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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01. 2019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심리상태

파전


파가 잔뜩 올라가고 바삭한 파전을 좋아하지만 일부러 찾아 먹지는 않는다. 음식의 맛이라는 게 혀와 뇌에서 맛있다고 느껴지는 걸까? 혹은 그날의 분위기와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걸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나 또한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 일을 겪었기 때문에 묻는 거다. 유독 나는 파전의 맛있는 맛이 진짜 맛있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슈퍼를 운영하셨다. 슈퍼 밖에 우리 집 진돗개 떡배가 있었고 떡배는 좀도둑들이 얼씬도 못하도록 가게를 지켰다. 나는 잘생긴 떡배를 좋아했는데 녀석은 긴 주둥이를 옆으로 비틀어 좁은 뺨을 비벼대며 내게 애정 표현을 했다. 사실 나는 태풍이나 코난 같은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아빠가 떡배가 어울린다고 떡배라고 지었다. 어쨌거나 떡배는 낮엔 슈퍼 밖에서 좀도둑을 지키고 밤이 되면 슈퍼 안에서 잠을 잤다. 슈퍼 안에서 재워도 진열대의 물건은 건드리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문을 열던 아빠는 화가 잔뜩 난 채 떡배를 혼내고 있었다.


밤새 떡배는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황태 여러개를 잘근잘근 씹어 놓았던 것이다. 그런 일이 몇 번인가 더 있고 난 뒤 떡배를 보내야겠다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나는 절대 안 된다며 아침마다 신신당부를 하고 학교를 갔고, 놀자는 친구들의 목소리도 외면한 채, 종이 치면 최대한 빨리 집까지 달렸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 떡배가 사라질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헐떡거리며 언덕을 오르던 어린 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숨을 몰아쉬며 떡배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하던 날들.


정신없이 뛰어가 보면 떡배는 매일 그 자리에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나는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때마다 떡배는 두꺼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불안함은 완전히 나에게서 사라졌다. 그리고 유난히 늦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목소리와 아빠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고 낯선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몽사몽 일어나서 영문도 모른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나갔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간신히 밖으로 나갔을 때 엄마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봤다. 그와 동시에 트럭 위 커다란 철망 사이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떡배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는 얼른 가라며 트럭에 손짓했고 엄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내가 소리를 질러도 떡배는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멀뚱히 바라보기만 할 뿐 한 번도 짖지 않았다. 떠나는 트럭 뒤를 쫓아가며 떡배야! 떡배야!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떡배는 시골 아는 집에 보내는 거라고 했지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다 필요 없다고 다시 데려오라고 오후 내내 발버둥을 치고 악을 쓰고 나자 힘이 빠졌고 나는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 배신감에 몸이 떨려왔다. 엄마 아빠도 아니다. 이제 둘은 나와 남이다. 떡배의 안전을 확인하려고 언덕을 뛰어오르던 숨찬 날들이 떠올라 방바닥을 두드리며 울었다. 밖에서 밥을 안 먹는 나를 걱정하는 엄마 아빠의 소리가 들려 밥을 안 먹고 죽어 버리는 걸로 엄마 아빠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침도 안 먹었던 나는 점점 배가 고파졌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분했다. 문을 열고 한 번씩 나를 들여다보는 엄마를 모른척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5시쯤 되자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저녁 9시가 넘어가자 먹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는 이마를 짝- 소리 나게 때리며 나를 타일렀다. 10시쯤 방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왔다. 미안하다고 너무 말썽을 부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이거 조금만 이라도 먹어봐라."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 일어나 보니 엄마는 나갔고 바닥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먹음직스러운 파전이 놓여 있었다.



고소한 냄새. 갑자기 미친 듯이 배가 고파졌다.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자꾸 따끈한 파전으로 눈길이 갔다. 씩씩거리며 분노를 표현하던 감정들이 파전에서 오르는 김과 함께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꼈다. 노려보던 눈은 부드럽게 풀렸고 어느새 나는 젓가락을 들어 노릇노릇한 파전을 찢어 입에 넣었다. 그리곤 어떻게 됐는지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떡배에게 사과했다. 그날, 파전을 먹으며 눈물이 났는데 그게 떡배 때문인지 파전이 맛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 파전은 일부러 찾아 먹진 않는 음식이 되었다. 파전을 보면 아직도 희미하게 죄책감이 느껴진다. 파삭하고 따끈한 요리. 한번 손을 대면 젓가락을 멈출 수 없는 마성의 음식. 고소한 냄새로 나를 굴복시켰던 악마의 요리. 왜 떡배는 트럭 위에서 한 번도 짖지 않았을까. 그게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떡배의 앙 다문 입과 까맣던 눈동자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아직도 가끔씩 떡배가 꿈에 나온다. 종종 파전을 먹다가 목이 메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파전은 맛있지만 맛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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