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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pr 20. 2016

두 시간짜리 뮤직비디오

협녀, 칼의 기억(2014)

‘협녀, 칼의 기억’은 전도연과 이병헌이라는 연기 끝판왕들이 캐스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기는 평가와 그에 부합하는 흥행성적으로 최고 망한 영화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선입견 때문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토요일 아침이 아니었다면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발견했다 하더라도 쉽게 두 시간을 내어놓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것은 몰입하기 힘든 막장스러운 스토리일 겁니다.



이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유백(이병헌)과 월소(전도연)는 협객 연인 사이로 풍천이라는 검객과 함께 셋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민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유백은 배신을 하고, 월소는 사랑하는 유백을 따라 그 배신을 돕습니다. 그 상황에서 풍천은 월소의 검에, 풍천의 아내는 유백의 손에 살해를 당하죠.
그 후 유백은 고려왕실의 고위관직에 오르게 되고, 월소는 사랑하는 사람을 도왔지만 대의를 저버린 죄책감에 풍천의 딸 홍이(김고은)를 거두어 재야로 숨어 버립니다. 월소는 홍이에게 검을 가르치며, 두 원수(유백과 월소)에 대한 복수를 다짐시키게 되는데요.
사실 실제 풍천의 딸은 이미 배신의 순간에 유백의 손에 살해되었고, 홍이는 유백과 월소 사이의 자식이었습니다. 월소가 자신들이 저지를 죄 값을 자신의 자식이 갚도록 준비를 해왔던 것이지요. 홍이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월소의 가르침대로 그 둘을 살해하고 만다는 것이 이 막장 영화의 대략 줄거리입니다.


영화라는 건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야’하고 자기암시를 하면서 봐도 중간중간 ‘저게 뭐지?’하게 되는 순간들이 꽤 많은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무슨 자식이 '최종 병기 그녀'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 시기가 올 때마다 감정이입에 금이 가면서 ‘차라리 세탁이나 하는 게 더 건설적인 것 아닐까?’하게 되거든요.


김고은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눈이 작고 얼굴이 조막만 한 타입이라 감정을 표정으로 전달하기 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덕분에 연기가 대체적으로 하이퍼인데 목소리도 무게가 없어 계속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PM의 이준호와 투샷으로 잡힐 때는 정말 둘이 어떤 감정선에 올라앉은 상황인지 지문 자막이라도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이준호 팬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물론 잘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의 편이었던 유백이 세상의 지배층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단지 '존복(김태우)이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에서도 먹을 것을 찾는게 아니라 고결하게 목욕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좀 우습죠.


이 영화는 무협영화로 대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와이어액션에 의한 재미 반감은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라 친다 해도 - 난투 장면 자체가 1:20의 대결이라 하더라도 좀처럼 박진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우선 대전 장면에 줌인 샷들이 너무 많은데, 대전 장면에서는 보통 -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는데 '어 딴 사람 죽였네?’ 하고 놀라는 장면 정도가 아니라면 - 표정이 보이는 줌인은 많이 사용하지 않거든요. 이 영화는 액션 내내 얼굴이나 몸통이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어떤 액션이 펼쳐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슬로우도 너무 많아서 전투 중 나뭇잎이나 먼지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액션 중 슬로우를 잘 써서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영화들도 많지만, 이 영화는 매번 뮤직비디오처럼 끊임없이 사용하다보니 식상하고 흐름도 늘어지게 됩니다.


목소리가 좋은 이병헌


마음을 비우고 보면 괜찮은 부분도 꽤 있습니다. 우선 이병헌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참 좋습니다. 사실 그는 눈매나 얼굴 그리고, 목소리까지 정말 주인공에 적절한 캐릭터죠. 전도연의 연기도 괜찮습니다만 목소리가 가벼워 무거운 스토리의 사극에서는 분위기 캐리에 좀 버겁더라구요. 김고은은 아직 갈길이 멀죠.

영상 자체는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정말 아름답습니다. 색감이나 구도도 좋고, 특히 비 오는 장면은 기가 막히게 잘 잡아서 지금까지 본 영화의 비 오는 장면 중 가장 멋졌던 것 같습니다. 액션에서의 슬로우도 액션을 부각하지는 못했지만, 영상 자체만으로는 ‘아 멋지다’ 소리가 절로 나오긴 했고요.


눈이 안보이는 연기를 훌륭히 해낸 전도연. 안보이지만 보이는 사람보다 더 많이 베긴 했습니다.


마지막 막장 부모 원샷 투 킬 장면 이후 화면이 페이드아웃되고, 바로 홍이의 과거 회상 장면이 나오는데요.

월소에게 자신의 부모에 대한 질문을 하며 눈길을 걷는 장면입니다. 이때 월소는 풍천과 그의 부인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월소는 자신과 유백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자신 부모들 간의 사랑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월소는 대답을 처음은 삼인칭으로 시작하다가 결국 자신의 유백에 대한 감정을 일인칭 화법으로 이야기하게 되죠. 홍이의 유전자가 모두 당대의 검객이 아닌 최고의 학자에게 물려 받았다면 이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챌 수도 있었을겁니다. 아니라도 지적 정도는 했겠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니 아버지 웃는 얼굴이 그렇게 좋으셨다지. 얼마나 천진한 웃음이던지. 엄마는 그 얼굴이 꽃보다 좋았지. 그렇게도 좋았지.


인터넷에 악평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마음을 열고 보면 꽤 멋진 영상을 만나볼 수도 있고 나름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이제 봄인데 맑은 하늘 공중에서 펄럭이는 옷깃을 오랜만에 감상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살짝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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