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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May 02. 2021

오월에, 5월에 가다

독립서점 첫 방문기

2021년 5월 2일

일어나니 날이 참 좋았다. 어제 날이 좋지 않았던 것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양 하늘은 맑기만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글 쓰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독립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된다. 자기네들 동네에는 어떤 서점이 있다느니, 참 좋다느니. 고양이 같은 존재다. 다들 있는데 나만 없어. 동네를 돌아다녀봐도 그런 건 없었는걸.

'안양 독립서점'으로 검색했다. 안양역 근처에 '오월'이라는 독립서점이 나왔다. 많은 정보를 얻고 가고 싶진 않아서 영업시간만 확인했다. 동네라고 하기엔 안양역은 거리가 멀지만, 한번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조금 특이한 취향이 있다. 난 말장난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이상으로 이상한 이상의 이상에 대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라는 문장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김천에 간다면 김밥천국에 가야 할 것 같다. 잠재력보다는 잠과 재력을 원한다는 말도 좋아한다. 울진에서 군생활을 했을 때, 힘들어도 울진 않았다.

가고자 하는 독립서점의 이름이 '오월'이니까, 5월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었을 때가 4월이었어서 가벼이 그런 맘을 가졌을 수도 있겠다. 만약 다가오는 5월이 내년이었다던가, 그랬다면 아무리 내가 장난을 좋아하더라도 쉽사리 그러진 못했겠지.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어제 남은 배달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목욕재계를 정갈히 하고 코디를 골랐다. 굳이 서랍 구석에 있는 핑크색 티셔츠를 집었다. 핑크색 티셔츠, 핑크색 맥북, 핑크색 파우치 그리고 핑크색 지포 라이터.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오월의 뜻을 생각해봤다. 정말로 5월은 아니었으면 했다. 어떤 뜻일까? 처음 떠올린 뜻은 '그릇된 달'이었다. 달이 그릇될 수 있을까? 황혼부터 여명까지, 달은 그저 그곳에 있기만 한다. 비록 구름이 가리고 달무리가 지어 선명치 않아도 아쉬울 뿐이다. 아주 가끔 선명한 달이 크게 보일 때면 조금은 미쳐도 될 것 같지만, 그릇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의당 그래야 할 것만 같다. 달은 그저 옳은 것 같다.

미처 다른 뜻을 생각하기 전에 택시에서 내려야 했다. 지도에서는 몰랐는데 낯설지 않은 곳이다.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없을 때, 모텔의 빈 방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모텔 간판의 소등 여부이던 시절 애타는 마음으로 돌아다녔던 곳이다. 아주 약간은 반가운 마음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타벅스 녹색을 배경으로 두고, 'Ohwol'이라고 써진 간판이 바로 보였다. 이런 젠장, 이러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잖아. 밖에서 담배 한 모금을 뱉을 정도의 시간을 갖고 내부를 훑어보았다. 왼쪽 벽에는 책들이 빼곡하지만 않았고, 탁자 세 개와 의자 여섯 개가 보였다.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메뉴를 건네받고, 여느 가게처럼 QR코드를 찍었다. 시그니쳐 메뉴라길래 '오월 허니 프루츠'를 주문하였다. 보통 카페에 가면 주문하는 메뉴는 정해져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하지만 이것만 마실 것이 아니기도 하고, 시그니쳐 메뉴라니까.

사실 메뉴를 건네받기 전에 카페를 이용하실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마도 서점으로 이 곳을 이용할 거냐는 질문이었지 싶다. 뭔가 멋쩍어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실제로 음료를 마시면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기도 했고.


결제하면서 너머로 언뜻 본 곳은 공방, 혹은 작업실인 듯했다. 한창 작업 중인 듯 보이는 모습은 어지럽혀져 있다기보다는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적이면서 활기찬 분위기.

책들은 다양했다. 사지 않고 읽어도 되는 책과, 살 수 없지만 읽어도 되는 책. 그리고 살 수 있는 책들. 보기 좋게 구분되어 배치되어 있었다. 독립서점의 성격에 맞게, 독립출판물도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나도 언젠가.라고 생각하며 괜스레, 조심스레 훑어보았다. 나가기 전에 더 보고 몇 권 골라가야겠다.


자리에 앉아서 맥북을 열었다. 메뉴에 적혀있던 와이파이 암호를 입력했다. 참으로 서점다운 암호다. 요즈음 쓰고 있는 내 20대 이야기를 끄적이려다 생각을 바꾸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사장님은 자랑을 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공간을 이렇게나 솜씨 있게 잘 꾸며놓고, 일부를 모두에게 열어놓고 자랑하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자랑을 하면, 시샘을 느낄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 그저 그 자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할애해주는 공간과 시간을 기꺼이 만끽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새 다른 손님이 왔다. 책을 여유로이 고르고 있다. 이 공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 괜한 취향이야 상관없었던 듯하다. 5월을 기다리지 않고 4월에 오는 것이 더 좋았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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