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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Apr 17. 2021

A대학교의 일부 빈곤한 학우님들에게 공유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학교 기숙사 식당 업체가 바뀐 이후로, 만족스러운 리필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겪은 학우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밥, 국을 제외하고는 밑반찬조차 리필이 되지 않다 보니 확실히 볶음밥, 비빔밥류가 아니면 리필을 받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대안을 하나 제시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XX식당입니다.


우선은 방문 시간입니다. 가장 적격인 시간은 오후 3~4시입니다. 어차피 하루에 한 끼 먹는 거, 우리는 최상의 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잘 공략한다면 밤 11시까지도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시간이 제일 한가합니다.


메뉴 구성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메인 메뉴로는 제육볶음, 닭제육, 김치찌개, 부대찌개가 있습니다. 그 외의 메뉴는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이유 또한 후술 하겠습니다.


우선 2~3인을 권장합니다. 2인일 경우에는 닭제육과 김치찌개, 3인일 경우에는 부대찌개를 추가하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밑반찬은 어묵볶음, 콩나물무침, 김치가 있습니다. 밥을 리필받을 수 있는 곳에 셀프로 가져갈 수 있으니, 첫 방문 시에는 그 위치를 잘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가져다주시는 밑반찬과 공깃밥은 양이 적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리필을 직접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밑반찬이 정말 무난하고 훌륭한 곳입니다. 하얗게 버무린 콩나물무침은 조미료 맛이 은은하게 납니다. 여기서 제가 찌개를 감히 단정 지어 추천해 드린 이유가 나오게 됩니다.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는, 콩나물과 정말 잘 어울립니다. 밥 위에 콩나물을 얹고, 국물만 떠서 적셔 드십시오. 된장찌개나 청국장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는, 고깃국물입니다.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또한 어묵볶음은 그 마늘과 간장의 어우러짐이 혀를 달달하게 감싸줍니다. 이때도 우리는 작은 레시피를 적용해 줍니다. 닭제육은 양념이 충분히 나옵니다. 그 양념과 어묵볶음을 같이 먹으면 마치 닭제육의 양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이 또한 아주 훌륭합니다.


혹시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메인 메뉴의 '건더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첫 공깃밥은 반찬에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공깃밥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두 번째 공깃밥을 리필받으러 갈 때는 항상 어묵볶음 그릇을 들고 가십시오. 이것은 일행 모두에게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어묵볶음은 정말 많이 리필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B+급의 반찬은 실질적인 메인으로 운용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면서도 사장님이 눈치를 채서는 안 됩니다. 열리는 밥솥으로 사장님의 눈을 돌리십시오.


교과서에서나 봤었던 고봉밥을 직접 체험해볼 때입니다. 잔뜩 푸십시오. 눌러 담으십시오. 어묵볶음 또한 가능한 가득 담으십시오. 단 넘쳐서 조금이라도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생길 경우 사장님의 탄식이 들리며 부끄러움이 몰려오게 됩니다. 복귀는 신속하고 안전하게 하십시오.


갓 퍼담은 밥은 상당히 뜨겁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는 속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을 써야 합니다.


찬물 반 컵을 뜨거운 밥 위에 부으십시오. 그럼 고봉밥의 윗부분만 찬밥이 됩니다. 심지어 물에 만 것처럼 축축하지도 않고 딱 적당하게 촉촉한 찬밥이 됩니다. 그때 찌개의 건더기를 노리십시오. 얼마 있지는 않지만, 김치찌개의 비계 섞인 돼지고기와 부대찌개의 런천미트를 적당히 국물과 떠서, 찬밥과 같이 드십시오. 두 번째 공깃밥의 초기 70%는, 찌개와 즐기십시오. 궁합이 아주 좋습니다.


바닥에 깔린 밥은 마치 뜨거운 물을 말은 듯이 축축할 것입니다. 이때, 공깃밥에 고여있는 물을 마셔 입을 한번 부셔 주십시오. 그리고 촉촉한 밥과 메인 고기 메뉴를 즐겨 주십시오. 마치 다른 메뉴를 먹는 것 같을 겁니다. 거의 코스 요리나 다름없습니다.


세 번째 공깃밥을 리필받으러 가려고 눈치를 볼 때쯤, 아까의 고봉밥을 훌륭하게 완성했다면 조금 배가 부른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애써 잊으십시오. 세 번째 공깃밥은 고봉까지는 아니더라도 넉넉하게 담아오시면 됩니다. 물론 어묵볶음도 잊지 마시고요.


두 번째 공깃밥에서 아귀처럼 해치운 덕에, 메인 메뉴가 얼마 없을 수도 있습니다. 찌개 뚝배기는 받침대에 걸쳐서 기울이고, 메인 고기 메뉴는 밥을 살짝 옮겨 담아 싹싹 양념을 긁어가십시오. 뭔가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생각이 든다면 정말 잘하고 계신 겁니다. 그렇게 먹어야 합니다.


식당을 나올 때는 사장님 눈을 마주치지 마십시오. 행여나 눈을 마주치게 되면 이유 없이 비참함이 밀려오게 됩니다. 한 스무 걸음 걸었을 때, 불쾌하게 배가 부른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면 이번 공략은 성공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팁입니다. 공략을 같이할 만한 친구가 아니라 선배가 밥을 사준다면, 이 공략법은 쓰지 마십시오. 사장님이 아니라 아는 선배가 쳐다보는 동정의 시선은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몸에 익어서 고봉밥을 풀 수도, 밥에 물을 말을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그러지 마십시오.


학교를 떠나는 것을 너무 아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XX식당보다 리필 환경이 더 훌륭한 곳은 전국 등지에 많이 있습니다. 규모가 조금이라도 있는 공사장은 양질의 함바집을 항상 곁에 두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 모릅니다. 이 XX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오고, 식당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닭갈비 프랜차이즈나 백반집이 들어왔지만, 장사가 되지 않아 금방 문을 닫고 시시한 술집이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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