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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Oct 31. 2020

오늘까지 가을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아마도 오늘은 거실에 있던 차림새 위에 대충 얇은 아우터 하나 걸친 후 자전거를 끌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날일 것 같다. 내일은 일기예보 대로라면 비가 올 테고, 그렇게 비가 내리고 나면 지면이 담고 있던 온기는 일시에 사라져 버릴 테니 말이다. 그리고, 각 지역 지면의 온도는 - 백 미터 달리기 시작을 위한 호각 소리에 일제히 선수들이 스타트 라인에 정렬하듯 - 겨울 시작점의 온도로 리셋되겠지. 늘 그렇게 겨울이 시작됐다.

어쨌든 오늘은 완연한 가을이어서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갔다. 처음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조금 달리다 보니 그것도 지겨워져서 서울 숲으로 빠져나가는 통로를 건넜다. 진입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창이 큰 카페가 있길래 창가 자리에 책 한 권을 다 읽을 결심으로 앉았는데, 창 밖 화분에 심어져 있는 파키라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계속 보고 있게 된다. 하늘에 가득한 흰 구름 덕에 햇빛조차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성시경의 ‘좋을 텐데’만 끝도 없이 돌려 듣고 싶어 진다.

성시경의 목소리가 얹힌 멜로디는 감미롭고 달달하지만, 이 곡 속의 주인공의 상황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을 혹시 아시나요? 곡을 들을 때 가사를 크게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곡은 꽤 많이 돌려 들었어서 그런지 내용을 잘 알고 있는데, 주인공은 상당히 지질한 사람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여자 사람 친구에게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주변만 기웃거리는 중이다. 물론 상대 여자는 이 친구가 자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눈치 없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남자의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건네고 있다. 이 남자는 고백을 했다가 차이면 친구로도 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주인공이 내 친구라면 솔직히 ‘고백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주고 싶다. 성시경의 목소리가 너무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여자 친구가 고백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남자에겐 절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실제로 그 여자분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위해 조금 더 힘찬 목소리로 불러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성시경 자신의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그런 부탁은 조심스러울 것 같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책을 조금 읽다가 창밖을 내다보다가 하며 꽤 오래 앉아있었는데,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조금 우울해졌다. 분명히 그분들 중에 예쁜 분도 있었을 거다. 물론 그것 때문에 우울해졌다는 건 아니고. 이 겨울이 코로나와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달려야 하는 마지막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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