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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06. 2019

톡톡, 추억을 뿌려도 망친 요린 못 살려



기억이 후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건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의 향기를 느끼며 과거를 기억하는 푸르스트 현상은 너무도 유명하니까. 내 경우만 해도 종종 후각은 희미한 과거의 기억을 살려내곤 한다. 바람 속에서 얼핏 느껴지는 냄새들로 기억을 소환하는 이야기도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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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각은 확실한 기억을 소환한다. 희미한 기억이 아니라 확실한 기억. 미안하지만 후각의 희미한 기억은 아련함을 불러올 뿐이지만, 미각의 확실한 기억은 추억을 필름처럼 눈앞에 보여주며 우리의 입맛을 돌게 한다.


음식은 사람들 사이의 문화이기도 하고 또 예술이 되기도 한다. 망친 음식을 자주 버리는 나의 행동이 어쩌면 이 중요한 것들의 근간을 흔드는 짓은 아닐까?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실패의 나날들이 나를 더욱 주눅 들게 만든다. 그래도 축 처져 있을 수만은 없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솔~ 추억이라도 뿌려서 망친 요리를 살려보자는 심산이다. 요리도 못하는 주부로만 낙인찍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추억을 이리 뿌리고 저리 뿌려도 내 요리들은 나아지질 않는다. '추억으로 버무리면 때깔이 좀 날지도 몰라.'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버무리면 버무릴수록 생각과는 달라진다. 어쨌거나 망친 건 망친 거다. 추억과 아련함으로 아무리 양념을 쳐 봤자 망친 건 망친 거라고.


순두부를 처음 끓였을 땐 순두부 팩의 중간을 잘라서 덩어리로 통째 끓이는 건 줄도 몰랐다. 좁은 입구가 있길래 그쪽으로 쭈우욱- 짜내면 흩어져 있던 두부들이 나중에 자기들끼리 뭉치는 줄 알았지. 휴... 내가 생각해도 엉망진창이다. 끓여도 끓여도 뭉치지 않고 비지처럼 퍼져있는 순두부찌개를 보면서 엄마가 끓여주던 몰캉몰캉한 순두부가 생각나 울컥 눈물이 솟았다. 가만 보니 내가 끓인 건 비지도 순두부도 아닌 실패의 흔적일 뿐이다.


콩장을 만들면 돌덩이를 만든 것처럼 딱딱하다. 잘못 씹다가 이가 부러질 정도의 콩은 대체 왜 그런 건지 이유도 모르겠다. 콩나물을 밥솥에 같이 넣고 하면 콩나물 죽이 된다. 그 이후로 콩나물과 밥은 따로 한다. 멸치볶음은 갱엿의 덩어리가 된 듯 단단히 뭉쳐 힘들게 뜯어 내야 겨우 먹을 수 있다. 엔쵸비로 만든 파스타는 만들자마자 짜고 비린맛에 놀라서 모두 버렸다.



노력한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이 모양이다. 그럼 나는 어쩌지. 바보 같은 나를 원망해야 하나? 나는 왜 이리 잘하는 게 없을까 한탄해야 하나? 그러고 싶지 않다. 요리는 요리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요리를 망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실패할 수도 있지 뭘.


그럼 실패한 이야기들을 써보기라도 하자. 요리 에세이라고 다 성공하고 아름다운 음식뿐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엉망진창인 음식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가끔 추억이라는 향신료를 톡톡 뿌려서 좀 다르게 보이고픈 어설픈 욕망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응, 아니야. 추억은 추억이고 니 요리는 망친 요리 맞아. 돌아가."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이겠지. 하아...






그것은 그저 단순하고 고요한 삶의 궤적일 뿐이다



누가 기억은 후각과 특별히 관련이 깊다고 했는가. 뇌과학자들에게 반론을 제기한다. 기억은 뭐니 뭐니 해도 글쓰기와 관련이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기억의 도르래 역할을 한다. 저 깊은 곳 내가 미쳐 보지 못했던 감정의 뒤통수까지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글을 쓰다 보면 내 발바닥 밑까지 내려간 기억조차 끌어올릴 수 있다. 혈관을 흐르는 과거의 단어들마저 온전히 건져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야말로 기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글을 쓰면서 과거의 일들을 상기하고 추억하고 반성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글쓰기는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삶의 동력이다. 수많은 뉴런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기억과 정보들을 연료 삼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경건한 일상의 행위이다. 그것은 찬란하고 거대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하고 고요한 삶의 궤적일 뿐이다.


때문에 나는 기억이 후각에서 미각으로, 미각에서 다시 글쓰기로 이어지는 나만의 요리 에세이를 써 본다. 비루하지만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 내 일상의 궤적을 그려 본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추억을 양념으로 뿌린다고 음식의 맛이 좋아지진 않더라. 에라 모르겠다. 그럼 그런대로, 이럼 이런대로. 맛이 없으면 눈을 감고 기억으로 먹으리라. 솔솔, 추억을 뿌리고, 슥슥 감정을 발라 좋은 기분으로 꿀꺽 삼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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