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사서 먹어본 지가 언제인 가 싶다. 김밥 전문점에서 쿠킹 포일로 감싼 김밥을 들고 나와서 먹는 간편함이 가끔 그립다.
그 쿠킹 포일로 감싼 김밥은 뒤처리가 참 간편하다. 먹을 때마다 쿠킹 포일을 조금씩 뜯어내고, 다 먹은 후에는 돌돌 구겨서 갖고 있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다. 재료가 다양한 것도 장점이다. 단무지를 빼 달라고 할 수도 있다. 가끔 참치김밥으로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가끔 그립다.
예전에 의자를 엄청 깔았다. 수도권에서 공연을 한다면, 그곳에 의자를 깔아야 한다면 항상 내가 있었다. 그 일은 생각보다 뿌듯하고, 소소한 부가 이득들이 있었다.
공연이다 보니 공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많은 의자를 필요로 하는 정도면 꽤나 유명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꽤나 유명한, 공연하는 사람들. 그중에는 비욘세까지도 있었다. 비욘세가 내한공연을 했을 때 스태프 목걸이를 걸고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공연 전/후로 의자를 설치/회수를 하다 보니 새벽이나 밤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밥은 아니었지만 매번 김밥을 제공받았다. 인원수만큼 시키더라도 오지 않는 알바는 매번 꼭 있었다. 추가 인력들은 건별로 구인하다 보니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난 차라리 사람이 좀 없더라도 김밥을 더 먹는 것이 좋았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하는 날이었다. 현장에 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좀 애매했지만 취소한다는 연락이 오진 않았기에 꾸역꾸역 갔다. 빗발은 조금 약해졌지만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았다. 아니, 이번에 추가로 구인한 인력들은 거의 오지 않은 듯했다. 비가 오니 어련히 취소려니. 하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우선 바닥재를 깔아야 했다. 바닥재는 의자로부터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깐다. 예전 같으면 바닥재를 깔고 있는 와중에 다른 팀은 의자를 내리고 있을 텐데, 의자를 내릴 수 있는 팀이 없었다. 그래도 상시 멤버들로 하다 보니 작업 자체는 부드러웠다.
의자를 반 정도 깔았을 때 같다. 전체 진척도로 보면 그래도 2/3 정도는 했을 때다. 김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사실 꽤나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언제나 그랬듯이 김밥 먹는 타이밍은 꽤나 괜찮았다. 박스에 담겨온 김밥은 사람 수에 비해 조금 많았다. 사람들도 식욕이 없는지 두 개씩 먹는 사람은 없었다. 김밥은 언뜻 봐도 10개가 넘게 남았다. 난 김밥을 세 개나 먹었었지만, 자꾸만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담배 사러 갔다 온다고 한 후, 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얻어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느낌이 왔다. 아무도 저 김밥을 원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챙겨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센티브다! 기뻤다. 사실 조금 지쳐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팔과 다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의자를 옮기고 줄을 맞췄다.
일이 끝나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남은 김밥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쓰레기를 달라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 것 같다. 아닌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뉘앙스로, 가져가.라고 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김밥을 챙겼다. 차마 사람들 앞에서 비닐봉지에 김밥을 넣기엔 민망해서 박스채로 들고 나와서, 코너를 돌고서야 비닐봉지에 김밥을 주섬주섬 넣었다. 넣으며 세보니 11개였다. 충분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꽤나 피곤했던 듯싶다. 일어나니 조금 몽롱했었다. 샤워를 하고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김밥 냄새가 가득했다. 두 개를 꺼내서 냉큼 먹기 시작했다. 잘 들어갔다. 뭉텅이로 입에 넣어도 잘만 들어갔다. 의자 철수는 내가 필요 없다고 했다. 평소면 꽤나 아쉬워했겠지만 그러려니 했다. 다운로드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일이 없을 때는 그저 그러는 것이 일상이었다. 고시원 방은 창문이 없으니 시간이 체감되지 않았다. 굳이 시간을 확인할 이유도 없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또 배가 고파와서 두 개를 꺼내서 먹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머리가 아파서 엎드려 있다가 잤다.
일어났는데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눈을 적당히 뜨고 비닐봉지를 열었다. 김밥 냄새가 어제보다 더 진하게 풍겨왔다. 시간이 더 지나면 상할 것 같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세 개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잘만 들어갔다. 두 개를 먹고 하나를 마저 까려는데 손이 가지 않았다. 다시 비닐봉지에 넣어놓고 침대에 엎드렸다. 꽤나 잔 것 같은데 또 잠이 와서 그대로 잤다. 일어나니 배가 아팠다. 아랫배라기보단 단전 근처가 저릿하게 아팠다. 화장실로 가니 정직한 반응이 나타났다. 그 반응은 꽤나 고되고 길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침대에 옆으로 눕자 배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텅 비었다기보다는 그 공간조차 없어진 듯이 뭔가 압축되어 찌그러진 느낌이었다.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억지로 기지개를 켰다. 움츠렸다가, 기지개를 켰다가. 반복했다. 조금 나아진 느낌이었다. 공용 탕비실까지 갈 기운은 없어서 수돗물로 입을 대충 부셨다. 그리고는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쩡했다. 그저 배가 고팠다. 책상 위에 아직 비닐봉지가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건 눈이 아니라 코였다. 버리기 싫었다. 미적거리며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20분 전에 문자가 와 있었다. 밥 먹자는 친구의 연락이었다. 이런 연락이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아마 이 친구가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은 모양이다. 냉큼 전화했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따금씩 가는 백반집에서 불쾌할 정도로 배부르게 먹었다. 평소 같으면 친구 방에 놀러 가서 시시껄렁한 수다라도 떨다가 올 텐데,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여 혼자 방에 들어왔다. 그제야 비닐봉지가 더러워 보였다. 단단히 묶은 후 공용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들어왔다. 아직도 방에 유쾌하지 못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방문을 열어놓고 다시 방을 나왔다. 갈 곳은 없었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PC방은 사치였다.
하릴없이 시장 앞에 갔지만, 가게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두 대 폈다. 또 피기엔 담배가 얼마 없어 그냥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는 며칠간 일이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때의 나는, 김밥이 상한 걸 알았던 것 같다. 근데도 꾸역꾸역 먹었던 나를 생각해보면 그게 참 미련하기 짝이 없다. 그때 김밥이 상한 걸 알면서도 먹었던 건 무슨 이유였던 걸까.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밥은 아무 죄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나 멍청했던 건가.
그저 그 이후로 상한 걸 알면서까지도 먹은 경험은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