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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Jan 03. 2019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


영화 매트릭스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네오는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라는 모피어스의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 네오는 '숟가락은 없다'는 혼잣말을 중얼대며 모피어스가 잡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생각하지 말고 이해하라는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과 같다. 체득.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되거나 실천으로 알게 된다는 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한다. 머릿속에는 온갖 아이디어와 상식과 지식들로 가득하다. 미래를 꿈꾸고 과거의 과오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도 때로는 타인이 이루어 낸 작은 성공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저을 때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작은 성공은 실재하는 것이며 머릿속에 담겨있는 나의 성공은 실재하지 않는다.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는 그런 것이 아닐까. 작은 한 걸음. 한걸음이 모여서 이루어진 실재의 길 말이다.


오랫동안 프로필 상태에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적혀 있는 내내 나는 '길을 아는 것'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둘의 차이를 알고 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만 할 뿐 바닥에 엎드려 있기만 했다. 길을 걸었지만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걷지 못하도록 만든 족쇄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내내 주저 않은 나는 일으켜주진 않는 누군가를 원망하기만 할 뿐 홀로 일어서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자 만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라도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벽을 잡고 일어설지언정 일단 일어선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보통 아기들은 11개월 전후로 두 발로 일어서서 걷게 된다. 아기가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을 떠올리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아기들은 흔들거리며 제대로 잡히지 않는 중심을 잡으려 노력한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려 애를 쓴다. 일어서지 못하면 절대로 걸을 수 없다.


나는 40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섰다. 내내 자리에 누워서 버둥거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나아갈 수 없는 제도를 만든 세상을 탓했으며 무엇보다 능력 없는 나를 원망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지금은 너무도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그 시절이래봤자 얼마 되지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는 이상 나는 버려진 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딘가를 향해 마음대로 나아갈 수 있는 두 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 젊은 무명작가의 투지와, 은연중에 존재하던 어떤 동경의 마음이 나를 비틀거리며 일어서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누군가 비웃으며 주저앉히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글을 보는 타인들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싶을 만큼 용기를 낸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어리둥절한 건 사실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으니까. 온갖 망상 속에서 헤엄치며 현실을 비관하던 사람이었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일어서지도 못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라는 모피어스의 말처럼 생각을 중단하고 이제 그만 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아직 미쳐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딛지 못했지만 나는 한 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몇 걸음 가다가 주저앉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또 한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걸음들이 모여 길이되고 나는 어딘가를 향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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