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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May 05. 2021

난 그게 불법인지도 몰랐어요

담배값은 언제나 부담이 된다.

버는 돈이 얼마 없을 때에는 어떤 소비도 부담이 되었었고, 그래도 연봉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자 담배값은 갑자기 두배가 되었다. 부담이 아니었던 적이  번도 없다.


예전부터, 담배값을 아끼려는 시도는 꽤나 했었다. 소프트 팩은 가끔 주머니 속에서 한두 까치를 부러뜨리기 마련이었어서 '디스' 고르지 않았다. '디스 ' 단종된 상태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연한 '디스 플러스' 고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야 담배값에서 100  차이가 크지 않지만, 당시에야 100  차이가 컸다. 멀쩡해 보이는 장초가 있으면 가끔 주워서 피기도 했다.


뉴스에 200 원 짜리 담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언뜻 보아선 말이 되지 않았다. 한 까치에 100원 꼴인데, 한 갑에 200 원이라니. 기사나 공고를 자세히 보니 진짜인 듯했다. 일부 제한된 판매점에서만 취급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 블록의 모든 편의점을 쥐 잡듯이 뒤졌다. 팔지 않았다.

체념한 채로 혹시나 싶어, 자주 가던 편의점에 가서 혹시 저렴한 담배는 어디서 취급하는지 물어봤다. 사장님이 잠시 갸웃 거리는 표정을 지어주시더니 보루채로 꺼낸 담배가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절을 거친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식 발매되는 담배는 모두 꿰고 있을 때인데, 처음 보는 담배였다. '패스'라고 했다. 일단 내가 뉴스에서 본 것과는 다른 이름이었다. 디자인과하게 심플했다. 4 원이야. ? 4 원이라고. 신기할 노릇이다. 예상 가격의 2배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만족스러울  있다니. 마음속으로는 있는   주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얼마나 갖고 계실지 몰라서 구매 제한이 있는지 에둘러 여쭤보았다. 1인당 2보루라고 했다. 짐짓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원짜리  장을 내밀었다. 거스름돈과 함께  보루가 돌아왔다. 사실은  원짜리는 내밀었던 것이 전부였다.


편의점이 있던 건물 뒤에서 급하게 비닐 포장을 뜯었다. 당연한 듯이 소프트 팩이었다. 타르가 10을 넘었던 것 같다. 묘하게 한 까치가 가벼웠다. 빠르고 깔끔하게 불을 붙이고 마신 첫 모금은 매캐하고 가벼웠다. 두 번째 모금부터는 묵직하고 매캐하지도 않았다. 묵직했다. 거칠고 묵직했다. 한 까치를 다 피고 일어나자 휘청거렸다. 그래도 '중난하이'나 '호프'같이 고 타르 담배를 꽤나 피워봤었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다시 앉아서  까치를  꼬나물었다. 마치 술에 취한 듯이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다. 머릿속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뭉툭한 막대로 미간을 찔러 뒤통수까지 관통하고,  다른 막대로 양쪽 귓구멍을 관통한다면  막대끼리 만나는  부분.  부분을 누군가가 살며시 밀어내는 기분이었다.

기숙사로 들어가서 같은 방을 쓰던 형님들과 한 까치씩 나눠 피었다. 두어 모금 피더니 퉤퉤 거리며 버렸다. 넌 어떻게 사 와도 너 같은 걸 사 오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냥 웃으며 눙치고 넘어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곳간에 쌀 쟁여놓은 마냥 내 걸음걸이는 여유가 넘쳤다. 항상 갖고 다니던 크로스백에는 여유분의 담배 두 갑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에서 담배를 필 때는 그 여유분의 담배 두 갑을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간지'였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하나가 있다. 당시 그 친구와는 밤새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노닥거리는 게 그저 낙이었다. 담배값만이 부담이었는데, '패스'로 인해 부담이 아니게 되었다. 밤새 둘이 담배를 양껏 피우면서 노닥거려도 담배값은 2천 원정도였다.


그 풍요로움은 길지는 않았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 편의점에는 '패스'가 없었고, 사장님이 바뀌어 재입고를 물어보기도 여의치 않았다. 야간 아르바이트생에게 조심히 물어봤지만 처음 듣는다고 했다. 편의점의 브랜드마저 바뀌어버리자 마치 그때가 꿈만 같았다. 한 까치씩 나눠주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패스'를 기억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시간이 넉넉히 지나서  원짜리  장으로 담배  갑이 고작이 되고 나서, 사람들 앞에서 '패스'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갑에 400원이 무슨 소리냐며 믿지 않았었다. 마침  자리에 컴퓨터가 있었기에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 검색을 했었다.

불법으로 판매한 소매상들에 대한 단속 관련 뉴스만 나왔다. 존재의 유무는 증명이 되었지만 입맛이 씁쓸한  어쩔  없었다. 가격을 기억해보면 분명히  편의점도 불법으로 판매했을 것이기에.


20대에서, 특히나 군대 가기 전에는 이 정도로 여유로웠던 기억이 더는 없다.

비록 합법적인 경로가 아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시의 나는 인지하지 못했고, 알았다 한들 너무나 안락했었으니까. 차라리 그 판매 경로가 불법이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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