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LP는 용어로 그 생김새나 특징을 전혀 알아챌 수 없는 'Long Playing Record'의 약자로 CD가 보급되기 이전 카세트테이프 와 함께 음반 배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던 비닐 레코드를 이르는 이름이다. 국내에서도 1960년대 중반에 생산을 시작하여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절을 돕는데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큰 역할을 했었는데, 2004년 서라벌 레코드의 LP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었다. 그 이후에도 마니아들은 여러 이유로 LP를 찾는 경우가 많아 미국에서는 아직도 연간 400만 장 이상의 LP들이 판매가 되고 있고, 최근 신보들도 LP를 함께 발매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국내에서도 요즘은 LP를 다시 생산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루트도 다양하지 않다. 사실 LP가 디지털 음원이나 CD보다 나은 점은 정말 하나도 없다고 봐도 된다. 누군가 총을 들이대면서 억지로라도 말해 보라고 한다 해도, 정말 바로 튀어나오지 않아 무척 난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땀을 질질 흘린 후에야,
음악을 적절한 지지직 하는 잡음과 함께 들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정도의 이야기밖에 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마도 이야기 한 직후 총을 맞게 될 확률이 클 것 같다. 혹자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음원이 저장되고 플레이되기 때문에 디지털 방식인 CD보다 더 부드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음반 마스터링 자체가 디지털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것도 좀 억지스럽다. 하지만, 자기만족이니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들을 수 있다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하려던 것이 LP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미국에서 LP를 구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새로 나오는 음반들도 LP로 꼬박꼬박 발매되기는 하지만, 최근 테크놀로지로 마스터링 된 음반들은 디지털 음원으로 들어야 제맛이다. 역시 LP 하면 오래된 넘버들을 감상해야 제맛인데, 고생대 재즈 곡들을 잡음과 함께 듣고 있으면 베이스도 덜하고 밸런스가 안 좋아도 더 분위기 있게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이건 좀 신기하다.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트 스트리트는 히피문화의 발생지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거리가 특이해서 내리게 되었던 이 곳은 개인적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어떤 거리보다 볼 것도 많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유명한 거리들 보다 좀 희한한 사람들이 많고 상점들도 아주 깔끔하지는 않지만, 나름 한번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게 된다.
Loved To Death라는 아트 상점(?)은 정말 기괴한 제품들로 가득한데, 어느 물건 하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일러스트 작품들도 모두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사진 불가’라고 붙여놓은 안내글이 아쉬울 정도다. 투명한 보석에 여러 동물의 박제나 화석들을 넣어둔 것들은 징그럽지만 눈을 뗄 수 없는데, 특히 문 앞에 있는 ‘쭈그러든 얼굴’이라는 작은 인디언 얼굴 화석 모형 수십 개는 왠지 진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섬찟한 생각도 든다.
저. 이거 진짜 사람 머리예요?
라고 실제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나 말고도 많이 물어본다고 한다.(미국에서는 실제 사람 머리를 말려 판매할 수는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 뿐 만은 아니겠지만)
드디어 LP 판매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거리의 끝에는 Amoeba Music이라는 음반 리테일 상점이 있는데 규모가 꽤 크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느 음반 판매점보다 많은 LP와 CD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LP는 최신 음반부터 수십 년 전의 중고 제품까지 골고루 모두 갖추고 있는데, 뒤지다 보면 한 시간쯤은 우습게 훌쩍 지나가 버린다.
가격도 희귀 음반 들은 100불을 넘어가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1불부터 2~30불까지 적절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곳에서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FALCO의 ‘Rock me Amadeus’ 음반을 클리어런스 코너에서 1불에 구매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싱글 SP나 EP들도 구경할 수 있으며, 여러 희귀한 음악 관련 서적이나 브로마이드 등도 질리도록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갔던 날은 프린스가 사망한 날이어서 그런지 계속 프린스의 음악이 플레이되고 있었는데, 그 음악에 맞춰 점원들이 레코드 재배열을 한다든지 계산대에서 해드뱅잉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꽉 차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랬다.
근처의 Rasputin Music이라는 상점도 역시 LP를 판매하고 있는데, 양은 Amoeba Music 만큼 많지는 않지만 대신 중고 블루레이나 DVD들이 꽤 많아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샌프란시스코에는 중고 서점들이 꽤 많은데 규모가 큰 서점들은 중고 LP들을 같이 판매하고 있으니, 수많은 LP더미들 속에서 손 때 묻혀가며 알파벳 따라 옛날 뮤지션들 사이를 여행하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