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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03. 2019

[칠리새우] 누가 만들면 어떻습니까?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요리를 못하는 데 어떻게 아이를 먹이고 키우는 걸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리를 못하는 거지 생존을 위한 음식은 그냥저냥 하고 산다. 일테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콩나물밥과 생선구이. 고기처럼 별로 손이 가지 않는 음식들로 돌려막기를 한달까? 아이는 성장을 위한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이 필요하므로 버터에 고기를 굽고 각종 야채들을 생으로 혹은 구워서 곁들여 준다. 그러니 성장에 필요한 것들은 나름대로 챙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는 먹어보지 못하고 자란 건 사실. 엄마는 매일 전화로 잔소리를 한다. tv만 틀면 현란한 요리들과 셰프들 뿐이니 엄마는 tv를 볼 때마다 내가 못마땅한 거다. 만들기 어렵지 않더라. 애도 새로운 것도 좀 먹어보고 해야지. 재료도 쉽게 손질하더라. 이렇게 저렇게 양념장을 만들어 두면, 미리 잘라서 냉장고에 얼려두면, 요리학원도 다니고 좀 배워 두면, 실패해도 여러 번 하다 보면,,, ...아니야. 엄마. 여러 번 하다 보면 포기하게 되더라고 그만 해 엄마. 난 틀렸어... 그래도 엄마는 계속 나를 달달 볶고 나는 네네네 하다가 끊고 만다. 나도 안다고요. 그거 티브이로 보면 쉬운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내가 하면 그 맛이 안 난다니까? 하고 싶어도 안되는데 어찌하오리까.


어느 날인가 친구네 집에 다녀온 아이가 신이 나서 말한다.

"엄마! 칠리새우를 해주셨어! 엄청 맛있었어."

"그렇게 맛있는 걸 사주셨어? 너무 감사하다."

"아니, 사주신 게 아니고 직접 만들어 주셨다니까?"

"집에서 직접?"

"응, 집에서 만들 수도 있나 봐!"


집에서 만들 수도 있나 봐.. 집에서 만들 수도 있나 봐... 머릿속을 왱왱 울리며 하루 종일 아이의 목소리가 맴돈다. 마법사를 본 듯 믿을 수 없어하는 목소리라니. '아니야, 그 엄마 냉동 산 걸로 만든 걸 거야. 그 어려운 걸 집에서 했을 리 없어' 부정을 해보지만 그 엄마의 요리 솜씨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필 칠리새우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다. 새우 손질도 쉽지 않던데 칠리새우를 집에서 직접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존경스럽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어째야 하는 것인가. 아이에게 그런 요리는 집에서 할 수 없는 거라고 음식점에서 사 먹는 거라고만 했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수상하다. 설마 해달라는 건가? 휴... 아니야. 못 본 체 해야겠어...


모른 척 하자 마음먹고 일주일이 지났나? 다행히 아이도 잊은 것 같았다. 매일 돌려막기 음식의 평화가 흘렀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이상한 음악이 나올 때까지만... 라디오를 틀어 놓고 일을 하는데 '픽 미 업'노래가 흘러나왔다. 흥겹게 픽미 픽미 픽미 업 픽미 픽미 픽미 업 하는 노랫소리에 옆에서 책을 읽던 아이가 그 음에 맞춰서 '칠리 칠리 칠리~' 이러고 있네? 웃기기도 하고 좀 뜨끔하기도 해서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래, 아이가 좋아하는 거 그걸 못해주냐 해보자! 하면 하는 거지 뭐. 하지만 곧 그만둬야 했다. 새우를 사고 껍질을 까고 튀김 반죽을 입혀 한 번 튀기고 나서야 역시 나는 안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만 완성되면 양념도 막 시작하려고 했는데... 왜지? 새우를 튀기는 순간 튀김옷이 홀랑 벗겨지네. 새우들이 조용히 옷을 벗는 걸 보고 양념은커녕 여기서 멈춰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둘러보니 주방은 온통 밀가루에 기름 천지고 느글느글해 보이는 튀김옷은 축축하게 다 늘어져 있고... 그 난리난리들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나한테 화가 치밀어 눈물이 찔끔 났다.


쳇, 이딴 걸로 울지 말아야지. 잠시 앉아서 화를 가다듬고 일어나서 기름을 버리고 반죽도 버렸다. 홀라당 벌거벗은 새우들을 옹기종기 모아 놓고 뭘 할까 생각하다가 볶음밥을 하기로 한다. 그냥 야채만 대충 넣고 굴소스 한 숟가락만 넣어도 맛있으니(굴소스를 조금 넣어야 한다는 것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알게 됐다는 사실. 그게 그렇게 짜다고 아무도 말 안 해 주던데?) 거기에 새우까지 더하면 최고의 맛이 나겠지.


참, 잠깐 마트에 뛰어가서 칠리새우 한 봉지 사 와야지. 볶음 밥이랑 함께 줄 거야. 그까짓 거 누가 만들면 어떤가.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요즘은 공장에서 만든 게 더 깨끗하고 맛도 좋다더라. 어쨌거나 오늘 저녁은 칠리새우다! 엄마가 했다고 당연히 믿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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