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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15. 2019

당신의 하루를 말해주세요

평범한 일상에서 뼈대를 찾아 살을 붙이는 방법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언젠가 소설가 한수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슬럼프에 빠질 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연주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느끼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그 순간의 모습까지 글로 나타낼 수 있으니!"

그의 말처럼 어떠한 순간이라도 어떠한 모습이라도 우리는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남기는 것이 유언장이라 사실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루를 모두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웠을 때 당신은 오늘 하루의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나요? 누군가는 일기를 쓰기도 하고 간단하게 하루의 감상을 쓰기도 합니다. 혹은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독서록을 쓰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소중한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조금씩 커집니다. 


매일이 의미 있으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는가, 라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뿐 우리의 일상은 매 순간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함축된 말들, 수많은 은유들, 순간과 순간을 잇는 연결 고리, 하나하나의 실마리를 찾아서 적다 보면 당신의 일상도 작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우울감에 젖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일상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시가 될 수도 산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그냥 남기기보다 글로 써보고 조금씩 다듬고 확장시켜준다면 당신의 일상은 흘려버린 흙탕물이 아니라 목마름을 적셔줄 아침 이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눈동자가 구르는 소리까지 적어봅니다.

컴퓨터를 켰으면 당신의 하루를 적어보세요. 시간 순으로 적어도 좋고 사건 순으로 적어도 좋습니다.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적어 보세요. 그 순간들의 적막함. 그 순간 느꼈던 작은 감정의 파동. 당신의 시선이 머물던 벽지의 무늬를 적어도 좋습니다.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순간 당신의 눈동자가 구르던 소리까지 적어 봅니다. 


눈앞에 날아가는 파리 한 마리. 조용한 먼지의 유영. 담배연기의 브라운 운동까지.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처음 스케치를 하는 것처럼 오늘 했던 일들 중 생각나는 것을 천천히 적어보세요. 이야기는 어디서나 일어납니다. 당신이 방금 커피를 마셨던 눈 앞의 컵을 두고도 이야기는 많은 가지를 펼칠 수 있습니다. 커피잔 밑에 흐른 커피의 얼룩을 보며 내 마음속의 얼룩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아직 따뜻한 컵은 지금 막 나를 두고 커피숍을 떠난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컵 속에 남아 있는 얼음들은 유년의 말캉말캉한 심장이 언제부터 차가워졌는지를 말해주죠. 천천히 얼음이 녹으며 가라앉는 걸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일상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당신의 하루를 이야기해준다고 상상해보세요. 온몸의 근육이 욱신거리는 날들, 회사에서 느꼈던 부당함들, 무언가를 향한 지지의 감정들,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몸짓.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 같은 여러 갈래의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놓아 보세요. 편지 형식이어도 좋고 산문 형식의 이야기여도 좋습니다. 짤막한 시 속에 많은 감정을 응축해 놓을 수도 있겠죠. 커서의 깜빡임이 당신 하루의 모든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눈동자라고 생각하세요. 일상을 시간의 순서대로 써보고 시간을 뒤집어서도 써봅니다. 행동으로 인해서 감정이 일어났는지, 혹은 감정으로 인해 발현된 행동인지를 써 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순간에 살을 붙여 에세이로 만드는 법


1.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적어 봅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특이할 일이 있었는지, 특별한 감정이 든 순간이 있었는지. 생각나는 것들을 적고 그중에서 쓰고 싶은 사건 하나를 골라 봅니다. 2. 원하는 사건의 핵심 뼈대를 찾아 짧게 적습니다. 단순하고 건조하게 사건의 핵심을 적는 게 좋습니다. 3. 사건에서 비롯된 감정과 행동들에 대해 적습니다. 내 감정과 행동들, 타인의 입장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적어 봅니다.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내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적습니다. 4. 시간이 지나며 변화된 감정에 대해 적어봅니다. 일상적인 감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자신의 감정적 성장이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5. 책의 문구를 인용하거나, 경험했던 다른 비슷한 장면들을 연결하면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6. 작성된 원고를 읽으며 가장 강렬한 부분을 도입부로 가져오면 어떤 느낌인지를 살펴봅니다. 글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한 강렬한 도입부의 흡입력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습니다. 



예시 1.

[나의 일상]

아침에 서두르다가 식탁 모서리에 부딪쳤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기도 여러 번이고. 성격이 급한 탓에 늘 벌어지는 일인데 그런 일이 있던 날이면 기분이 좋지 않고 나가서도 왜 그런지 모르게 원하는 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거기다 엄마에게 잔소리 전화까지 받았다.

-------> 일상을 담담하게 쭉 적습니다.


[뼈대]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무릎을 부딪친다. 그날 밖에서의 일도 엉망이 되었다. 

-------> 중요한 부분을 간단하게 적습니다.


[살을 붙인 글- 사물의 감정]

레이먼드 카버의 멋진 소설들 중 사물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가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남자의 분노와 격한 감정들이 그대로 집에 배어 버린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결국에는 자신의 분노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물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황당하지만 그럴싸한 소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하다. 식탁의 모서리를 지날 때마다, 꼭 어딘가를 부딪친다. 식탁이 아니면 침대 끝에 엄지발가락을 찧고, 때론 의자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늘 급하고 칠칠치 못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떠오른다.       


아침부터 서두르다 열린 문에 무릎을 딱 부딪치고는 괜히 혼자 성질을 낸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나를 골리려고 문을 열어두었다는 듯 내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 묻어난다. 통증은 점점 더해오고 나는 아픈 곳을 싹싹 비비며 문 쪽을 향해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다. 아침부터 기분이 엉망이다. 마침 전화가 와서 받으니 엄마다. 내 하소연에 무릎은 괜찮냐고 묻던 엄마는 그러게 성격 좀 바꾸라고 말한다.     


왈칵 성질을 내려다 생각해보니 사실 오늘은 급할 일도 없었다. 약속 시간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고 딱히 먼 곳도 아니었다. 그저 내 급한 성격 탓에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화내지 말고 차나 한잔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열려있던 문을 닫고 주방으로 향한다. 


거실의 탁자들과 책장, 의자와 피아노, 집안의 많은 사물들을 하나씩 천천히 둘러본다. 고요한 얼굴로 굳게 입을 닫고 있는 사물들. 나는 물을 끓이며 그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주전자에서 김이 폭폭 끓어오른다. 거칠어진 마음에 수증기를 가득 불어넣어 이내 촉촉하고 부드러워진다.     


나를 둘러싼 고요한 사물들. 나는 저곳에 어떤 감정들을 불어넣었던가. 화나는 일이 있었다고 의자를 걷어차고,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책상 위로 가방을 던지며 그때그때의 나쁜 기분을 함부로 표출했다. 타인에게는 매너 있게 행동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으면 돌변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집의 모든 것은 나의 감정이나 성격 따위를 그대로 흡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것들은 기껏 사물이지만, 내가 아니지만, 어쩌면 다른 면에서는 나와 같다. 나의 온갖 말과 행동을 가장 오래 듣고 있었을 사물들. 그동안의 내 모든 성정과 이미지들을 반영하여 다시 내게로 고스란히 표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사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면 그런 내가 곱게 보이지 않을 터. 차를 따르며 나를 돌아본다. 삶에 서투른 나를 들여다본다. 어쩐지 머쓱하고 어쩐지 부끄럽다.       

   

거친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린다. 마음을 우리는데 따뜻한 차만큼 좋은 것이 없다. 송골송골 땀을 내는 머그잔을 보니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천천히 차를 한 잔 다 비우고 가볍게 문을 나선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안녕. 나는 저녁까지 나를 기다릴 사물들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 문을 닫는다. 쿵.          

 

맙소사.

현관문을 닫다가 손잡이에 탁, 손등을 부딪쳤다.

나는 손등을 싹싹 문지르며 손잡이를 노려본다.

그곳에 얼핏 서려있을지 모를 내 성정의 못 돼먹음을 노려본다.        

       

------------> 1. 일상에서 뽑아낸 뼈대에 원하는 사건을 다듬어 적는다. 

                    2. 사건에 대한 생각들과 행동들을 적는다. 

                    3. 사건에서 비롯된 느낌을 적는다. 

                    4. 한발 물러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적는다.

                    5. 시간이 지나며 이루어진 감정의 변화를 적어본다.


TIP. 
* 식탁에 부딪친 사건---> 불쾌한 기분을 식탁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 그날의 운도 엉망
   ---> 언젠가 읽었던 책의 인용문을 끼워 넣어 글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 사물을 의인화하여 평범한 글을 다른 시각으로 마무리한다.




예시 2.

[나의 일상]

한 달 전부터 자고 일어나면 혓바닥 옆이 아팠다. 거울을 보니 색도 변하고 움푹 파여 있어 통증으로 하루를 망치기 일쑤였다. 치과 가기를 미루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수면 중에 덧니의 뾰족한 부분에 눌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곧바로 이를 갈아내니 그 뒤로 멀쩡해졌다.


[뼈대]

혀의 통증으로 오랫동안 잠을 설친 나는 치아의 뾰족한 부분을 갈아내고 평소와 다름없이 지낸다.


[살을 붙인 글- 혀]

혀에 자주 상처를 입는다. 거울로 보니 안으로 비뚤게 난 이 하나가 자꾸만 혀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 작은 모서리가 낮엔 혀를 찌르고 자는 동안엔 묵직하게 짓이기니 성할 날이 없는 것이다. 자주 아프고 신경이 쓰이다가 종단엔 하얗게 물집이 잡히기도 여러 번. 


밥을 먹을 때도 말을 할 때도 심지어 가만히 있을 때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로 혀를 물고 잔 적이 있던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깊고 묵직한 통증을 유발하는지. 치아 모서리에 닿지 않도록 일부러 혀를 한쪽으로 말고 다니기도 해 보고 손가락으로 괜히 모서리를 꾹꾹 눌러도 보지만 소용없는 일. 더 이상을 참을 수 없어서 이를 갈아내기로 했다. 


오랫동안 이 통증을 끝낼 수 없을 고통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치과 의자에 앉은 지 10분 만에 상황은 끝나고 말았다. 그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몇 달을 잠도 못 자게 고생을 시키던 그 작은 모서리를 살짝 갈았을 뿐인데 고통은 처음부터 없던 듯 그 고통의 깊었던 순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치과에서 돌아오는 길에 갈아낸 치아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 오랜 시간들을 미련하게 견뎠을까. 좀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치과라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내 일상이 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 스스로 고통을 끌어안고 생활했던 것이다. 그 미련한 인내의 시간들이라니. 실체 없는 공포 때문에 당장 내게 느껴지는 고통을 안고 살았던 어리석음이라니. 생각할수록 코웃음이 났다. 

 

어쩌면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나 기억을 쓱쓱 갈아 내게서 떨궈 내고 싶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아직 벌어 지지도 않은!) 상황들이 두려워 당장의 괴로움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불편한 언행이나 불합리함에 대한 의견을 내는 대신 고개를 돌리며 애써 모른 척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사람이지만 여러 관계들로 얽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감내하기도 한다. 이렇듯 종종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 힘들게 손을 잡은 채 살아가곤 한다.


그 뾰족하고 불편한 관계가 내내 나를 아프게 한다면 조금쯤 갈아내도 좋지 않을까? 내가 치과에 가고 싶지 않았던 불안이나 다른 큰 병은 아닐까 싶었던 공포는 실은 허상에 불과했다. 정말 갈아내도 되는 걸까? 그 후는 괜찮은 걸까? 일어나지도 않은 타인과의 관계들을 미리 걱정하다 보면 내 안의 혀가 상하고 있는 걸 모른 채 방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 걸까? 때로는 무심하게 뾰족한 부분을 쳐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성정이 한없이 부럽다. 어쩐지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관계들도 있다고. 내가 조금 상처 입는 게 모두에게 편하다고. 물론, 때로는 도저히 갈아낼 수 없는 관계들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야 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한 배를 탔다면, 그리고 그들과 끝까지 가야 한다면 내 마음속에서 갈아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천천히, 조금씩, 마음에서 갈아내고 그다음은 머리에서 갈아낸다. 그것이 행동으로 표출되기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무심히 갈아내는 사람들처럼 우리에게도 용기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내 손으로 갈아 내든, 마음속에서 갈아 내든 정리해야 할 관계는 언젠가는 정리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불안함에 내 상처만 깊어지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길. 그 관계가 뭐라고 갈아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갈아 내면 내 몸과 마음이 이토록 평온해지는 것을.


------------> 1. 일상에서 뽑아낸 뼈대에 원하는 사건을 다듬어 적는다.

                    2. 사건에 대한 생각들과 행동들을 적는다.

                    3. 사건에서 비롯된 느낌을 적는다. 

                    4. 한발 물러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적는다.

                    5. 시간이 지나며 이루어진 감정의 변화를 적어본다.


TIP.
* 혀의 통증---> 인내의 괴로움---> 해결 후의 후련함 ---> 다른 이야기(인간관계)와 연결시킨다. 
   ---> 글의 맥락을 간추리고 묶어 하나의 글로 완성한다. 

* 통증을 일으키는 송곳니의 뾰족함을 인간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괴로운 상황과 매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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