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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하이든과 LP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이 곳에서는 요즘 신규 앨범이 나와도 LP가 같이 발매가 된다. 복고는 사라지지 않을 유행이라지만, 그래도 십수 년 전에 사라져버린 LP 공장이 다시 재가동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덕분에 플레이어들도 우후죽순처럼 재설계되어 발매되고, 그런 것들 중에는 꽤 저가형도 있어서 한 번 구매해 보았다. 신보들은 3~40불 정도로 CD나 디지털 음원보다도 가격이 높은데, 그래도 구매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돈 많고 심심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구나' 하게 된다.


이 곳의 중고서점에서는 오래된 LP들도 같이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덕분에 다니는 길에 있는 오래된 서점을 구경하다가 하이든의 중고 LP를 집어오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클래식은 왠지 '친구라고 까지는 부르기 애매한 그냥 아는 사람'같은 느낌이라, 내가 직접 찾아 듣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게 바흐인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인지도 모르겠고, 앨범 한 장에 트랙이 오십 개 씩 있는데 타이틀도 모두 스크롤될 정도로 길어서 절대 나 이 곡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으며, 사실 그 트랙 하나가 곡 하나인지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정도 되면 악기도 엄청 많기 때문에, 들을 때 계속 그 악기 소리들에 집중하게 되어 왠지 기말고사 시험공부하는 것처럼 불편해지는 것이다.


다시 하이든 앨범 이야기로 이 앨범은 귀여운 재킷 일러스트가 맘에 들어서 들고 왔다.


R-5775123-1402318420-6089.jpeg.jpg HAIDN - Concerto for organ and orchestra in C major


왠지 모르지만 모두 여덟 명의 귀족들이 모두 무표정하게 기립한 상태로 음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연주자들은 뒤쪽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 희미하게 비쳐 보이는데, 모두 왼쪽에서 두 번째에 서있는 귀족을 바라보면서 연주하고 있다. 몇몇 귀족들도 눈치챘는지 연주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귀족을 슬쩍 쳐다보고 있다. 특히 오른쪽 아래 백작부인은 아주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뭔지 너무 궁금하지만 알 도리는 없다.)


재킷은 대충 그런 내용이지만 음악은 온 세상을 구원하겠다거나 세상의 슬픔을 대변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아, 오늘같이 화창한 날씨에는 BGM으로 더할 나위 없다. 지직 거리고 양감은 약간 부족해도 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영차영차 즐겁게 연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마치 몇 달 전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을 울리며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던 그때의 기분으로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쉽게 '하이든은 참 좋아'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게 클래식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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