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사기꾼들에게 보내는 헌사
또다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늘 자잘하게 그래 왔지만 이번엔 어쩐지 멘탈이 완전히 나가서 인생 개객끼!!
암튼, 그리하여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네?
음... 생각해보니 처음 시작은 20대였던 것 같다.
식품회사에 다니던 선배가 용돈이라도 벌라며 전화번호를 하나 주었다. 강북 어디였던가, 강남 어디였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연락하고 찾아 간 그곳은 디자이너 몇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지에 대한 손바닥 책자를 만들게 됐다며 전반적인 카피를 부탁했다. 여러 번의 회의가 있었고 여러 번의 수정이 있었다. 일이 마무리되어 책이 나왔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나는 건 조금씩 조금씩 카피료를 줄이다가 마침내는 줄 돈이 없다고 말하던 뻔뻔한 목소리뿐.
화가 났지만 선배와 연결이 되어 있어 제대로 화도 내지 못했다. 선배는 돈 없는 애들이니 이해해 달라는 말이 다였다. 돈은 나도 없다고요~ '어휴... 진짜 선배만 아니면 저걸 그냥... ' 하지만 나는 포기했다. 그래 잊자 싶어 며칠을 버텼지만 속은 내내 부글부글 끓었고 도저히 이렇게는 못 넘어가겠어서 그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지금이라면 하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어렸던 때였다.) 그렇게 살면 좋냐. 선배 때문에 내가 이 정도로 참고 넘어가는 데 어디서 나 만나면 좋은 일 없을 거다. 뭐 그런 말들을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길게 보냈던 것 같다.
나쁜 일을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어떤 기제 때문일까? 희한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도 보냈던 메일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어딘가에서 그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는 알아보지 못하겠지. 혹시 벌써 같이 일을 했는데 서로 누군지 모르고 있었을지도. 분노를 억누르며 썼던 메일. 그것이 혈기왕성했던 시기였을 걸 떠올리니 어땠을지. 오마나.. 손발이 오그라드네. 어렸던 나여. 그냥 참고 말지!
두 번째는 얼굴도 모르는 이였다.
우리는 pc통신으로...(로맨틱하지 마. 이거 아니야.) 그는... 아니 그자는! 출판일을 한다고 했나 잡지 관련 일을 한다고 했나. 어쨌든 하이텔의 어느 게시판에서 댓글을 주고받다가 어? 서로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음악이 같네? 어라? 생각도 비슷하네? 뭐 그렇게 말이 잘 통하던 사이였다. 띠-- 뚜루루루루............... 모뎀에 접속하면 제일 먼저 서로가 쓴 글이 있는지 보고 댓글을 달고 그랬다.(그거 아니야. 말랑말랑한 거 아니야. 그만해.) 그러던 어느 날 쪽지로 대화를 나누다가 강남 거리에서 취해있던 학생들 본 게 생각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 잘됐다며 르포를 하나 써달라고 했다. 청소년들의 비행에 관한. 하지만 르포라고 하기엔 취재라고 할 것도 없는데? 벌써 몇 주 전 일인 것 같은데?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허나,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나는 어버버 하다가 오케이를 하고 만다. 뭐 딱히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페이지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르포라고는 했지만 픽션 비슷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대신 만나서 적게나마 사례도 하고 거하게 밥을 사겠다며 여러 번 부탁을 했다. 떠올려보니 꽤 많은 양의 글을 보냈고 만날 약속을 정했다. 오호라, 이거 원 없이 비싼 것 좀 먹어 보겠구먼! 지겨운 업무시간을 룰루랄라 노래하며 보냈다. 그리고 약속 두 시간 전에 연락이 왔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다고 미안하다며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그는 그렇게...
내가 쓴 허접한 글들은 어디서 떠돌고 있었을까. 주인도 찾아보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다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겠지. 흑흑. 묵념 좀 잠깐 하고.. 기억을 떠올려본다. 아.... 또 하나 어딘가 떠돌다 버려졌을 글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게 제일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년은. 아. 아니. 오타다. 그녀는 명문대생이었다. 어느날 내게 레포트를 하나 써달라고 했다. 출결 때문에 꼭 내야 하는 건데 깜빡했다며 너는 영화도 좋아하니 어려운 일 아니지 않은가 라며 졸랐다.
"나는 영화를 잘 모르잖앙. 응응? 우리는 친구잖앙~~ 응응?"
장 뤽 고다르에 대한 리포트였던 것 같다. <미치광이 피에로>를 보고 고다르의 누벨바그는 어쩌고 저쩌고...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뭐 나름 재미있었다. 리포트를 받아 들고 까르르 웃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 참 뒤에 어찌어찌 알고 보니 그녀가 내게 부탁했던 건 단순한 출결용이 아니었다. 그걸로 시험을 대신하는 거였다고 몰랐냐며... 건너건너 들었다. 전해 듣기로 그녀는 A를 받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고 한다. 나쁜 년. 그래서 나를 그리도 구슬르고 그래도 어차피 쓸거면 제대로 잘 좀 써달라고 했구나.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사기꾼들... 다음 타자는 글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대학 동기였다. 방학 동안 알바 자리를 찾고 있는 내게 전화를 해왔다. 자기가 하는 알바가 몸은 힘든데 돈을 많이 줘서 할만하다. 생각 있냐? 대신 물건도 좀 많이 나르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할래?" 오! 빙고! 좋아. 돈을 많이 준다면야 뭐가 대수겠는가! 콜! 그녀는 물건을 나르다 손이 다치지 않게 목장갑을 꼭 챙겨 오라고 당부했다.
나는 목장갑을 챙겨 그녀를 만나러 갔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함께 먹는 동안 왠지 그녀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어딘가 어색했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빨리 가서 일을 하고 싶었다. 후딱 입안으로 햄버거를 쑤셔 넣고 소리쳤다. 가자! 근데 그녀는 아직도 햄버거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빨리 먹길 기다리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그냥 가자며 꾸역꾸역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앞서 걸었고 들뜬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그녀를 따랐다. 일이 많아? 힘들어? 무슨 물건 나르는 건데? 너무 들뜬상태였던지 그녀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딘가 체한 것 같은 허연 얼굴만 기억날 뿐.
대한극장 근처를 지나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까지. 아니, 문이 열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어떤 종이에 이름을 쓰는 순간까지도 나는 몰랐다. 응? 뭔가 이상한데? 기운이 안 좋아. 고개를 들어보니 갑자기 동기도 사라졌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동기를 찾으러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엔 가득한 사람들이 무언가에 빙의된 듯 손뼉을 치며 파이팅을 하고 으쌰 으쌰 하고 있었고 그 맨 앞에 앉아서 뒤를 돌아보며 두리번거리던 동기를 발견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동기는 화들짝 놀라 앞으로 돌아 앉았고....
그렇다. 나는 다단계 모임에 끌려갔던 것이다.
나쁜 년. 목장갑 챙겨 오라는 디테일로 나를 옭아맸네. 너의 그 디테일에 감동하여 용서해 주마. 대신 다시는 볼 일없다. 나는 이상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온갖 험악한 얼굴로 뿌리치며 간신히 그곳을 탈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데 거울 속에서 목장갑을 손에 든 한심한 내가 보였다. 하아. 빌어먹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목장갑 끼고 앉아서 미친 사람처럼 박수를 쳐대며 한 판 놀아주고 올걸 그랬나? 이 구역의 미친년을 나다! 한판 놀아줄껄. 진짜 인생 개객끼...
뭐라도 일등을 해야겠어. 좋아! 그렇다면 사기당하는 맹함으로라도 일등을 하리라. 호구의 선구자로 기억되게 하리라. 아직 남았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즈아! (미아네요. 내가 지금 멘탈이 박살이 나있어서 이상한 글들을 써재껴도 그러려니 해조요. 읽는 분들 안구테러 미아네요. 용서해요.)
에 또... 뭐가 있더라... 보험! 오호라 보험도 있었네.
참 전방위적으루 많기도 해요.
친한 친구의 아주 가까운 사람이 보험을 오래 했다. 취업을 한 뒤 한번 보자고 해서 봤고. 좋아하는 친구여서 꼭 들어주고 싶었지만 갑자기 너무 큰 상품들을 권하길래 부담이 되어 큰 거 말고 3만 원대 상품 두어 개 정도만 알아서 들어주세요. 했다. 뭐, 사실 사기라고 할 수는 없지. 내가 들어달라고 하고 제대로 확인도 안 한 채 세월이 너무 오래 흘렀으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믿고 맡겼는데 친분도 있는데 상품이라도 좀 잘 골라서 들어줄 수 없었능교? 그래도 이십 대 초중반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아주 젊디 젊은, 섬유질만 잔뜩 먹는 혈관이 아주 완존 진짜 깨애애애끗한 여자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아지매요. 뇌졸중이라니, 심근경색이라니, 고혈압 상품이라니 너무한 거 아인교! 게다가 나 저혈압인 거 그 친구도 잘 알고 있는데 아놔. 진짜. 60대 배 나온 아저씨들에게 필요한 상품인 뇌졸중. 고혈압. 심근경색.
하아... 20대 초반 건강한 아가씨한테 아재 전용 상품을 것도 20년으로 들어 놓은 거 실화냐?
뭐,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걸 20년이 다 되어 알게 된 내 탓이지. 알고 난 뒤의 충격이란... 나도 참 나다. 어째 그리 무디고 관심이 없는지. 고지 안 했을 리는 없을 테고 했는데도 대충 듣고 네네 하고 넘겼겠지. 내가 이 모양이라 그런 일들이 벌어진 거니 어쩌겠는가.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 물론 친구에겐 입도 뻥긋 한적 없고 내색도 한번 안 했다. 그냥 아예 기억에서 지우고 살았다. 친구는 여전히 아직까지 소중하고. 그 까짓 거 뭐.
... ...하지만 문득문득 뇌졸중, 심근경색, 고혈압 상품이 아닌 여성전용상품으로라도 하나만 들어줬으면 지금쯤 너무도 고마웠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근데 그분은 도대체 뭣 때문에 아가씨에게 아재 상품을 들어줬던 걸까? 내 또래 딸도 있는 분이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해가...
응?
환청이 들려. 아직 아니래.
그럼 하나 더 해줄게.
때는 삼십 대였나? 이십 대 후반인가? 아... 기억나지 않는다.
슬프고 괴로운 건 기억에서 죄다 지워버리려 어지간히 노력했나 봐. 나의 애처로운 뇌여.
오래전부터 과호흡증후군이 가끔 일다가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서 기절을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잦은 건 아니고. 당시에 혼자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기절을 한 건 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고 일어나 보니 오른쪽 관자놀이 부분이 돌에 심하게 갈려 있었다. 병원에서 처치를 하고 시간이 지났는데 이상하게 딱 그 부분만 오백 원 동전만큼 자잘한 물사마귀 같은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회사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찾았다.
문을 열자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밤을 새워 카피를 쓰다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고 회사에서 바로 간 터라 쭈구리처럼 한쪽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렸다. 진단을 끝낸 의사는 간단하게 레이저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슬쩍 물어보니 비싸 봤자 10만 원 안쪽이라고도 했다. 당장 시작하자고 했고 나는 마취크림을 바르고 누웠다. 아씨.. 왤케 아픈 거야! 레이저 처치가 중반쯤 되어가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땀이 나고 열이 나며 흥분이 되더니 머릿속이 멍해졌다.
---------------------------------------------------------------------------------
아아, 계속 써야 하는데 너무 기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체력이 달린다. 일단 여기까지 써야겠다.
속에 있는 걸 토해내니 어딘가 후련하다.
꾸웨에에에에엑-----------------
역시 사람은 뱉어 내고 살아야 해.
어,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속에 아직 뭔가 남았나 보다.
스펀지밥처럼 눈알을 뇌 속으로, 몸속으로 돌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 싶다.
어이쿠 이런 꾸에엑--- 체력이 달려 속에 있는 게 잘 안 나온다.
일단 여기까지 1부라 치자.
그럼 2부는 뭐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