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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10. 2019

[김밥과 샤부샤부] 요리에는 뻥카가 좀 있어야 한다

요리 선수처럼 보이는 특급 비기


요리는 자신감이다. 창의력이다.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내가 다 해봤는데 일단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뻥카'가 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잘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겸손한 자세를 취해도 요리사의 아우라가 밖으로 뻗어 나오니까. 하지만 요리를 못한다 싶은 자들은 기가 죽을수록 더 하기가 싫어지고 그 결과 더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뻥카'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이건 자신감과는 조금 다른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못하지만 잘하는 것처럼 좀 뻥을 튀겨줘야 일단 의심을 사지 않는다. 망한 패를 들고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 포커판과 같달까?


나의 뻥카에 놀아난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내가 요리를 못한다는 말을 하자 너무 겸손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말도 안 돼 나도 믿기 어렵다. 역시 승부에는 기죽지 않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포커페이스 유지와 주눅 들지 않도록 가슴을 열고 바른 자세를 취하면 일단 성공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음식이 남았다. 대체 어떤 음식을 해야 3박자가 착착 들어맞아 요리 선수처럼 보일 수 있느냐.


나의   번째 비기는 브샤브.


요리 파괴자들을 위한 천국의 계단이 바로  말씀. 이건  필요한  없어. 장인의 손맛 따위 없어도 되는 완벽한 작품이 바로 . 이걸 처음 만든 자는 요리에 소질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대충 영양가를 채우고 싶은 게으른 자가 얼떨결에 발명했을 가능성도.


식구들과 푸짐하게 먹고 싶거나 손님용 상차림이 필요하다면 무조건 . 이건 그저 재료들만 사서 척척 정리해   된다. 소스는 마트에서 파는  따라 두면 되고. 소고기와 더불어 해산물  개만  추가해서    벌어지게 재료들을 올려두면 . '우와.  이리 많이 준비했어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아이고 별거 없어요.' 하면서 고기에 새우에 주꾸미에 조개에 어묵에 만두에 칼국수에  내오기만 하면 배부르다고 그만 가져오라고   말려. --- 게임 .



 상차림용의 비기였다면 일상의 비기는 따로 있다.

매일 아침을 책임지는 일상의 비기는 바로 김밥.


김밥은 샤부샤부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김밥은 우리 나이 때에는 소풍이나 가야 실컷 먹을 수 있었던 음식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게 나 같은 부류에겐 큰 장점이라는 사실. 더구나 요리 못한다며 김밥을 한다고? 모두가 의아해한다. 왜냐면 김밥은 꽤 귀찮거든. 하지만 이게 또 해보면 가장 간단하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김밥을 해주면 그 복잡한 과정들을 지나서 만들어진 특별한 요리라며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거 잘하면 이 동네 요리강사 소리 듣겠어.' 김밥을 좀 여기저기 싸주고 들은 칭찬들에 으쓱.


하지만 간이 문젤 텐데? 까짓, 걱정할 필요 없다. 짜건 싱겁건 김밥에 고추냉이를 살짝 얹어서 먹거나 간장 찍어 먹었으면 무조건 맛있다. 이건 그냥 요리나 다름없어. 그냥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예쁘게 자른 김밥에 간장과 고추냉이를 함께 내놓으면 끝. 하지만 그 많은 재료들을 지지고 볶고 무치고 싸고 다 한다고?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맞다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엔 나도 힘겨웠으니까. 이건 뭐 그냥 중노동이야. 자르고 볶고 무치고 비비고 말고 자르고... 손이 얼마나 가는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편한 음식이 없다.


한식이 얼마나 복잡한 음식인가. 밥과 국, 무침, 볶음, 지짐. 또 그 모든 걸 하기 위한 전 단계들!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게다가 손맛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 고달파진다. 하지만 김밥은 아무런 반찬을 안 해도 돼! 그냥 김밥만 말아서 주면 끝. 너무 간편하고 걱정할 것이 없어서 일주일간 매일 아침 김밥을 쌌다.


그게 2주가 되고 3주가 되자 김밥의 간은 점점 자동으로 맞춰지고 더 맛있어졌지만 동거인들의 반발이 생겨 일단 멈춤. 하지만 지금도 자주 뭘 먹어야 하나 끼니 걱정이 될 때는 김밥을 만다. 음식 못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편리한 음식이 없다는 사실. 못 믿겠으면 한 번 시도해보시라. 나물이며 볶음이며 국이며 이런 거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어서 김밥을 처음 만든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얼마 전에 TV에서 여자배우 한 명이 나와서 몇 달 내내 식구들에게 김밥을 싸서 줬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 요리 나만큼 (못)하시네!' 바로 알았지만 주위의 출연자들은 다들 놀라며 정성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그러자 그 여배우는 과한 칭찬에 민망했는지 사실은 자기가 요리를 잘 못하고 스케줄이 바빠서 김밥을 자주 하는 거라고 실토를 해버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같은 부류는 못 속이지! 아.. 근데 그거 말하지 말지... 사람들이 알면 곤란한데... '

속으로 생각하다가 옆을 보니 동거인들이 나를 멀뚱멀뚱 보고 있네. 뭐, 왜 날 봐. 당신들도 다 알고 있던 거잖아.


여배우는 바쁘고 요리를 못해서 김밥을 자주 만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게 굉장히 번거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바쁜 사람이 자주 만든다고 할 정도로 의외로 쉽 단 말씀. 요리에 자신이 없거나 늘 먹거리에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라면 김밥을 추천한다. 재료도 굳이 맞춰 사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들면 되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음식이 바로 김밥이다. 단, 고추냉이와 간장을 꼭 옆에 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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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가 몇 개 더 있는데 식사를 챙겨야 하니 재빨리 김밥 좀 말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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