철의 발 앞으로 툭 던졌다.

-봐라! 융합불량이 얼마나 많은지!

철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자신이 보기에도 엉망이었다.

-어린애가 해도 그것보단 낫겠다.

계속되는 지적과 비아냥에 슬슬 화가 치밀었다. 아빠를 위해 하는 척이라도 해보려했던 자신이 병신같이 느껴졌다.

-용접봉의 각도! 전기의 세기! 쇳물의 양이나 위빙의 간격!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건 니가 연습한대로 달라지는 거다. 사는 거라고 다를 거 같냐? 그거! 그걸 좀 봐라! 니가 들고 있는 건 그냥 쓰레기야!

폭발하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철은 눈을 치켜뜨며 혁에게 소리쳤다.

-이 안에 있는 것들 중에 쓰레기 아닌 게 뭔지 말해봐 그럼!


철은 밖으로 뛰어나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폭발했던 혁의 분노는 잠잠해진지 오래였다. 철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적어도 아들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편안해졌다. 이제 힘으로 녀석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안다. 무쇠 같던 혁의 근육은 어느새 녹이 슬어 삐걱거렸고, 점점 자라는 철의 근육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그런 아이를 몽둥이로 가르칠 순 없었다.


무엇보다 혁은 독수리의 눈 뿐 아니라 사자의 심장마저도 오래전에 잃어 버렸다. 툭 하면 우울해졌고. 자주 깊은 상실감이 엄습해왔다. 철을 보면 문득문득 비애가 느껴졌다. 비리고 싸한 맛이 기분을 거스르는 게 꼭 녹슨 쇠의 맛과 같았다. 술로 달래면 말을 듣던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술로도 우울한 심장은 달래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오직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건 쇠, 철이었다. 차갑고 단단한 철을 만질 때, 그 알싸한 녹의 냄새를 맡을 때, 우아하게 구부러지는 철의 곡선을 대하는 순간에만 독수리의 눈과 사자의 심장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언제나 짧았다.


혁은 토치를 들었다. 전류와 전압을 맞추고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용접면을 썼다. 처음 그가 용접을 시작했을 때의 감정이 칼날처럼 깊이 파고들었다. 용접면의 렌즈 안으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가게 구석에 쌓여 있던 파이프들을 하나씩 떼우기 시작했다. 동네의 작은 난방공장에서 주문받은 파이프들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파이프들을 연결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손만 놀리면 뚝딱 만들어지는 이 쉬운 작업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드가 거칠게 되고 너무 깊이 패여 구멍이 나는 사고에 혼쭐이 났다. 완벽하다고 자신하던 혁에게 선배는 파이프 안에 물을 넣어 그 앞에 내밀었다. 완성된 파이프에서 물이 줄줄 새는 걸 보며 민망해지고 회의감이 들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싶어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이제는 눈을 감고도 몇 백 개씩 해 치울 수 있게 되었다. 혁은 용접면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자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발버둥쳐도 변한 것은 없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가 같은 일들만 반복될 것 같아 두려웠다. 버릇처럼 철공소 밖을 내다보았다. 어두운 철공소와는 달리 밝은 빛이 거리로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수순처럼 오래전에 현주가 밝은 빛 속으로 사라져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혁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철공소 입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햇살이 그를 녹일 듯이 강렬하게 쏟아져 내렸다. 천천히 왼손을 들어 빛을 가려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잘린 손가락 너머로 환한 빛은 무참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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