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목소리 - 거미의 '환생'
'신의 목소리' 포맷은 최고의 음악 듣는다기 보다는 최고 가수들이 고해 속을 헤매는 것을 즐기는 방송입니다. 가수에게 곡에 대한 선택권이 전혀 없고, 그나마 제시되는 선택지들도 본인 필드와는 동떨어진 리스트들인데요. 물론 전혀 예상치 못한 선전에 감동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고만고만 '나쁘지 않은데?'정도의 느낌으로, 가수들의 입장에서는 잘해야 본전인 잔인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대결하는 구도인 만큼 전자에게 모든 선택권이 있는데, 그들도 나름은 동일 직업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로 재기를 꿈꾸고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 이기기 위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선곡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덕분에 일부러 찾아보는 방송은 아니었는데요.
신의 보컬 다섯 명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 거미는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입니다.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는 더 이상 말을 보탤 필요도 없는 곡으로 릴리즈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 계속 올려놓고 듣고 있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고 나만 듣고 싶은 음악을 하는 가수라고 할까요. (물론 다른 사람들과 다 같이 들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주 방송에서 도전자가 윤종신의 '환생'을 선택했을 때만 해도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그 노래 자체가 발성도 특이하고 멜로디도 고저차가 큰 음들을 연속으로 배치되어 있어 거미 감성으로 부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좋아하는 가수가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도입부터 그녀는 차분하게 본인 스타일로 음을 하나하나 잘 밟아갔고, 그대로도 누구나 '아 역시 거미구나'했을 겁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클라이맥스로 진입하면서 악기들도 고조되고 추임새도 지르기로 밀어 올리다가, 갑자기 다이내믹을 죽이면서 싸비를 속삭일 때에는 여러 방청객들 반응 그대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이후 다시 성량 최대치로 마무리하는 것 까지, 세상에 구성 자체가 완벽한 곡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곡은 거의 레전드급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실 그 이전 윤도현의 'OOH-AHH 하게'를 들으면서도 '참 괜찮네' 하고 있었는데, 거미의 '환생'은 그 이전 여러 도전자와 가수들의 노래를 한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대단했습니다. 최근 국내외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 여러 음원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너무 기쁘지만, 무리하지 말고 건강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