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내 삶은 참 운이 좋았다. 정확히는 이력서에 남을만한 곳,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는 것에는 참 운이 좋았다. 그중 나를 처음 찾아온 운은 대학교였다. 확실히 운이었다.
아무리 돌이켜 봐도, 고등학교에는 다니고 교복은 입었어도 학생이었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공부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학생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고 뭐 신나게 논 것도 아니다. 이도 저도 하지 않았다.
3학년이 갓 시작할 때쯤, 학교에는 상당히 헛된 바람이 불었다. 바로 적성검사였다. 내신과 수능. 그 어떤 것으로도 감히 넘볼 수 없던 대학교에 IQ 테스트 비슷한 것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한다. 그거,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전교생의 30% 남짓이 A대학의 수시 적성검사를 지원했던 걸 보면 분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거기 건물 하나는 우리 학교에서 세웠을 거다.
그때 나에게 운이 처음 찾아왔다. 100 : 1에 가까운 경쟁률이었던 1차에서 붙은 것이다. 한번 더 그 학교에 가게 되었다. 2차 시험 중에 강의 테스트라는 과정이 있었다. 즉석에서 강의를 하고, 바로 이어서 그 내용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그때 또 운이 찾아왔다. 무슨무슨 분할이라는 개념이 나왔는데, 예전에 교양서적에서 본 내용이었다. 무작위로 찬반을 부여받아 진행하는 토론 면접에서는 마침 평소에 생각하던 쪽의 의견을 펼칠 수 있게 상황이 만들어졌다. 2차 시험을 끝내고 학교를 나올 때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당연한 듯 합격으로 이어졌다.
캠퍼스 생활.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캠퍼스 생활도 즐거웠었다. 대학, 학부, 학번, 심지어 국적까지 상관 않고 다양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같은 학부에 재수생 누나가 한 명 있었다. 물리학 수업을 같이 들었던 걸로 기억난다.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했던 것과, 상당히 얌전하게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정말 좋아할 만한 상이 었다.
다만 공부는 문제가 좀 있었다.
애초에 뭔가 잘못되었다. 나도 대학교도 너무 안이했다. 대학교라고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대학교에서는 당연하게도 그것들을 배워왔겠거니, 하며 그 너머를 알려주려 하였다. 내가 애초에 소화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공부한 것도 없었고, 공부한 적도 없었다. 사상누각조차 유분수였다.
뭐 뻔한 이야기다. 1학년의 두 학기를 1이 안 되는 학점으로 마무리한 후, 난 미련 없이 학교를 휴학했다. 쫓겨나기 전에 내 발로 나온 거다. 계획은 없었다.
그 이후 난 여러 일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부만큼이나 일머리가 없던 건지, 금방 잘리고 말았다. 그러다 겨우 다른 과 선배가 꽂아주다시피 한 일이 있었다. 하나 문제가 있었다. 내 발로 나온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학교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유 없이 떳떳하지 못했다. 가서 하는 거라곤 링거 폴대에 있는 바퀴를 사포로 닦는 일뿐이었다. 그나마도 작업 공간이 따로 없어서 계단과 계단 사이 바닥에 앉아야 했다. 건조했다. 사포로 바퀴를 계속 닦았다. 한 시간 정도 닦고 나면 담배 한 대를 피며 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바퀴를 닦았다. 그렇게 네 시간 정도를 닦은 것 같다.
다행히 어려운 일은 없었다. 사람을 상대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꼼꼼히 닦기만 하면 되었다. 무엇보다 맘에 든 것은 밥이었다. 병원 직원 식당이다 보니 뷔페식이었다. 맘껏 퍼먹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미묘하게 학생 식당보다 질이 좋았다. 반찬 수도 좀 많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질 때였다. 까만 비닐봉지 속에 사포와 바퀴를 잘 갈무리하고, 목장갑을 정리해서 자재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 넣어놓고 밥을 먹으러 갈 생각에 내심 싱글벙글했다. 다소 들떠서 비닐봉지를 살짝 앞뒤로 흔들며 가는데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 누나였다. 그 재수생 누나가 하얀 가운을 입고 내 앞에 있었다. 눈이 마주쳐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드라마였다면 옆에 있던 형이 아는 사람이야? 하고 물어보고 나는 아니에요. 하고 지나쳤을 만한 상황이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찰나였던지라 마치 그냥 풍경 속의 사람이었던 듯 지나치고 말았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우리 학부에서 어떤 독한 재수생이 의대로 전과했다는 이야기를 어떤 형에게 들었었다. '독하다'라는 이미지와 얌전하게만 생겼던 그 누나의 이미지는 쉽사리 이어지지 않았기에 상상을 못 했었던 것 같다. 뭐, 사실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당시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그냥 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가 보다. 그때 과제 많다고 같이 투덜거렸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보다. 잘했었나 봐. 나만 그랬나 보다.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손은 쉬지 않고 바퀴를 닦았다.
고시원 방에 들어오고서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학교를 내 발로 나올 때 많은 생각을 했었다. 잠깐 달달한 맛을 본 것뿐이었다고. 내가 감히 그들과 같은 신분으로 잠시 있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걸어갈 것이고,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내 길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이게 또, 의대는 좀 다른 느낌이잖아. 성공의 상징 그 자체잖아. 아예 다른 길이잖아. 아니 길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좀 그렇다. 너무 높아서 그게 길인지도 뭔지도 모르겠다.
강남에 있는 회사에 다녔을 때, 빙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고속터미널을 거쳐서 퇴근하는 경우가 있었다. 집에 가는 버스의 기점은 고속터미널이었고, 난 너무나 피곤했고, 앉아서 가고 싶었으니까.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흡연 구역을 거치곤 했다. 그곳에는 항상 큰 백팩이나 캐리어를 들고 긴 여정을 떠나기 전, 담배 한 대를 즐기고 가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지척에서 담배 한 대를 나누다 보면, 나도 마치 어디론가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든 좋으니 빌딩 숲을 그저 벗어나고 싶었을 때였으니까. 어디든 제일 빠른 시간으로 버스표를 끊고 떠나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었으니까.
A대학교가 내겐 인생의 첫 터미널이었다. 그냥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잠시 있었을 뿐인데. 은연중에 나와 주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동일시했던 것 같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들이 떠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자꾸 뒤돌아보았던 그 터미널. 지금도 가끔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유로 떠나갈 때, 그 터미널이 문득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