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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Sep 23. 2019

[카레] 카레를 망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지

"요리를 못하는 자들에게 나는 제일 먼저 카레를 권하지."


"왜요? 카레 전문점도 있고 한 걸 보면 어려운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우리에겐 오뚜기가 있잖은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 기본 중의 기본! 간 따위 맞출 필요가 없는 음식이라네. 그냥 들이붓고 끓이면 땡이지."


"드디어 제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자, 그럼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이 기본 중의 기본인 카레를 자네가 실패한다면 나는 떠나겠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지."






요리의 절반은 신선한 재료, 절반은 창의력이라고 말한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음식을 창조해내는 섹시한 예술. TV 속 셰프의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고 누구보다 섹시한 요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해보고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오늘의 요리, 카레라이스-

사실 카레 따위 눈감고도 만들지. 그거 누가 못하나. 마법의 가루만 있으면 막 태어나 부엌으로 기어가서도 간을 딱 맞게 만들 수 있는 걸. 하지만 나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정해진 재료 그대로만 넣지를 못하는 병이 바로 그것. 쉬운 요리라도 만들다 보면 꼭 뭔가를 더 넣고 싶어 지는 충동에 손이 근질근질.


'어라? 헌데 그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TV에서 셰프가 말을 하고 있네?'


심지어 섹시한 거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래. 완전 나잖아! 내가 벌써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었단 말이 다 이 말이야.

그래서 오늘도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카레에 다시 재료를 추가하고자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에게 뭔가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어! 영양가가 듬뿍 들어가다 못해 콸콸 흐르는 새로운 카레를 만들고 싶어!


냉장고를 뒤져보니 재료가 좀 있네. 당근 양파 고기만 넣은 것보다 더 맛있겠지. 파프리카, 브로콜리, 양배추, 비트, 셀러리, 버섯을 꺼 내놓고 보니 아무래도 비트는 오버지 싶다. 그래 비트는 탈락. 양배추도 별로 일 것 같고, 버섯은 아이가 좋아하지 않으니 빼자. 파프리카랑 브로콜리라. 음. 아주 좋아.


셀러리에서 살짝 고민을 했지만 잠시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썩썩 자른다. 음~ 부엌 가득 퍼지는 상쾌한 셀러리의 향기.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고 아작아작 씹으며 역시 그냥 먹기 좀 힘드니까 카레 속에 넣는 게 낫겠다고 확신한다. 재료들을 모두 넣고 보니 이제야 알록달록한 색감까지 완벽한 요리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뿌듯해. 역시 요리는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는 셰프의 말이 무슨 말이지 알겠다. 오오, 이러다 나 한식대첩 나가는 거 아닌가 몰라.


.....


남들은 다 아는 결말을 나는 왜 보질 못하는 걸까.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렇다. 셀러리를 넣지 말아야 했다. 내가 왜 그걸 집었던가. 파프리카와 브로컬리에서 멈췄어야 했다. 나야 사실 꾹 참고 먹으면 먹겠지만 함께하는 동거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야 만다.(파프리카도 싫대) 제발 아무거나 넣지 말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자들의 거북한 표정. 하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며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셀러리를 넣고 좀 더 푹 끓였어야 했나? 그것이 섹시한 이번 요리의 패착이었나? 고민에 빠진다. 흠..


어쩔 수 없다.

요리를 하다가 보글보글 끓는 걸 보고 있자면 최면이 걸린 듯 점점 다른 재료가 넣고 싶어 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더 좋은 재료들을 추가 추가하다가 결국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째 인생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결국, 동거인들은 카레를 남긴다.

괜찮아. 내가 다 먹을 거야. 푹푹 다시 끓여 볼 거야.





"내가 졌네. 나는 떠나겠네."


"하 씨, 됐다고요... 가지 마라고요..."


"아니네. 자네는 최고야. 자네를 이길 순 없어. 난 바빠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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