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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04. 2019

[책] 마음에 불을 놓는 언어

심장 안팎으로 읊조리는 노래

short story, [우리에게 남은 건 진실뿐일까?]


김수영의 시를 처음 읽던 날, 가슴에서 몽글몽글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는 걸 느꼈다. 그것은 간지럽다가 따끔하더니 갑자기 파스를 바른 듯 화하게 퍼지는 느낌이었다. 심장 안팎으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계속됐다. 혼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나는 퇴근해서 들어오신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는 막 화장실에서 씻고 있던 중이었다. 아빠! 세수를 하던 아빠가 허리를 펴고 돌아보았다. 이것 좀 보세요. 시는... 시인의 한숨 같은 것인가 봐요.라고 내가 말했던 순간의 두근거리던 심장소리. 혈관을 타고 빠르게 귀 뒤쪽으로 사라지던 거친 맥박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나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 또한 기억한다. 그것은 사진처럼 오래도록 뇌리에 박혔다. 미처 닦지 못한 물기가 커다란 얼굴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주춤주춤 나는 본능적으로 시집을 뒤로 감췄다. 두근거리던 심장은 순식간에 서리가 끼며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아빠의 그 눈빛은 떠나던 엄마를 향한 고통스러운 눈빛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직감하며 바라보던 그때의 눈빛과 같았다. 그 순간 아빠의 얼굴 위로 떨어지던 것이 물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런 말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아빠가 사다주신 문제집에 집중했고 과외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심장 안쪽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비명을 지르는 일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small talk, [시인의 한숨]


예술의 마지막, 가장 어려운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시는 어렵다. 읽어도 읽어도 뭔 소린지를 모르겠다. 더구나 어떤 시들을 보면 함축의 함축을 더한 결과 독자는 더욱 읽기가 막막해진다. 그런 시들을 읽으면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슬퍼지곤 한다. 하지만 시라니까 대놓고 거부감을 표할 순 없다. 왠지 그 속에서 뭔가를 찾아낸 것 같은 제스처를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시를 음미하지 못하는 부류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시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시를 하나도 모르는데... 괜찮다. 시는 시니까 어려운 거다. 예술의 가장 끝에 서 있는 게 바로 '시'이므로 몰라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 된다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다. 그건 어디까지나 오래고 두터운 습작의 시간들을 거친 자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피카소의 대충 그린 듯한 그림이 인정받는 이유가 그러하듯이.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

 -피카소-


그림 한번 그려본 적 없는 누군가가 캔버스에 마구잡이로 붓을 휘갈기고 다 의미가 있으므로 이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 가. 외국 어디선가 원숭이에게 붓을 쥐어주고 캔버스에 낙서를 하게 시킨 다음 전시실에 걸어 놓았더니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가의 그림을 보듯 심오한 표정으로 전시를 관람하더라는 의미심장한 사건도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요즘엔 문학, 특히 시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좋은 강연과 모임들이 많아 진 것 같다. 작은 책방들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모임들. 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시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모임들이 많아지는 것은 나 같은 이들에겐 좋은 기회이다. 이해가 되는 것들은 천천히 씹어 삼키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시'를 음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시를 고르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잡히는 곳을 펴 보았다.


그렇더라도 아직 잘 모르겠는 건 사실이다. 내가 무지해서 그런지 시는 좀 어렵다. 읽어보려고 여러 번 노력도 해봤지만 어쩐지 노력하면서까지 시를 읽고 싶지는 않아 도중에 포기하길 여러 번. 이해가 안 된다는 내 말에, 이해하지 말고 느끼라고 하는 사람들 말대로라면, 좋은 시는 노력하지 않고도 무지한 자의 가슴에도 와 닿아야 할 테니까. 그래서 노력하지 않으니 내겐 너무 어려운 '시'라는 것을 점점 더 읽지 않게 되었다. 그냥 읽자니 많은 시들이 너무 어려웠거든.


그러다 어느 날 접한 김수영의 시집. 시라면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닌 가 생각했다. 읽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무언가를 던져 주는 것. 무지한 자들의 마음에 불을 놓는 언어. 그게 진짜 시가 아닐까? 내게는 김수영의 시가 그랬다. 모든 시집들에 손이 가지 않던 순간 우연히 김수영의 시를 접했다. 향신료를 잔뜩 입힌 화려한 맛이 아닌, 갓 무친 나물의 슴슴한 맛과 오래 끓인 찌개의 깊은 맛을 느꼈다.


좋은 재료들을 몽땅 모아서 한 곳에 버무려 놓는다고 맛있는 요리가 되진 않는다. 적절한 재료가 호응하고 보완해야 맛있는 요리가 된다. 멋진 단어와 문장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시속에 부려 놓는다고 해서 좋은 시가 될 순 없다. 얼핏 멋있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 순간뿐. 좋은 시는 가슴속의 훈훈함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푸성귀 한 잎, 된장 한 술뿐이라도 끊임없이 밥을 뜨게 만드는 소박한 음식처럼 쉬운 언어, 쉬운 문장들로도 아름다운 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들썩이는 언어들.


김수영의 시는 다르다.

현란하고 멋있지 않다. 그저 조용히 가슴에 불을 놓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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