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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Oct 18. 2020

'게이샤 커피'는 일본과 관계없음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앗, 입간판에 카페 이름이 있었...


날씨가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공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를 못 찾아 헤매게 되었다. 평소에 신경을 안 쓰고 다녀서 그런지 매번 길을 제대로 못 찾아서, 오늘은 좀 작정을 하고 큰길 쪽부터 골목을 뒤져가며 입구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도 꽤 좋으니까. 그런데, 서울숲 근처에는 생각보다 공원에 진입하는 입구가 많은 걸 아셨나요?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다가 한 골목에서 예쁘장한 카페를 보게 되었는데, 바깥에서 보니 도무지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천천히 2층 입구로 걸어 올라갔다.


‘센터 커피’


이름이 그랬다. ‘이름이 이상해.’ 하고 생각했다. ‘센터깐다?’하는 말도 있지 않나? 물론 카페 이름이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매장에 들어서니 에스프레소 머신 옆쪽에서 밀짚모자를 쓴 채로 노닥거리던 직원 네 분이 동시에 인사를 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주목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손님이 나뿐이니 이겨낼 수밖에 없다.

포스 앞에 서니 그 중 한분이 주문을 돕기 위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데, 이곳은 스페셜티 커피인 게이샤가 시그니처라고 했다. 게이샤 커피라. 저렇게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귓등으로 흘리고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으신지? 적어도 나는 못 한다. 그래서, '과테말라 산타 펠리사 선셋'이라는 - 다음번에 왔을 때 기억만으로는 다시 주문하지 못할 이름의 - 커피를 주문했다.


‘한 모금만 드셔 보시면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꽃향기와 각종 과일향의 여운이 대단하거든요.’


직원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분명히 그 여운을 직접 느껴본 듯했다. 그렇지 않고는 저렇게 - 고객이 결제도 끝낸 상태에서 - 추가 멘트를 날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직접 내려야 해서 시간이 조금 걸려요.’


역시 스페셜티는 준비하는데도 남다른 정성이 필요하구나 하며 더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나와서 조금 김이 새 버리고 말았는데, 내가 조금 급해 보여서 정성을 줄여 시간을 확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더 아쉬웠다. ‘말을 조금 더 천천히 할걸 그랬나?’ 하면서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물었다.


....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꽃향기’, ‘각종 과일향’은 거기 없었다. 눈을 감고 일분 이상 입에 머금고 있어도 그것을 - 적어도 나는 -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세상에는 식초 냄새가 나는 꽃이나 과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일이 있다면 분류를 식초 쪽으로 변경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유명하다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이 ‘산미’는 빠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신맛이 나도 모르는 고급스러운 맛의 대명사인 건가? 그렇다면 식초가 그렇게 쌀 리가 없잖아? 내가 보기엔 오리온의 캔디 개발부 직원이 게이샤 커피를 마셔보고는 ‘아이셔’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내가 느낀 게이샤 커피의 느낌은 ‘입 안에서 좀 더 환하다’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왠지 맛에 대한 표현은 아닌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밝게 빛났다는 뜻도 아니다. 그렇게 약간 애매한 상황에서 내게 열심히 설명해주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조용히 얼굴을 돌리는 그녀.


....


집에 와서 조금 찾아보니 게이샤는 역시 ‘생각했던 대로 일본 커피’는 아니었는고, 1931년 에티오피아의 ‘게차(gecha)’라는 숲에서 발견이 되어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원두가 경매를 통해 팔리기 때문에 생두 가격이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인데, 한 모금 마셔보면 꽃향기와 각종 과일향, 여운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내게 게이샤를 권했던 '센터 커피'의 그녀가 했던 말과 똑같다. 고객에게 설명하기 위한 표준 문장을 마치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듯 이야기했던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내가 사업을 한다면 반드시 영입하고 싶은 인재라고 말해두고.


갑자기, 여러분은 커피를 좋아하시는지? 사실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루에 서너 잔씩 마시긴 하지만 딱히 맛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 맥주나 커피나 다 똑같이 쓰다고 생각한다.(물론 맛은 없음) 하지만, 낮에 맥주를 마실 수는 없으니까 커피를 마신다  - 는 아니고. 어쨌든 맛으로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그냥 버릇처럼 마시기 때문에, 커피의 맛을 남에게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두고 싶다.


어쨌든 '센터 커피'는 매장도 예쁘고, 직원들도 친절하며, 초콜릿 음료나 아이스크림도 있으니, 서울 숲에서 길을 잃은 분들에게는 잠시 쉬어갈 만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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