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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May 08. 2021

꼬마 돈가스에 달리고 욕하던 사람들

참 서러울 것도 많다. 살다 보면 '뭐 이런 것' 때문에 서러워하나 싶은 것들이 참 많다. 와중에 서럽다 못해 분노하기까지 했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어 남겨보고자 한다.


학교 앞을 떠나기 직전 즈음이었다. 물류센터 일이 있다고 하여 냉큼 지원하였다. 통근버스도 당시 있던 고시원 앞까지 왔었고, 밥도 준다고 했다. 흔치 않게도, 첫날 계약서를 바로 썼다. 나를 포함한 입사자들에게 지게차를 몰 수 있는지 물어봤었다. 다들 조용했다. 물류센터 치고는 일당이 낮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예전에 했었던 상하차 일이 아니었다. 내가 서 있던 라인에서 대기를 하다, 칸에 숫자가 들어오면 그만큼 꺼내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계가 대체하기 딱 좋은 일이다. 어려울 일이 아니었다.


다만 먼지가 많고 건조했다. 박스가 가득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코를 풀면 휴지가 시커맸다.

계절도 초가을이었고, 주간 일이었던지라 꽤나 후덥지근했다.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이따금씩 트럭과 지게차가 만드는 흙먼지로 시야가 뿌옇게 변하곤 했다. 휴식이 끝나고 들어오면 몸은 더 불쾌해졌다.


일당이 낮은 탓인지, 이틀 이상 일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보름이 넘게 지나자 내가 있던 열두 개 라인에서 가장 선임이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는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지 않았다. 박스를 펴놓고 누웠다. 차라리 그것이 나았다. 담배는 밥을 먹고 나서만 피웠다.


밥은 먹을 수 있기만 했다. 당시의 나는 어지간하면 잘 먹을 수 있었다. 딱 어지간했다. 훈련소 밥보다 조금 더 안 좋은 정도였다. 메뉴는 기대되지 않았다. 그저 50분의 긴 휴식을 기다렸었다. 쓸어 담듯이 입에 넣고, 최대한 빨리 자리로 돌아와 눕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밥때가 되어 어기적거리며 가려하는데, 일부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흡연장에서 얼추 낯을 본 듯한 사람이 있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돈가스래요. 그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달려갔다. 걷던 사람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돈가스 때문은 아니었다. 밥을 늦게 받아서 잠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싫었다. 마흔 줄 먹은 아저씨들까지 달리는 모습이 퍽이나 우스웠다.


조금 빠르게 달렸었나 보다. 평소보다 줄이 그렇게 뒤처지진 않았었다. 돈가스는 내가 아는 돈가스가 아니었다. 꼬마 돈가스였다. 앞에서 웅성거림이 작게 들렸는데 이것 때문이었던 듯했다. 그 날까지 이 곳에서 가장 좋았던 반찬이 돼지고기 김치볶음이었다. 꼬마 돈가스 정도면 호사다. 밥을 잔뜩 퍼담았다. 깻잎지를 몇 장 집었다. 아마 깻잎지가 내 주 반찬이 될 것이었다. 계란찜을 한 덩이 펐다. 집게로 꼬마 돈가스를 일곱 개 집었다. 케첩을 대충 퍼담았다. 국은 쇠고기 뭇국이었다. 고기 덩어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스러기는 꽤나 많이 떠 있었다. 국물 맛은 좋을 듯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그 날은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케첩이 묻어있지 않은 꼬마 돈가스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어서 먹었다. 내가 알던 그 맛이었다. 하얀 밥을 젓가락으로 조금만 떠서 같이 먹었다. 조화로웠다. 그 이후로는 꼬마 돈가스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모두 마칠 때 즈음에는 꼬마 돈가스를 세 개 정도 남길 수 있게, 밸런스를 맞춰 식사를 할 요량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가 나와서 낮지만 크게 외쳤다. 돈가스 다섯 개만 가져가세요. 그 사람은 동그랑땡만 한 꼬마 돈가스를 돈가스라고 했다. 속으로 실소가 나왔다.


내 식판의 꼬마 돈가스가 네 개 남았을 때, 큰 소리가 들렸다. 돈가스 주세요! 데시벨에 비해서는 적은 사람들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나도 슬쩍 보았다. 처음 보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자였다. 꼬마 돈가스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잠깐만요.라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다시 식사를 이었다. 그 이후 내가 채 한 숟갈을 뜨기 전에 식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그 남자가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도 두엇이 욕설을 함께 거들었다.

꼬마 돈가스 대신 나온 것은 단무지였다. 차마 기억하기도, 담기도 힘든 욕설이 나올 만도 했다. 단무지를 갖고 나온 사람은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 무리가 퍼붓는 욕설의 대상은 주방에서 식탁으로 바뀌었다. 일부 사람들이 계란찜을 푸는 스푼으로 꼬마 돈가스를 퍼간 모양이었다. 다섯 개 넘게 가져간 사람들에 대한 협박과 저주가 계속되었다. 나중엔 울분에 취해 짐승같이 소리치기도 했다.


설사 그 무리가 나에게 위해를 끼칠 수는 없었겠지만 조금 무서웠다. 난 다섯 개라는 제한 수량을 안내받지 못했다. 그리고 안내받았던들, 그 무리가 아예 받지 못한 것에 내 탓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았던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식판을 반납했다.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무리 앞을 지나쳐야 했다.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이미 그 사이에 소강상태였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그 무리는 거기 서서 씩씩거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했다.


그 뒤로는 평소와 똑같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물류센터를 퇴사했다. 본사 회장님 방문으로 인한 대청소를 위해 새벽 네시 출근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정이 뚝 떨어졌었다.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퇴사 이유지만, 그때는 나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날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하지만 그때 그 남자의 그 상황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고작 꼬마 돈가스가 '뭐 이런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앞에서 욕하고 소리치며 울분을 토해내야만 했던 것인 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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