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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Sep 30. 2019

[김치찌개] 생강 맛이 원래 그리 강한 겁니까?


결혼 전에 엄마가 해 주는 건 뭐든 좋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김치찌개.

냄비 바닥에 시래기를 잔뜩 깔고 싱싱한 고등어를 넣은 뒤 그 위에 김치를 덮고 한참 동안 끓인 찌개의 칼칼하고 깊은 맛이 얼마나 좋던지.


돼지고기랑 참치 김치찌개를 주로 먹다가 오래전 그 맛이 생각나서 마트로 향했다. 생선코너를 구경하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생물은 잘못 끓이면 비릴 수 있으니 그냥 통조림 사서 끓이래. 그래 맞는 말이지.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자 싶어 그 뒤로 돼지고기 아니면, 통조림을 넣고 먹었다. 생선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말갛게 누워 있는 등 푸른 생선을 보면 자꾸 미련이 남아, 언젠가 생물로 해봐야지 생각만 하길 여러 날.


아, 무슨 먹는데 환장한 나라도 아니고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셰프며 파티셰가 넘쳐난다. 하필 또 TV를 끌까 하는데 찌개를 끓이네? 일단 멈춤.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나오는 셰프들은 경쟁을 하듯 내게 요리를 하라고 자꾸만 부추겼다. 그날따라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김치찌개를 클로즈업하는 현란한 카메라 워킹에 나는 완전 정신을 놓았다.


아, 저 야들야들한 것 좀 보라지.

저저 얼큰 해 보이는 국물 하며,

보들보들한 생선의 뽀얀 살점!

새하얀 쌀밥에 딱 한 숟가락을!


시래기를 깔고 김치와 함께 자글자글 끓이면 밥 한 솥을 뚝딱 먹어치우던 내가 아니던가. 오래 끓이는 바람에 냄비 바닥에 살짝 눌어붙은 김치를 떼어먹을 때 입안에 감도는 새콤하고 씁쓸한 탄 맛을 떠올리자 침이 고인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장으로 향한다. 고등어가 떨어졌다는 주인아저씨 말에 대신 꽁치를 샀다. 찌개에 바로 넣을 수 있게 손질까지 해주셨으니 이제 게임 끝. 오늘 저녁은 밥 두 그릇 먹어야지, 아니야 세 그릇 먹을 거야. 머릿속에선 벌써 완벽한 찌개가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서둘러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냄비에 잘 익은 김치 한 포기를 넣는다. 손질한 꽁치를 깨끗이 씻어 함께 넣고 김칫국물을 몇 국자 떠 넣은 뒤 불을 켠다. 이제 공은 가스레인지에게 넘어갔다. 나의 레인지가 열일 하는 동안 나는 고상하게 차나 한잔 해야지.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 슬슬 끓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지금 딱, 먹어보고 부족한 간은 간장으로 하자 싶어 국물을 한 입 떴는데,,


응? 내가 지금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중인 건가?

비려. 너무 비려. 이건 그냥 물고기 날로 먹은 거야.

꽁치 사냥한 물개가 된 거 같아.



후추! 후추를 빼먹었구나.

나는 침착하게 수저를 내려놓고 후춧가루를 찾았다. 후추를 뿌리고 휘휘 저어 다시 간을 본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허둥지둥 냉장고를 살핀다. 쓸 일이 없던 생강가루를 찾아내어 한 숟가락 듬뿍 넣고 뚜껑을 닫았다. 아닐 거야. 덜 끓여서 그럴 거야. 좀 더 끓이면 괜찮을 거야.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며 찌개가 맛있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하지만 역시 기대뿐인 좌절. 생강 맛이 원래 그렇게 강한 겁니까? 나 생강가루 한 숟가락밖에 안 넣은 거 같은데. 아니 쪼금 더 넣었을 뿐인데. 생강이 후추를 잡아먹었는지 후추 냄새는 나지도 않고. 비린내는 왜 또 그대로지? 생강 넣으면 비린내 잡히는 거 아니었나? 꽁치의 비린내가 이 정도 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비린내가 이건 뭐, 고등어에 비할바가 아니야. 휴... 고등어였어야 했는데. 고등어는 조금 덜 비렸을 텐데.


소주까지 찾아 넣고 계속 간을 보고 이건 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번엔 생강 맛이 너무 강해. 비리고 생강이고 비리고 생강이고 무한반복이야. 안돼. 도저히 둘 다는 잡히지가 않아.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뚜껑을 닫고 불을 껐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끓어오르던 나의 찌개는 차갑게 식었다.... 됐다. 열심히 했다. 여기까지 하자. 나는 틀렸어. 먼저 가... 앞으로는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고등어 김치찌개는 다음 주에 엄마한테 가서 먹어야지.


생선은 무슨, 김치찌개는 뭐니 뭐니 해도 돼지고기지! 암. 나는 냄비에 들어 있는 것을 싱크대로 쏟아 버리고 돼지고기와 김치를 새로 꺼낸다. 가스레인지에서 돼지고기찌개가 바글바글 끓어오르기를 기대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찻물을 올린다. 곧 돌아 올 식구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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