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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Sep 16. 2019

[미역줄기] 코코넛 미역묵 못 먹어 봤을걸?


코코넛 오일이 몸에 좋다는 말이 많아 코코넛 오일을 사기로 했다. 근데 이게 어느 정도를 사야 하는지 감을 못 잡겠는 거다. 우선 작은 거 하나만 사자 싶어 골라놓고 상품평을 보니 오호라 코코넛 오일이 엄청난 효능이 있네? 몸에 발라도 좋아요. 살도 안 찌는 기름이래요. 머리에 바르면 윤기가 자르르~ 온갖 좋은 상품평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느새 내 손가락은 장바구니에 넣어 뒀던 200미리 올리브 오일을 빼고 2리터짜리 코코넛 오일을 클릭하고 있었다. 


코코넛 오일이 배달된 이후 우리 집은 문을 열 때마다 열대우림의 향기를 풍겼다.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았다. 매일 빵을 만들어 먹겠다는 굳은 의지는 언제나처럼 처참히 부서지고 급한 대로 코코넛 오일을 두르고 식빵을 구웠다. 오오. 이것은 빠다코코넛 과자를 먹는 것과 같은 풍미잖아! 이 정도면 금세 다 먹을 수 있겠어.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쉽지 않았다. 그래. 다른 걸 해 먹자.


나는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살아있는 걸 좋아한다. 오도독뼈, 무말랭이, 설익은 숙주, 이런 것들을 씹으면 기분이 좋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게 미역줄기 볶음인데 편 마늘과 함께 볶아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나는 일어나 팬에 코코넛 오일을 듬뿍 두르고 미역줄기를 볶기 시작했다. 음음음~ 콧노래가 나온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한입 먹어보니… 살짝 빠다코코넛을 부셔 넣고 볶은 맛이 나긴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기분 좋은 식감을 느끼며 잔뜩 볶아서 한 접시를 밥 대신 먹고 나머지는 내일 먹을 생각으로 식혀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그 무엇과 대면했다! 



냉장고를 열고 어제 만들어 놓은 미역줄기 볶음을 꺼내려고 반찬 뚜껑을 열다가 나는 흠칫 벌레를 본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발 물러나서 다시 반찬 통을 확인했다. 내가 잘못 봤나? 하지만 어제 내가 넣어 둔 게 맞았다. 나는 분명히 미역줄기를 볶아서 넣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어떤 물질 한 덩어리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현란한 미역줄기 문양을 넣어 디자인된 하얀 묵이었다. (아, 며칠이 지났는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 현란한 페이즐리 무늬의 묵!) 반찬통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도 줄기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인상을 구기며 모서리 틈 사이로 젓가락을 넣으니 네모난 반찬통 모양의 묵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코코넛 오일은 더우면 투명하게 풀어지고 추우면 하얗게 굳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일반 카레는 가루인데 팜유가 함유된 고체 카레는 그렇게 벽돌 모양으로 잘 굳어 있는 거라고. 

맙소사. 요리 파괴자인 내가 그런 사실을 알리가 있나.

그리하여 그날의 묵은 쓰레기통으로...



[괴이한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자들을 위한 레시피]

코코넛미역묵-

코코넛 오일을 잔뜩 넣고 볶는다. 

냉장고에 넣고 식힌 후 네모로 굳으면 깨끗하게 잘라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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